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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옹 Mar 06. 2024

세계의 틈에 서 있는 삶

“시간, 공간, 인간이란 단어에 모두 ‘사이 간’이 들어가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틈은 어쩌면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내내 겪게 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김탁환, 「아비 그리울 때 보라」, 난다, 2015, 46쪽)     




시간(時間)은 때(時)와 때(時) 사이(間) 어딘가다. 한 쌍의 때로 인해 생긴 사이가 무한의 시간을 만들어 낸다. 공간(空間)은 비어있음(空)과 비어있음(空)의 사이(間) 어딘가다. 마찬가지다. 한 쌍의 점으로 생긴 사이가 모여 선이 되고, 한 쌍의 선으로 시작된 사이가 모여 면이 되며, 한 쌍의 면으로 된 사이가 모여 무한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이쯤에서 상상해 본다. 공간의 무수한 사이가 다시 존재를 만들어 내고, 그 공간이 시간의 무수한 사이를 만나 ‘생명’의 존재를 만들어 내는 건 아닐까. 공간에서 움직이려면 시간이 필요할 테니 말이다. 나아가 그렇게 만들어 낸 존재 간의 만남 역시 그 무수한 사이와 사이가 마주쳐서 이루어 내는 기적과도 같은 사건이 아닐까. 


인간은 시공간 세계의 존재자이면서도 사람(人)과 사람(人) 사이(間) 어딘가에 서 있다. 두 개의 때(時) 없이 시간이 존재할 수 없듯, 타자(他者)가 없으면 인간이 될 수 없다. 사람 사이에 내가 있음을 모르면 인간이 아닌 거다. 타자와의 만남 역시 무수한 사이와 사이가 마주쳐 만들어 낸 사건이니 기적이다. 운명이라 부를만하고 인연이라 부를만하다. 


그런데 마음이 영 개운치 않다. 모든 만남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다.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가져올 수 있어서다. 사랑이 아니라 미움으로 흔들 수 있어서다. 작가가 틈(사이)은 모든 문제의 근원일지도 모른다고 한 것이 옳은 듯해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비록 세계가 내는 틈이 나를 힘들게 하지만, 틈이 나를 있게 했고 틈에서 나오는 의미 덕에 살아가는 힘을 얻는데, 감사하며 살 수밖에. 그렇다 해도 이것 하나는 다짐하련다. 세계가 내놓는 모순과 부조리에 때론 저항하고 때론 오기를 부리며 살고 싶은 소심한 희망만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 정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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