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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옹 Jul 24. 2024

우연과 인연 그리고 선택

장마다. 비로부터 비켜나기가 쉽지 않다. 새벽까지 빗소리에 잠을 설쳤는데, 눈 떠 보니 다행히 멈췄다. 이때다 싶어 서둘러 둘레길 걷기에 나섰다. 

     

걷기를 시작한 지 5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비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우리 일행 – 아내와 나 그리고 지인 두 분 – 은 걷기를 중단하고 차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헤어지기는 아쉬웠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커피라도 한잔하자며 의기투합했다. 지인 한 분이 가까운 곳에 괜찮은 커피숍이 있다고 해 그곳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이른 시간이어선지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 주변 지리에 밝은 지인이 또 다른 가게를 추천했다. 차를 돌려 그곳까지 갔다. 또 영업 전이었다. 이번에는 아내가 단팥빵으로 이름난 가게를 제안했다. 헛걸음하지 않으려 핸드폰으로 영업시간을 검색해 봤다. 다행히 영업 중이다. 십여 분을 운전해 도착했더니만 빵집만 열었다. 같이 운영하는 커피숍 – 별도의 옆 건물 - 은 영업 전이었다.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우리 일행은 빵집에서 단팥빵 몇 개를 사서 카페 옆 탁자 있는 벤치에 앉았다. 각자 준비해 온 걷기용 간식 – 사과주스, 조각 수박, 조각 멜론 – 과 단팥빵을 나눠 먹으며 걷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그렇게 30분을 기다린 후에야 커피 한잔과 마주할 수 있었다. 




갑작스레 쏟아진 비는 오전의 내 일상을 바꿔버렸다. 비는 우연이었을까. 불교에서 말하는 연기법(緣起法)의 눈으로 보면 둘레길 초입에서 마주한 비는 우연이 아니라 인연의 결과다. 우리가 우연이라고 일컫기는 하지만 우연은 없어서다.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원인이나 조건에 기대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원인 없는 결과(사건)가 존재하지 않는다.

     

‘원인과 조건에 따라 무언가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연기(緣起)의 세상에서 우리는 중요하든 사소하든, 인식하든 못하든, 매 순간 인연이 만들어낸 사건과 마주한다. 일어난 사건(들)은 또 다른 인연(들)을 일으켜 새로운 사건(들)을 만든다. 그렇게 인연과 사건은 시공간에서 꼬리에 꼬리를 문다. 



ⓒ 정승주 

    

  

인연이 빚어낸 사건의 모습은 무궁무진하다. 산책하다 마주친 귀여운 강아지와의 만남에서부터 시험 합격, 로또 당첨, 교통사고, 아끼는 이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는 순간순간마다 부딪치는 상황의 수만큼 많고 다양하다. 나의 출생조차 인연이 만들어낸 사건이다. 그러니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예외없이 인연이 빚어낸 것이다. 살려면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응답할 수밖에 없으니 삶은 곧 선택이다. 

     

사건을 마주할 때 받아들이는 것만이 선택인 건 아니다. 회피할 수 있다면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 중 하나다. 휴일 오후 거리에서 싫어하는 상사를 먼저 보았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선택에는 옳고 그름이 없다. 그저 선택이 있을 뿐이다. 선택하는 자에게 좋으냐 나쁘냐가 있을 뿐이다. 아니,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보면 그마저 분명하지 않다. 선택 당시에는 내게 이로웠지만, 훗날 지나고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다. 확실한 건 선택한 결과에 대해서는 온전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눈치챘겠지만 선택한 결과들의 축적이 인생이다. 한 사람의 생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나 스스로 선택한 무수한 결과들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산물이다. 매 순간이 선택이고 결과까지 책임져야 하니 인생을 고해(苦海)라 일컫지 않나 싶다. 그러니 살아냈고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해하고 칭찬할 만하다. 남의 인생과 비교해 자기 인생을 재단하는 건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다. 인생에는 우열을 잴 수 있는 자가 없어서다. 세상에는 각자 고유의 빛깔을 내는, 비교 불가의 인생이 있을 뿐이다. 

   



오늘 아침 비록 둘레길 걷기를 하지 못했지만, 대신 예기치 않은 비가 가져온 ‘커피집 탐방’은 내게 또 다른 빛깔의 행복감을 안겨주었다. 짧지만 헤매며 한 빗속 드라이브 여정이 좋았고, 커피 한잔의 소중함을 새길 수 있어 좋았다. 커피집 벽에 걸려있는 누군가 – 가게 사장인 듯 - 가 그린 그림들을 보며 나눈 일행과의 담소도 즐거웠다. 둘레길 걷기에서 오는 뿌듯함과 상쾌함을 대신하기에 충분했다. 

     

은퇴 후 시작한 글쓰기는 이제 내 일상에서 제법 비중 있는 일이 됐다. 글쓰기 또한 인연이 빚어낸 사건일 터. 책 읽기를 좋아하고, 세계와 사람에 대해 호기심이 많고, 그걸 표현하려는 의지가 강한 기질에 더해, 분석하고 쓰는 일에 종사했던 직업적 이력이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할 일이 없는 처지도 제 몫을 했을 테고, 내가 모르는 무언가도 힘을 발휘했을 거다.  

    

여하튼 나는 내 앞에 나타난 글쓰기를 선택해 1년 넘게 이어가고 있다. 글쓰기가 내 삶에 어떤 영향과 결과를 내보일지 살짝 궁금해진다. 인생 후반의 삶에서 좋은 선택이길 바라지만, 설령 만족스럽지 않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내가 선택한 대로 어떻게든 삶을 꾸려 가는 데서 오는 뿌듯함,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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