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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Mar 12. 2024

잔혹한 사춘기의 기억

진흙밭 속에 빠진 마음




 아빠는 천주교용인공원묘지에 안장되셨다. 어린 시절 아빠에게 가는 길은 멀고도 힘든 여정이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리다가 무채색의 작은 꽃집 앞에서 내렸다. 그 꽃집에서 흰 국화꽃다발을 사고 백여 미터를 걸으면 묘지의 입구가 나온다. 단층짜리 사무실건물에 있는 화장실에 들렀다가 다시 힘을 내어 올라가기 시작하는데 여기서부터는 포장된 길이 아니었다. 경사도 매우 높아 사람의 왕래를 위해 만들어 놓은 길이라기보다는 공사를 위해 대충 쌓아 만든 길처럼 보였다. 도저히 차 한 대도 못 지나갈 것 같은 아찔한 경사의 길에 차가 들어서면 우리는 차를 피해 길가장자리에 바짝 붙어야 했는데 안전바라고는 없는 낭떠러지 끝에 서있다 보면 지나는 차랑 함께 떨어지는 건 아닐까 겁이 나곤 했다.


 이 길이 길다운 길이 되기까지는 십여 년이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시간이 흐르며 입구 앞 사무실 맞은편 공터는 대단지 납골당이 되고, 아빠가 계시는 길의 끝에는 많은 분들의 묘지가 생겼다. 그리고 아빠에게 가는 길 중간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묘도 생겼다. 아빠의 묘는 당시 묘지의 가장 아래단이었다. 그 밑으로 공터가 있었는데 제대로 정비가 안돼 질펀한 진흙밭과 간이화장실이 놓여있었다. 엄마는 아빠 제사에서는 막걸리를 쓰셨지만 성묘를 갈 때는 꼭 소주를 챙겨가곤 하셨다. 술 좋아하던 사람이니 많이 드시라는 핀잔과 함께 술 한 병을 아빠 묘에 뿌리고 나면 성묘가 끝났다. 그럼 다시 집으로 향하는 먼 길을 가기 위해 화장실에 들르고는 했는데, 하루는 간이화장실로 향하다가 그 질펀한 진흙밭에 빠지고 말았다. 몸이 무릎 위까지 빠졌으니 옷이고 신발이고 멀쩡한 게 없었다. 내 어린 멘털도 바사삭 부서졌다. 겨우 화장실에서 진흙덩어리를 씻어냈지만 마치 염색이라도 된 듯 몸의 반이 황톳빛으로 물들어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 끔찍하게도 멀게만 느껴지던 날로 기억한다.


 일 년에 한두 번씩 성묘를 갔었는데 처음에는 버스를 타고 뚜벅이로. 그다음에는 ‘쥐색의’ 프라이드를 사서 아슬아슬한 경사길을 올랐다. 그렇게 자라면서 아빠의 빈자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그리고 내게는 작문노트가 생겼다. 비밀일기처럼 몰래 숨겨두고 글을 쓰고 또 썼다. 시부터 에세이 소설까지 고정된 장르는 없는 그리움을 원천으로 삼아 적어가는 비밀노트였다. 성묘 가면 아빠에게 태워 보낼 편지도 적혀있는 가장 솔직한 내면을 들어내는 또 다른 일기장인셈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내가 학교에 간사이에 친구에게 보여준다고 방에 숨겨둔 노트를 찾아 거실로 들고 와 마침 하교한 나에게 낭독해 보라고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비밀노트를 엄마가 그동안 몰래 읽어왔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고 손님 앞에서 내 비밀노트가 더 이상 비밀노트가 아닌 채 오픈된 사실에 너무 당황하고 화가 나 한마디도 못했다. 말을 잃고 노트를 흔드는 엄마를 빤히 쳐다보다가 노트를 빼앗아 방으로 들어간 나는 그 일이 있고 다음부터 노트를 없애고 글 쓰는 것도 그만뒀다. 그래서 사춘기시절 일기장조차 지금 내게는 없다. 그리고 수많은 초고들도 내 손에 없다. 아빠에게 태워 보낸 편지도 한통으로 그쳤다. 아빠에게는 미안할 뿐이다.


 그 뒤로 엄마의 일기장을 책상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내게는 못 읽을 이유가 없었다. 유치한 복수랄까. 근데 엄마의 일기장을 넘기면서 어느새 유치한 복수심은 사라지고 눈물만 차올랐다. 엄마의 일기장에는 나에 대한 불만과 잔혹한 말들이 가득했다. 눈물이 가득 차올라 일기장을 덮었는데 마침 그 걸 본 엄마가 아주 매섭게 나를 몰아붙였다. 인간적인 기본 예의도 모르는 계집애라는 분노와 함께. 감당하기 힘든 슬픔은 오히려 나를 차갑게 식혔다. 사실 나는 학급에서 모범생에 공부를 꽤 잘하는 편이었다. 동네친구 아버지가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내 성적을 알려달라고 부탁을 할 정도로 전형적인 ‘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친구’로 통했다. 그럼에도 엄마에게 단 한 번도 성적을 잘 받아왔다고 칭찬을 들은 기억이 없다. 중학교에서 타에 모범이 된다며 상장을 받아와도 그저 심드렁했다. 친구의 아버지도 나를 항상 칭찬해 주는데 엄마의 반응이 항상 내게는 의문이었다. 근데 엄마의 일기장으로 그 의문이 풀렸다. 엄마는 나에 대한 오래된 분노가 있었다. 어린 시절 이성을 잃고 아빠에게 라이터를 갖다 준 나를 몰아세우던 그날과 비슷했다. 사춘기소녀의 예민한 감정 탓일까. 가슴이 뜯기는 고통을 담아 그때도 지금도 나에게 왜 상처를 주냐며 말대꾸가 나갔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사실이 없다며 단칼에 자르고는 자리를 떠나버렸다. 그 매몰참에 그날 결국 내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잔혹한사춘기의기억

#부서진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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