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교에서건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교과서와 지필 평가지 문제로 골치 아파보지 않은 적이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도서관의 특성 때문에 딱히 거절하기도 애매한 업무협조 중 하나라 뭐 뾰족한 대응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매사에 '이왕 할 거면 기분 좋게 하자.'를 모토로 삼고 있는 내가 유독 학교에서의 업무 영역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건 내가 이 학교를 떠나 다른 학교로 이동했을 때 후임 사서샘에게 끼칠 부당함 때문이다. 그 이유로 장그래(뭐든 '그래'라고 답하던)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내가 업무 영역에서만큼은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는 것이다.
이 학교에 발령받아 오기 전부터 교과서 선정을 목적으로 한 출판사별 교과서를 도서관에 두기 시작했다. 3단 서가의 한 면을 전부 차지하던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는 몇 차례의 건의와 정리로 상당수 치워졌고, 이제 일부만 남아있는 상태. 그런데 지난주 교과서 업무를 담당하는 교무실무사가 도서관에 와서는 남아있던 교과서마저 폐기하는 게 아닌가~ 유후! 몇 년간의 나의 안건이 받아들여진 거구나 싶어 기뻐하던 순간도 잠시. 바로 그 공간은 새로운 교과서로 가득 채워졌다. '교과용 지도서라 교과서 선정 때문에 필요한 자료라~ ' 하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댈 때는 언제고 느닷없이 아이들에게 배부하고 남은 교과서를 도서관에 보관한다는 것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어차피 할애하기로 한 서가이지만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다.
신간도서가 입고된 후에도 공간이 부족해서 폐기작업을 해야 하고 책들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혼자서 용을 쓰고 있는 걸 누가 알겠냐만 도서관 운영 취지와 목적에 맞게 바로잡고 싶었다. 그런데 부장님과 상의하고 교과서를 관리하는 교육과정부장님에게 문제점이 전달되고 실무자인 교무실무사에게 지시가 내려지는 과정 중에 문제가 발생했다. 자신의 감정까지 과하게 담은 업무지시는 담당자를 언짢게 했고 사건의 발단이 나라고 생각한 실무사는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드러냈다. 그러는 과정 중에 부장의 험담을 늘어놓는 모습이 음... 사건의 요지를 벗어나는 감정 쏟아내기로 상황을 회피하려는 태도가 날 무척이나 불편하게 했다.
여러 차례의 논의 끝에 현 상황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한 번 더 교과서 문제를 화두에 올려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으로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배려가 당연시되고, 도움의 손길이 어느 순간 자연스레 업무를 떠받게 되는 곳이 학교라는 걸 20년 가까이 경험하고 있는 내게는 작은 꿈틀거림 하나하나가 의미 있는 몸짓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치여가며 제대로 된 사서로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이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떠나게 될 이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나이고 싶은 마음이 지금은 가장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