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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옹 Mar 28. 2024

아내가 맨발 걷기에 진심인 이유

일산에 사는 아내와 나는 집을 중심으로 해서 이곳저곳 걷기를 좋아한다. 아파트 단지 사이에 숲이 울창하고 널찍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는데 다 가까운 거리에 호수공원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공원이 많아서다.

   

성저공원까지의 길도 우리 부부가 애용하는 산책코스 중 하나다. 집에서 20분 남짓 거리에 있는 이 공원은 여러 주택단지를 끼고 조성된 자그마한 언덕배기 공원이다. 나무숲 사이로 난 짧은 흙길을 몇 바퀴 돌고 나면 마음이 저절로 흐뭇해진다.

 

엊그제 간만에 성저공원에 갔다. 아내가 겨우내 쉬었던 맨발 걷기를 다시 할 수 있나 확인하고 싶어 해서다. 오전까지 비가 오락가락해선지 흙길은 아직 습기를 머금고 있었고 차가워 보였다. 그럼에도 몇몇 사람이 맨발 걷기를 하고 있었다. 아내도 동참하려다 말았다. 걱정 많은 내가 아직 땅이 딱딱해서 발에 상처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러냐며 말렸기 때문이다.     


ⓒ 정승주


아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맨발 걷기란 걸 해본 게 지난 가을 어느 날이었다. 성저공원까지 산책하다 공원 내 흙길에서 제법 많은 사람이 맨발로 걷는 모습을 본 아내는 맨발 걷기가 불면증에 좋다는 언론 기사를 떠올리며 갑자기 그 자리에서 양말을 벗고 걸은 게 시작이었다. 공교롭게도 그날 밤 아내는 맨발 걷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 최면 효과 때문인지 어쨌든 숙면에 성공했다. 이후 아내는 날이 추워져 더는 할 수 없을 때까지 거의 매일 걸었다. 

   

아내가 맨발 걷기에 진심인 이유는 따로 있다. 항암 치료 후유증 때문이다. 십여 년 전쯤 아내는 대장암 발병으로 수술과 함께 장기간의 항암 치료를 견뎌냈다. 다행히 5년의 기간을 잘 넘겨 완치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아내는 항암 치료 후부터 손발의 저림과 화끈거림, 그리고 때때로 찾아오는 여러 통증에 지금도 힘들어한다.


대체로 밤에 통증이 심해져 잠자기가 어렵다. 더울 때는 화끈거려서, 추울 때는 저려서 힘들어한다. 주치의 말로는 항암 치료 부작용으로 말초 신경이 손상돼 그렇단다. 말 그대로 신경 손상이라서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단다. 운동이나 마사지가 최선이라 하니 안쓰럽고 답답하다. 


맨발 걷기를 알기 전에는 산책이 아내가 하는 운동의 전부였다. 혈액 순환 증진과 말초 신경 이완을 위해서는 걷기만큼의 운동이 없다고 의사가 권유해서다.


나는 항암 치료가 끝나자마자 아내가 힘들어해도 억지로 산책을 시켰다. 직장의 지방 이전으로 주말부부를 하기 전까지 1년 동안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아내의 산책에 동행했다. 주말부부 시절에도 통화할 때마다 산책 독려를 부여받은 임무처럼 했다.

    

십 년을 한결같이 산책해도 아내의 통증과 불면은 없어지지 않는다. 통증으로 힘들어 가끔 내색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가엾다. 마사지 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우울하다. 그럼에도 아내가 밝고 즐겁게 생활하는 걸 보면 고맙기 그지없다. 마침 주말에는 날이 맑고 포근해진다니 아내의 맨발 걷기 시즌2 시작에 동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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