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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베카 Feb 27. 2024

눈물 속 작은 세상에 갇혀_하염없이 걸었다

아스팔트로 포장한 여의도광장




 예전의 여의도 공원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다. 기억으로 떠올려보는 여의도광장은 계획하에 디자인해서 초록으로 장식한 보기 좋은 지금의 공원의 모습을 지우고 끝도 보이지 않는 넓은 공간을 아스팔트로만 포장한 광활한 광장의 모습이었다. 또한 보기 좋은 초록의 나무 한그루 없이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찾는 명소이기도 했다.

 매년 10월 1일 국군의 날이 되면 그 광활한 아스팔트 위로 군인들의 장엄한 행렬이 이어지며 티브이를 통해 전국으로 방송되는, 대통령이 주관하는 큰 연중행사의 장이 되었다. 지금은 북한방송에서나 볼 수 있는 군사 퍼레이드와 흡사한 모습으로 기억한다.

 엄마의 남자친구들 중에는 군인아저씨도 있었는데 꽤 높은 계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게는 무서워 보이는 굳은 표정의 군인아저씨들이 그 아저씨의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었다. 어느 해 10월 1일 우리를 이끌고 국군의 날 행사를 구경하러 간 엄마는 군인아저씨를 친구라고 소개했다. 그분은 군인들로 북적거리는 행사장을 위풍당당하게 누비며 우리를 안내했다. 그리고는 의전용 차량들이 일렬로 정열 해있는 곳에서 한 지프에 우리를 태웠는데 굳은 표정의 군인아저씨들의 극진한 대우에 몸이 절로 긴장됐었다. 그렇게 티브이로만 보던 행사행렬 속에 우리가 있었다.

 특별한 추억이 될 수도 있는 경험이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엄마의 친구들을 소개받을 때마다 분위기에 맞춰 웃고는 있었지만, 내게는 매번 아빠의 빈자리를 확인하는 자리였기에 마음마저 웃을 수는 없었다. 휴일에 누워있는 아빠에게 다가가면 예의 그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다정하게 안아주던 아빠의 빈자리가 점점 크게 느껴졌다.

 그 당시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짧은 글로, 편지로도 적어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국민학교에서 편지글쓰기 대회의 최우수상을 받아왔을 때, 엄마는 그게 아빠를 향한 그리움을 적은 편지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엄마에게는 그저 ‘최우수상’ 네 글자만이 의미가 있었기에 무슨 내용의 글로 받은 상인 지는 물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에 서운함 따윈 느끼지 않았다. 그저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기에.




 그 시절 여의도 광장은 주말 또는 휴일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도 유명했다. 자전거를 빌려주는 곳이 있어 가볍게 먹을거리를 챙기고는 가족들과 자주 여의도로 향했다. 자전거를 빌려서 신나게 달리고 달려도 광장의 끝에 닿기는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넓었다. 한참을 바람을 가르며 신나게 달리면 주위로 나와 같은 자전거 수백 대가 함께 달렸다.

 그렇게 나들이를 간 어느 날, 엄마는 우리에게 자전거를 빌려주고는 자연스럽게 어딘가로 가셨고, 나는 곧바로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신나게 돌려댔다. 그 넓디넓은 광장에는 은근한 내리막과 오르막이 있었는데, 경사가 그리 심하지 않음에도 어린 나에게는 스릴 넘치는 라이딩 구간이었다.

 내리막길에서 페달을 멈추고 자연히 속도를 높여가던 찰나, 내 앞에 양손에 아빠와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꼬마아이가 보였다. 급하게 자전거 핸들의 브레이크를 꽉 잡았다. 입안에서는 ‘어.. 어.. 어어….!!!’ 미처 말이 되지 못한 소리가 흘러나오고 손짓은 급박해졌지만 자전거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다급하게 두 발로 자전거 속도를 낮췄는데도 그만 소리를 지르며 꼬마아이를 치고 말았다. 다행히 가볍게 부딪쳤기에 아이는 다치지 않았지만 꼬마는 너무 놀란 나머지 울음을 그치질 못했다.  

 난 나와 함께 쓰러진 자전거를 옆에 두고 서서 한참을 죄인처럼 두 손을 모으고 죄송하다며 고개를 들지를 못했다. 오히려 쓰러지며 다친 건 나였지만 나도 너무 놀라 그 순간 아픔 따윈 느낄 수가 없었다. 내게 날아오는 아이어머니의 노함이 엄청났다-엄마라면 너무도 당연하다-한참을 아주머니 앞에서 두 눈 가득 찬 눈물도 차마 흘리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아이아버지가 중재에 나서서야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 그 꼬마아이가 그렇게 미안하고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나보다 더 아파하며 화를 내주는 엄마가 없어서였을까. 다시 자전거 안장에 오르지 못하고 꽤 먼 거리의 자전거 대여소까지 자전거를 질질 끌고 갔다.

 눈물 속 작은 세상에 갇힌 나는 누가 보든 상관없다는 듯이 하염없이 울며 자전거를 끌었다. 그날이 여의도 광장의 마지막 자전거 나들이 날이었고, 내 인생에 마지막 자전거를 탄 날이었다.





#그리움에도색이있다면

#눈물로가득한세상과같은색이지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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