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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옹 Jul 01. 2024

윗집 개 ‘가을’이

나는 ‘가을’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를 안다. 우리 부부는 가평의 어느 산골짝 귀퉁이에 자그마한 땅을 갖고 있다. 자갈밭에 컨테이너만 덩그러니 있는 땅이지만 그래도 주인의 의무(?)를 다하고자 가끔 들러 잡초를 뽑곤 한다. ‘가을’이는 윗집에 사는 개다.

     

삼 년 전쯤이다. 늦은 봄 반년 만에 들러 아내와 더불어 잡초 제거에 몰두하고 있는데, 새로 이사온 윗집 부부가 키우는 개와 함께 인사차 건너왔다. 웰시 코기 종인 ‘가을’과 인연을 맺게 된 순간이다. 부부를 따라온 녀석은 처음 보는 우리 부부를 없는 꼬리의 기운까지 끌어내 온몸으로 반겨줬다. 

    

첫 만남이 마음에 박혀 다음 만날 때를 생각해 미리 ‘가을’이의 간식을 준비해 놨다. 2주쯤 지나 다시 들렀다. 여느 때처럼 잡초를 뽑고 나뭇가지를 정리하고 있는데 녀석이 내려왔다. 윗집 주인 부부는 보이지 않고 저 혼자 내려온 것이다. ‘가을’이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를 반겼다. 주인 허락 없이 간식을 줘도 되나 싶어 망설였지만 결국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우리 부부는 가평에 갈 때면 ‘가을’이 간식부터 챙긴다. 얼마나 신경 썼던지 아내는 정작 자신의 핸드폰을 챙기지 못한 때도 있었다.  



ⓒ 정승주


우리 부부가 녀석에게 마음을 뺏긴 건 정에 약한 기질 탓이 아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보통’ 개가 아니어서다. 누구도 부인 못할 근거(?)를 내보이면 이렇다.

     

우선 ‘가을’이는 똑똑하다. 짖어야 할 때와 아니 해야 할 때를 안다. 평소에는 그렇게 과묵할 수가 없다. 반가워 아내에게 달려와 안길 때도 숨소리 하나 내지 않는다. 인연을 맺은 지 1년쯤 되었을 때다. 난데없이 짖었다. 우리 모두 놀랐다. 처음 듣는 ‘가을’이의 우렁찬 짖음이었다. 고라니인지 멧돼지인지 모르겠지만 위협 상황을 목청으로 알리고 해결한 것이었다. 우리가 아랫동네로 마실 가거나 윗집에 들를라치면 녀석은 안내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냐면 시작점인 우리 땅 입구의 갈림길에서 일단 정지한다. 어디로 갈지 정해지면 그제야 앞장서 우리를 안내한다. 또 있다. 아내가 산딸기를 따려고 바구니를 챙겨 걸으면 앞서서 가다 산딸기나무 곁에서 기다린다고 하니 신통하다. 주인 부부에 따르면 녀석은 먹을거리를 이곳저곳 숨겨놓고 필요할 때 꺼내 먹기도 한단다. 그래선지 몸이 불어나 어쩔 도리 없이 얼마 전부터는 목줄을 해 체중을 관리하고 있다 했다.

     

‘가을’이는 자존감이 높다. 지난주 윗집에 들러 차 한잔하고 마당에서 헤어져 나오는 데, 녀석은 못내 아쉬운 듯 슬그머니 우리를 따라왔다. 윗집 남편분이 돌아오라고 엄하게 명령하니 시위라도 하는 듯 걸음을 느릿느릿 떼며 주인에게 돌아갔다. 표정이 꼭 대문까지 그저 배웅만 하려는데 주인이 그것도 안 봐주냐는 듯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컨테이너 안 구석에 테니스공 하나가 눈에 띄길래 던지기 놀이를 할 요량으로 집어 공중에 던져 줬다. 나는 ‘가을’이가 공을 멋있게 받아 입에 물고 내게 가져오려니 기대했다. 그런데 웬걸 녀석은 공을 입에 물고 보란 듯이 잔디밭 한 귀퉁이에 자리 잡고서는 공을 뜯으며 너무나 진지하고 재미있게 노는 것이다. 5분이 채 되지 않아 공은 형체가 없어졌고 녀석은 ‘이제 봤냐?’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쏘아보는 눈빛이 자기는 시키는 대로 하는 여느 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가을’이는 연기도 할 줄 안다. 어느날 우리와 놀다 갑자기 사라졌다. 잠시 후, 외출하고 귀가하다 우리를 본 윗집 부부가 차를 멈추고 인사했다. ‘가을’이가 조금 전까지 여기서 놀더니 없어졌네요 했더니 윗집 남편분은 아마 지금쯤 부리나케 올라가 집을 잘 지키고 있었다는 듯이 시침 떼고 있을 거라 했다. 그러면서 비슷한 이야기를 이웃들에게서 자주 듣는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무엇보다 빠뜨릴 수 없는 건 ‘가을’이가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 볼 줄 아는 걸 넘어 따뜻한 마음까지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산책 가는 모양새만 취해도 어느새 마음을 읽고 길잡이를 자처해 나선다. 아내가 간식 주는 일을 전담했는데 하루는 내가 줬더니 그 후부터 반가운 인사는 아내에게 하고 내게는 애절한 표정만을 보낸다. 자연스레 간식 주는 일이 내 일이 되어버렸다. 심리술에 능한 여우 같은 녀석이지만 아내 가라사대, ‘가을’이는 마음이 따뜻하다 했다. 풀을 뽑고 있으면 슬그머니 다가와 몸을 기대올 때가 종종 있는데, 마치 좋아함과 반가움의 마음을 건네주려 하는 것 같단다. 그러고는 일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이내 자리를 뜬다고 했다.

     

지난주에 만났는데 벌써 산 비탈길을 누비는 녀석의 고고한 듯 어여쁜 자태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번 주에는 갈 수 없는 게 못내 아쉽다. 장마인 데다 처리할 일이 여럿 있어서다. ‘가을’이가 비록 아내를 더 좋아하지만, 녀석의 마음 한 귀퉁이를 얻어내는 것만으로 나는 족하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 때문인지 만남이 더욱 그립다. 그나저나 밀당의 고수라 만나면 뻐기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내가 원체 밀당에는 젬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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