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두팔 벌려 안아준건 내가 아니라 너였네.
엉망인 하루였다.
휴직과 복직을 연달아 하며 고과나 승진은 강건너 불구경하듯 남의 일처럼 여겨야 내 마음이 편안했다.
나만을 위해 시간을 보내도 놓치는것 투성이었던 내가 나를 뺀 나머지 존재들을 챙겨가며, 나까지 챙기기란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당연히 회사에서도 실수가 잦아졌고, 참 좋은 동료들 덕분에 드러낸 타박은 받지 않았어도 내심 구겨지는 자존심은 스팀 다리미가 와도 어쩔 도리가 없을 거였다.
그날도 다름없이 늦은 출근과 이른 퇴근이 예상된 하루였다. 준비된 회의에선 어제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 투성이에, 왠지 모를 오류로 의견 개진은 난항에, 후배는 반항을 하고 선배는 내가 한일이 아닌것 까지 나에게 책임을 묻는, 서글프고, 조금 억울한 그런 하루였다. 와중에 큰 아이는 돌연 피를 보고마는 사건 사고가 연달아 이어지는... 예상된 하루안의 예상하지 못한 엉망이 추가된 그런.. 보통의 하루였다.
이제 이만-큼 연차가 쌓여서는 회사에서 울일이 없을 줄 알았지. 게다가 여자가 눈물을 보인다니 최악이다.
눈물을 참는 법은 저절로 감정이 메마르는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멀쩡한척 하면서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고단하다.
왜이렇게 작아지는걸까. 제대로 하는일이 이렇게나 없을 수가 있나.
원래도 그렇게 야무지지 못한 인간이었던가. 도통 사무실로 다시 들어가 어깨를 펴고 앉아있을 자신이 없다. 이 회사를 계속 다닐수가 있을까. 스스로 깎아 내리며 화장실 배수구로 빠져나갈만큼 작아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 생각이 난다. 남편 생각도 난다. 그들은 왜 내 말을 듣지..? 이렇게 구멍 투성이인 내가 왜 집에서는 날개달린 호랑이가 되어 펄펄 날아 다닌단 말인가. 참 미안한 생각이 든다. 아니 다른 생각도 든다. 역시나 그들도 내말은 안듣고 싶겠구나. 아 그래서 내가 아침마다 그 전쟁을 치르고 등원을 시키는구나.
그러나 눈물에 절은 눈동자를 들여다보니 또 한번 다른 생각이 든다. 이 얼굴을 그래도 매일 봐주는 그이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그래도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의미있고 가치있을때는 집에서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있을 때 뿐 아닌가.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고나면 본질은 온데간데 없어진다.
그래 이렇게 생겨먹은 인간인걸 어쩐담. 조금 모자란채로 일단 버텨보자. 내가 선택한 길이고 시간은 지나갈꺼다. 그사람들이 날 믿고있는데 내가 어딜간단 말인가.
스스로 구겨진 자신을 아주 조금 펼쳐낸다.
눈물은 어지간히 말랐지만, 왠지 모르게 누가 봐도 운 얼굴만 아니게 될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양치나 한번 더 해보기로 했다.
그래도 고마운 동료들이다. 아니 멋지다고 해야할까.
후배는 섭섭한 마음을 숨기고 시키는 일을 마무리했고, 선배는 본인의 실수를 쿨하게 인정하고 별도로 연락이와 사과까지 해준다. 눈물은 달래줄때 두배가 되는법.
겨우 말려놓은 눈동자가 다시한번 시뻘개 졌다.
너무 고단하다.
이렇게 까지 감정을 소모할 정신조차 없었는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모든 일에 힘이 겹다. 아침부터 그랬다.
출근 시간은 자꾸 늦어지는데 어쩌면 하나같이 내말을 안들어 줄까. 잘 입혀놓은 옷을 한순간에 홀랑벗고 도망을 다니거나, 땀을 뚝뚝 흘리며 신발까지 신켜두면 양말까지 싹다 벗고 다시 돌아가는 무한 굴레의 등원 준비가 힘이들어 아이들을 쥐잡듯이 했다.
내 마음이 급하니 아이들 마음을 돌볼 수가 없었다. 더욱 칭얼거리는 둘째를 괜히 혼만내고 엉겨붙는 녀석을 거머리 떼어놓듯하고 도망치듯 출근을 했다니...
얼레 벌레 직장인으로의 하루를 마무리 하고 퇴근길에 차에 올랐다.
조금더 여유있게 대해줄걸.. 조금만 더 다정해질껄그랬다...
집에 도착하니 오늘 하루를 그대로 설명해주는 장난감들이 거실에 즐비하다. 나뒹구는 옷들과 헨젤의 빵조각 같은 고무줄로 이뤄진 길을 따라가면 욕실이 있다. 취침 준비가 어땠는지 알수있는 물건들의 모습...
한주에 하루정도 남편은 아이들을 도맡아 준다. 오늘은 하원부터 취침까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모두가 고단한 하루.
불꺼진 방에 들어가 술기운도 없는 엄마가 딸아이를 깨울듯이 뽀뽀를 퍼붓는다.
"깨우려고 그래?" 라며 어이없다는듯 남편이 웃는다.
"고생 많았지?" 어느새 익숙해진 우리 부부의 인사다.
서로의 고생을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 구겨진 자신이 펼쳐진다. 참 고마운 사람.
얼른 씻고 누우라고, 든잠을 치워내며 걸어나와주는 남편이 고마워 오늘 하루의 고단함을 속사포로 풀어낸다.
정확한 전달은 불가능 했겠지만 남편은 말없이 토닥여 주며 그래도 잘 하고있다고, 이만하면 대단하다고 칭찬도 해준다. 다 큰 어른도, 엄마가 되어서도, 칭찬이 고프다. 오늘치 칭찬을 남편에게서 받고나니 그래도 내일을 다시 맞이할만 해진다.
자신을 잃은날 찾아 읽기
씻고 누울 자리에는 아까 깨워놓은 첫째 녀석의 잠이 아예 달아나 버렸는지 눈도 못뜨고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이렇게 말한다.
"보고싶었어"
한마디면 충분하다. 누가 나를 무시하면 어떤가. 일에 실수가 좀 있었으면 또 어떤가. 출근이 늦고 퇴근이 일렀다면 어쩔수가 있는가. 지금은 계속해서 비상 사태다. 아이는 태어났고 이토록 사랑스럽다.
아이를 껴안고 누울라치면 갸녀린 그 팔뚝으로 내 목을 꼭 안아주며 어김없이 말한다.
"사랑해~"
나지막이 바스락 대는 늦은 밤의 대화. 둘째녀석은 세상 모르고 자다가도 잠결에 뒤로 돌아 뽀뽀까지 해준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또 다시 등원 전쟁이겠지만, '굿모닝~'으로 문을 여는 우리의 아침이 조금더 여유로워지는데는 내 할 나름이겠지.
아이들은 변함없이 사랑만 주고있다.
오늘도 아주 많이 사랑 받았네. 멋진 하루였다!
하고 집 밖에서의 모든 일들을 훌훌 털어버리면 그만이다.
내일 또 새로운 사랑으로 가득 찰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