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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돌봄 교사?

by 다정한하루




어린이 도서관에 돌봄 서비스를 도입, 맞벌이 부부들을 위한 아이 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작은 도서관 운영 기사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용대상이 만 6세~12세 초등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공감이 가는 정책이지 싶다.



그런데 학교에서? 그것도 고등학교에서 돌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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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학생에 잔류 학생 지도까지?



학교는 겨울방학을 이용해 전체 냉난방 공사를 계획 중에 있어서 우리 학교는 이른 방학을 했다. 방학이 길어서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바람에 여름방학이 짧았고, 모든 학사일정이 당겨져서 타 학교보다 중간, 기말고사도 1~2주일씩 빨랐다.



시험이 끝나면 도서관 수업은 평소보다 훨씬 많아진다. 진도도 끝났고 생기부 작성하느라 정신없는 담임들에게 도서관은 아이들을 방목하기 더없이 좋은 장소일 테지. 사전 예약한 활용 수업이 아니어도 하루에 수차례 문의 연락이 온다. 오케이~ 입시 핑계로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책을 어떻게 읽느냐고 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려는 샘들에겐 고맙기도 하다.




문제는 임장도 없이 돌봄 서비스를 요청하는 경우다.



안 그래도 고3 만 되면 이유 없이 학교를 안 나오는 게 부지기수인데 3학년 위탁학생들을 도서관에서 관리하라니. 월 1회, 방학기간을 제외하면 8회 정도 밖에 안되니 도와달란다. 작년까지 학년부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하던 위탁학생을 느닷없이 도서관으로 보내겠다는데 어이가 없었다. 외부 프로그램으로 수업하던 아이들이 한 달에 한 번 출결 인정 목적으로 학교에 온다. 대부분 자리 잡고 앉아서 몇 시간을 폰만 하거나 엎드려 자는 게 전부이지만 수업 시간에 담당 선생님의 임장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단칼에 선을 그었다. 솔직히 부탁을 하는 입장에서야 '많지도 않은 학생들 봐주는 게 뭐가 그렇게 싫을까?' 생각하겠지만. 이건 단순히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닌 책임과 권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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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자리를 지키다가 별다른 문제 없이 하교하는 아이들이 더 많은데 내가 너무 빡빡하게 구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없지 않다. 하지만 만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학교이다. 급한 일로 자리를 비워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 순간 발생할지도 모르는 갑작스러운 사고를 우린 예측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출석체크부터 활동 지도까지 내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학년 초 위탁학생 담당교사에게 임장을 확답 받고 장소 제공만을 하기로 한 위탁학생 지도. 올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돌아보니 담당교사를 보지 못한 날도 있었다. 임장에 대한 확인에 아이들과 카톡으로 출석체크를 했으니 선생님은 신경 안 쓰셔도 된다는 답을 하는. 이건 뭐 말인지 방귀인지.



돌봄 서비스를 요청하는 것이 부단 위탁학생만은 아니다. 교외활동이 있는 날 이런저런 사정으로 잔류하는 학생들을 도서관으로 보내겠다는 연락은 더 황당하다. 학년 구분도 없이. 뭐 그냥 웃음부터 나온다. 이제 더는 책임이고 뭐고 설명할 기운도 없다.






나는 자발적 아싸(outsider)에 꼰대 할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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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 아이의 인생에 영양을 미치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수업을 하거나 학생들에게 책을 권할 때도 교육적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원래의 성격과 다른 '교사답게'라는 수식어가 나의 행동을 부자연스럽게 했고, 내적 갈등도 있었다. 교사답게 다가가자는 마음이 스스로 꼰대 같아 보여 친근하게 다가가자니 교사와 학생과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미묘한 불편감도 생겼다. 허용적이고 친근한 관계 유지와 교육자로서의 지도, 그 적절한 중간지점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에 생각해 보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이제는 나름의 선을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학교에서 아이들이 방치되고 있다고 느껴지는 상황은 견디기 어렵다. 학교에서의 모든 활동은 학생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나의 주장에 친한 샘들 마저도 답답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한다. 요즘 애들이 어디 교사 얘길 듣기나 하냐고 조금만 잔소리하면 꼰대라고. 해서 나는 교사들 사이에서 아싸를 자청했고 즐거운 꼰대가 되기로 했다. 아이들이 등교를 해서 하교할 때까지는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아야 하고 교사는 그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생이 있기에 학교가 있고, 교사의 존재 이유도 학생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




아~ 그런데 내년 위탁학생 지도는 또 어떻게 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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