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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소소 Sep 07. 2024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미래인과 송수신에 성공하는 법

어린 나는 분명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작고 예쁜 크로스 백을 메고 있었다.

엉뚱한 공상가였던 나의 작은 머릿속으로 혼자하던 놀이였다. 

이른바 미래인 놀이.

그 사람은 아가씨가 된 미래의 나였고 우리는 잠시 시공을 초월해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버스를 기다리는게 나의 낙이었다.


' 어른이 되는 동안 어땠나요? 어른이 된 나는 또 어떤가요?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있었겠죠? 

 ... 아니 그보다 이 힘든 일은 도대체 어떻게 끝이 났어요? '


짧은 순간 그 작은 머릿속에 어마어마한 질문 빅뱅이 일어나지만, 실재로 물어볼 수도 없고 그녀는 미래의 내가 아니지 않은가. 답을 알수없지만 궁금한 질문. 혹은 답답한 일들이 있을때마다 바래본다.

미래의 내가 힌트라도 조금 주면 안될까.


점점 자라나면서 미래인 놀이는 시시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신입사원 연수원에서의 마지막 날, 연수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불현듯 떠오른 미래인 놀이.


사실은 연수원에서 배운 것들이 얼마나 실천되고 있는가 하는.. 인사팀이 고안한 평가방식의 일부였겠지만

그것은 나에게 참신한 미래인 놀이로 다가왔다.


1년짜리 예약메일을 보내는 것.


수신인은 오로지 나였으므로 나는 약간의 양념을 추가 하기로 했다.

연수원의 지금 분위기, 이곳의 생활을 하며 내가 하는 생각들, 부서에 배치받고 해내야 할 일들에 대한 두려움, 어린만큼 과도했던 신년 계획 같은 것들 말이다.

그렇게 소소한 재미를 추가한 메일을 1년뒤로 보내두고 정신없는 신입사원시절을 보냈다. 2년차 사원이된 나는 사뭇 익숙해진 모습으로 일상을 보내다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1년전 내가 보낸 예약 메일이 것이다.


아시다시피 그 메일은 내가 쓴 것이지만 생판 처음 보는 내용이었다. 깡그리 잊고 지낸 연수원 생활과 그날의 분위기, 신년 계획들이 읽으면서 새록새록 기억이 났고 발신인인 나는 어수룩했으나 수신인인 나는 그보다는 나을 터였다. 묘하게 우월해 진 나는 곧바로 내년의 나에게 메일을 썼다.


그렇게 매년 보내던 메일은 다음해의 나에게 보내는 질문지 이자 체크리스트가 되었고, 10년을 빠짐없이 주고 받는 메일안에 미래인 비슷한 무언가가 때지난 답장을 하며 충고를 해대고 있었다.


그리고 여지없이 1월이 찾아왔고 외부메일로 예약 발송을 보내는 치밀함이 있었던 1년전의 나에게 개인계정으로 메일이 왔다. 조리원에서 새해를 맞이한 나는 노트북을 열었다.

하지만 예상 못한 우울감과 무기력감에 휩싸여 있던 그때의 나는 더 이상 내년의 나에게 질문할 것이 없었다.


그보다는 당장 내일의 나에게 질문할 것 투성이였고, 1초안에 대답을 들어야할 걱정거리들이 순서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내가되어 다시한번 1년후의 미래의 나에게 들려주는 대답말고,

미래의 내가 지금의 당장의 나에게 들려주는 대답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힌트라도 조금 주는 정도로는 성에 안차고 정답과 확신만이 필요했다.

하루하루가 질문과 선택의 연속이었고 우울증과 무기력감이란 실로 무서운 것이었다.






자신을 잃은날 찾아 읽기



조리원에 갇힌 산모로서의 나에게 미래인이 연락을 걸어온건 바로 그때였다.


- 뚜루루루루루


- ... 엄마?


섬광같은 깨달음이 내 뒷통수를 후려갈겼다.

어린시절의 시덥잖은 미래인 타령이나 진배없는 타임캡슐 놀이 같은건 그냥 새해계획 확인 용으로나 쓰면 됐을것을.. 굳이 조리원에서까지 메일을 열어보며 무슨 현생을 유지하려고 했던 걸까.

지금 내가 모르는 거의 모든것을 알고, 언제나 조언해주던 존재를 지척에 두고, 

듣고 싶어했던 많은 대답들을 잔소리로 치부했던 시절에 대한 후회나 사죄도 없이 일단 나 좀 살려달라고 할 참이었다. 힘들고 무섭고 아프고 우울해 죽겠다고 칭얼댈 참이었다.


나는 나이든 여성에 대한 존경과 동경이 있다. 첫째가 이모이고 둘째가 시어머니인데 이 두사람이 인생을 대하는 방식이라거나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방식에 부지런함과 꼼꼼함 앞에 커다란 감동이 서리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엄마라는 존재는 나이든 여성이라기보다는 너무 가까워 친구같았다고 해야할까. 내가 그동안 엄마를 곁에두고 뭘 하고있었던가 싶었다. 엄마는 나의 다정하고도 현명한 미래인 그 자체로 아직도 나의 든든한 동반자 이자 선배님 이다.


오늘도 나는 엄마와의 모닝콜로 아침을 연다.

엄마의 안녕과 나의 안녕을 확인하면서, 시시콜콜한 많은 것들을 공유한다.


지금 모르는 무언가에 대한 해답이 궁금한가?

지금 내가 아는걸 그때의 나에게 알려주고 싶은가?


서로에게 줄수있고 받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지금 바로 연락 해보시길.


무엇보다 멋진 점은 이제 내가 그 미래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두아이의 엄마로 나 또한 녀석들의 현명하고 다정한 미래인이 되어간다.

물론 이녀석들도 나를 그존재로 알아차리고 도움을 요청할때까지는 몇십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나의 미래인이 내게 했던 것 처럼, 들려줄 많은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기다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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