붐비는 출근시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늦지 않으려고 종종걸음을 걸었던 나의 20대. 출근을 알리는 눈도장을 찍고 잠시 자리에 앉아 하룻밤 사이에 밀려든 메일을 체크한다. 방송담당 기자들의 요청이 대부분이다. 미팅 약속을 잡고 자리를 벗어나 A 신문사에서 B 신문사로, 한 번씩은 2~3명의 기자와 함께 만나 미팅을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눈다.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나를 힘나게 하는 건 광화문 교보빌딩 벽면에 걸려 있던 글판이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의 충격으로 우리 사회가 멈춰 섰다. 그해 5월 광화문 교보빌딩 벽면에 마음을 울리는 글판이 걸렸다.
실종자들의 생존을 기원하는 바람이 담긴 글판. 우리는 교보문고 외벽에 자리한 글에서 깊은 공감과 위로를 받았다. 잔잔하지만 따뜻한 글의 힘을 경험한 시간이었다.
그 시절 내가 위로받았듯,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아이들에게 짧지만 울림을 주는 메세지를 남겨주고 싶어 만들기 시작한 글판. 이미 너무나 훌륭한 광화문글판의 글들이 많아 글을 선정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미술이나 그래픽을 공부한 적 없는 내가 글에 걸맞은 이미지를 선정하고 디자인하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3~4개의 시안을 만들고, 선생님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최종안이 결정되면 대형 현수막으로 제작했다.
2016년 교문에 걸린 첫 글판은 나태주의 '풀꽃'.
글판이 처음 걸린 날, 아이들은 너나 할거 없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를 연신 중얼거렸다. 글판을 찍어 SNS에 올리기도 하고.
아직 잠에서 덜 깬 얼굴로 등교하던 아이들도 잠시 멈춰 글판을 바라보는 모습은 포토샵과 싸우던 고뇌의 시간을 보상받기에 충분했다.
"네 교장선생님~"
"장 선생님, 내가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고마워요."
월요일 아침, 교장선생님의 인터폰으로 전달받은 전화. 자신을 서울의 모 초등학교 교장이라고 소개한 그녀는 지난 주말 지인과의 약속으로 내가 근무하는 지역을 다녀갔다고 했다. 산책하며 걷던 길에 발견한 우리 학교 글판을 보고 누가, 어떻게 이 글판을 만들었는지 궁금한 마음에 교장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전화가 내게 연결된 것. 그녀는 자신의 학교에도 같은 형태의 글판을 걸고 싶은데 도움을 받고 싶다는 말과 함께 혹시 서울로 학교를 옮겨올 생각은 없는지를 물었다. 함께 일하고 싶다고... 무슨 벤처기업도 아니고, 순간 웃음이 나왔다.
다음 날, 그 학교 담당 사서 선생님의 연락은 첫인사부터 무거웠다.
본인은 글판을 만들 능력도 없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30분이 넘는 통화는 연신 교장에 대한 원망과 걱정으로 가득했다. "초등학생들이 뭘 안다고 그 귀찮은 걸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교장선생님이 찍어오신 사진 보니까 저는 따라 만들 수도 없겠던걸요." 그 투덜거림에는 나에 대한 감정도 숨어 있는 듯하여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조금도 편하지 않았다.
나는 자신이 없다는 초등 사서 선생님을 돕고 싶었다. 사서가 꼭 해야 하는 필수 업무는 아니지만 글판이 주는 너무나 커다란 메세지가 아이들을 더 행복하게 할 거라고 말해 주었다. 초등학교는 아이들이 직접 쓴 시나 그림을 바탕으로 글판을 제작해도 좋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도 보탰다. 아쉽지만 그 초등학교에서 글판을 걸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학교 앞 글판은 새로운 옷을 갈아입었다. 때로는 시작의 설렘을, 때로는 따뜻한 온기를, 때로는 도전의 용기를, 때로는 그리움과 감사함을 전하며 우리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