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는 정년이 있지만 인생에는 정년이 없다. 흥미와 책임감을 지니고 활동하고 있는 한 그는 아직 현역이다. 인생에 정년이 있다면 탐구하고 창조하는 노력이 멈추는 바로 그때다. 그것은 죽음과 다름이 없다.”
(법정 지음, 「맑고 향기롭게」, 조화로운삶, 2006, 267쪽)
운 좋게도 나는 이십 대 후반에 들어간 직장에서 정년까지 일할 수 있었다. 일하면서 염두에 둔 건, 맡은 업무는 책임을 다 하자였다.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은 내게 자존의 문제이자 자긍의 문제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이 탐탁지 않아도 일부러 흥미를 내려 했고, 조금 더 생각하고 조금 더 고민해서 했다. 이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태도가 나를 정년까지 무난하게 일할 수 있게 해준 나름의 비법이었다.
은퇴한 내게 이제 직장에서 주는 것과 같이 책임을 다해야 할 일은 없다. 대신 저절로 흥미가 생기는 일은 제법 있다. 책 읽기, 그림 그리기 그리고 글쓰기다. 책임감을 품고 이 일들을 하는 건 아니지만 잘하고 싶어 내 딴에는 조금이라도 더 생각하고 더 새롭게 해보려 노력한다. 법정 스님의 말씀대로라면 내 인생이 아직 현역이구나 싶어 마음이 놓인다.
사람으로 살아 있다는 건 인간 존재자로서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나는 받아들인다. 살기는 하는데 죽은 듯 사는 삶도 있다. 법정 스님은 그런 삶을 살 때 인생 정년이 온다고 말한다. 바로 생각이 멈추고, 사려(思慮)가 없어질 때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사려 깊음’을 ‘모든 것의 시작이자 가장 큰 선(善)’이라고까지 했다.* 죽는 날까지 생각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다.
* 박홍규 지음, 「인문학의 거짓말」, 인물과 사상사, 2017, 387쪽
ⓒ 정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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