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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옹 Feb 08. 2024

늙어감, 일 그리고 삶

“일은 사람이 늙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을 준다. 일이 곧 내 삶이다. 나는 일이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다. 일하는 사람은 결코 권태롭지 않고 늙지 않는다. 희망과 계획의 자리에 후회가 들어설 때 사람은 늙는다. 일과 가치있는 것들에 대한 관심이 늙음을 막는 가장 훌륭한 처방이다.”

(헬렌 니어링 지음, 이석태 옮김,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보리, 1997, 215쪽)   



  

인용한 구절은 저자의 남편인 스콧 니어링이 팔십 대에 이르러 말한 대목이다. 그는 미국의 산업주의 체제와 전쟁, 그리고 문화의 야만성을 비판하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교수직에서 쫓겨난 해직 교수였다. 1930년대 초 대공황 시기에 그는 헬렌과 함께 버몬트 골짜기로 들어가 50여 년을 자연과 더불어 자급자족의 삶을 살았다. 그들 부부는 약탈적 자본과 노동에서 벗어나 독립된 경제를 실현하는 한편, 사회를 생각하며 바르게 사는 걸 목표로 삼았다. 자본주의적 삶이 아닌, 자신들의 표현대로 “자존심을 지키며 평온하고 단순한 삶, 마음에 그리던 삶”(헬렌 니어링․스콧 니어링 지음, 유시화 옮김, 「조화로운 삶」, 보리, 2000, 6쪽)을 살아냈다. 


노동, 여가, 건강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한 부부는 직접 돌집을 짓고 자급 농장을 꾸려가며 생존을 넘어서는 이익과 불로소득을 남기지 않았다. 그러니 그들에게 일은 가치 있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스콧 니어링은 백세에 이르자 더 이상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없음에 스스로 음식을 끊고 존엄한 죽음을 선택한 데서도 삶과 일에 대한 그의 태도와 진정성이 드러난다. 


생계 수단으로서의 일만 하며 – 일로부터 가끔 자긍심을 느끼기는 했지만 - 살아온 내가, 그것에서 벗어나려 ‘명함 없는’ 은퇴 생활을 결정한 데에는 그의 영향도 한몫을 했다. 은퇴해서는 그의 삶을 조금이라도 본받고 싶어 내 수준에서 노력하며 살고 있다. 글쓰기는 할만하고 가치도 있는 게 뭐 없을까 하며 찾다 걸려든 일이다. 스콧 니어링이 가치 있는 일이 늙는 걸 막아준다니 글 쓰는 게 괜스레 뿌듯하고 즐겁다. 설령 그의 말이 틀려도 걱정 없다. ‘생각하기만 멈추지 않으면, 누구도 내 정신을 늙게 할 수는 없다’라고 하는 나만의 정신 승리 불로장생법을 가지고 있어서다.      


ⓒ 정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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