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지나가다 내 생각이 났다며 스노우 볼을 선물 했다.
여전히 나 자신은 하루하루 사라지고 없어진다.
내가 누구였는지 기억하기엔 지금해야할 일들이 너무나 많고,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다.
그와 더불어 너무나도 많은 실수와 빈틈을 보이면서 자신감도 함께 사라진다.
매일 매일 가족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구겨진 마음을 펼쳐낸다.
매일 매일 아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조금씩 성장 한다.
매일 매일 그날의 소중한 순간들을 기록하며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생겼고, 정신적으로도 지쳤다.
자연스럽게 흥얼거리는 멜로디는 동요가 되고, 회식이라도 하려고 노래방엘 가면 선뜻 떠오르는 노래가 하나도 없어서 진정한 무의 상태를 경험하기도 한다. 멜론 플레이 리스트라도 찾아서 불러보려고 하는데 최근 재생 목록은 모두 만화 주제곡들이고, 간혹 동화 뮤지컬이 섞여있을 뿐이다. 혼자 있을때 이어폰을 꽂으면 노래보다는 육아법 유튜브를 듣거나 영어 강의를 듣고 있고, 내가 좋아하던 노래는 더이상 업데이트가 되질 못한채로 몇년 전에 머물러있다.
그것들로 미루어 나 자신이 사라졌다고 할수있을까.
나는 조금 변했다. 내 취향과 관심사 같은 것들이 확연히 달라졋을 뿐이다.
하지만 여전히 전생의 기억같은 과거의 나또한 나이기에 그 시절의 나를 만나면 반갑다.
하루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아이를 낳고 한 겨울의 외출이었다. 친구가 작은 선물을 꺼냈다.
이쁜 스노우볼 이었다. 내가 좋아하던게 떠올라서 무작성 사두고 언제 만날지도 몰라 보관하고 있었다고 했는데 왈칵 눈물이 나올뻔 했다.
나도 잊고 지내던 나를, 친구가 길에서 주워다 보관하고 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딘가에서 외롭게 떨고있던 나를, 내가 잊어서 더는 내가 아니게된 나를, 친구가 잘 보관해 주고있었다.
나는 친구로부터 나를 받아들고 낯설은 마음이 일었다.
작고 반짝이는 스노우볼이 참 반가우면서도, 내가 그런 사람이었나 싶게도 나를 잘 모르겠는 마음이었다.
이제는 둘째도 낳아 키우다보니 나와 남편은 더더욱 서로의 취향에 둔감해 졌다.
우리는 이제 서로의 생일에 필요한 물건을 선물하기보다 자동차를 사기로한 통장에 선물값을 보태기도한다.
선물은 없어도 케이크와 초는 잊지 않는데, 내 취향의 치즈케이크나 레터링 케이크는 필요하지도 거들떠 보지도않고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캐릭터 케이크에 촛불은 여러번 불기 좋은 긴 초면 된다.
그러던 이번 생일에 남편이 꽃 다발을 준비해왔다. 아이들과 함께 준비했다는 케이크 위의 레터링과 자그마한 손 편지에 또 한번 낯설은 반가움을 느꼈다. 기념일 마다 그렇게 꽃과 편지만을 요구하던 나였다.
우리는 이렇게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변주된다. 하지만 여전히 그모습도 우리 자신이며, 혹시라도 잊고있을라 치면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이 어디선가 웅크러든 나를 찾아 들고와서 안겨주지 않는가.
오늘도 육아에 지친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수많은 나들.
자신없음에서 벗어나서 아이들 사랑 듬뿍받고 당당해 지자.
자신없어짐 에서 벗어나서 그 또한 나 자신임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가끔 묻어 오는 과거의 내 잔상도 반갑게 맞이해 보자.
우리는 조금씩 변해가며 더욱 멋진 악장을 펼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