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손으로, 다시 딸들의 밥을 짓다
주말 아침이면 우리 집 부엌은 이내 따뜻하고 고소한 냄새로 가득 찬다. 지글지글, 매콤하게 볶아지는 '돼지고기 김치볶음', 내 손맛이 고스란히 담겨 노릇하게 볶아지는 '감자채볶음'. 맛있는 반찬을 만드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지만, 나는 결코 혼자 요리하지 않는다.
남편은 묵묵히 내 곁을 지켜보다가, 내가 필요한 것들을 말없이 챙겨주곤 한다. 내가 불 앞에서 땀을 흘릴세라,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한여름 부엌에는 "너무 덥지?" 다정한 말 한마디와 함께 선풍기를 가져와 시원한 바람으로 환기를 시켜준다. 내가 요리에만 집중하는 동안, 곁에서 묵묵히 뒷정리를 돕는 그 사랑스러운 손길 덕분에 나는 지치지 않고 딸들을 위한 만찬을 준비한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사랑과 응원이 함께 담긴 반찬 통이 하나둘 채워져 간다. 이 모든 것은 왕복 1시간 30분의 거리를 달려, 우리의 가장 소중한 보물들을 만나러 가기 위한, 우리 부부만의 가장 행복한 의식이다.
딸들은 지금, 꿈을 위해 우리 곁을 떠나 자신들만의 작은 공간에서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20대 대학생.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고 낭만적인 단어다. 한껏 멋을 낸 얼굴로 꽃 핀 캠퍼스를 거닐고, 친구들과 밤새 깔깔대며 수다를 떨고, 때로는 설레는 미팅에 가슴 두근거릴 나이다.
하지만 내 딸들의 일상은 그 낭만과는 조금 다른 곳에 있다. 화장대 거울 앞이 아닌 두꺼운 전공 서적이 쌓인 책상 앞에 앉아, 예쁜 원피스 대신 가장 편한 운동복을 입고, 새벽 공기에 졸린 눈을 비비며 또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게 스스로 가장 빛나는 시간들과 잠시 이별하고 있는 딸들을 보면, 엄마로서 마음 한편이 짠하기도 하다. 때로는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저러다 쓰러지면 어쩌나'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낯선 곳에서 두 딸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함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얼마나 큰 위로와 다행인지 모른다.
솔직히, 두 아이의 꿈을 뒷받침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만만치 않다.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두 아이의 월세와 생활비라는 '자취 비용'만 해도 우리 부부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거기에 꿈을 이루기 위해 들어야만 하는 값비싼 '학원비'까지 더해지면, 남편의 수입과 15년을 넘게 다닌 직장의 월급만으로는 버겁다는 것을 뼈아프게 깨닫는다.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 부부가 여유롭지 않은 형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고마움을 알기에, 아이들은 단 한 번의 투정 없이 묵묵히 자신들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느 날, 반찬 통을 건네는 내게 딸아이가 수줍게 말했다. "엄마, 아빠. 우리 꿈을 이렇게까지 믿고 투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아이들이 버티는 힘이 단순히 '꿈'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자신들의 선택을 묵묵히 지지하고, 주말마다 왕복 1시간 30분의 거리를 달려와 냉장고를 채워주는 부모의 사랑을, 아이들은 온전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지 못하는 이 20대의 시간들은요, 나중에 꼭 몇 배로 보상받을 거예요. 우린 꼭 그렇게 될 거니까 걱정 마세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의 목소리에는 철없는 원망 대신, 굳건한 믿음과 고마움이 담겨 있었다. 20대의 빛나는 것들을 포기한 대가가 '희생'이 아니라, 더 큰 미래를 위한 '투자'임을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대견한 딸들의 마음을, 그리고 그 꿈의 무게를 어떻게든 함께 짊어지고 싶었다. 길을 알려주는 어른이 없었던 내 스무 살의 막막함을, 내 딸들만큼은 적어도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월급'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답은, 내가 가장 힘들었던 날들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던 '글쓰기'에 있었다.
모두가 잠든 늦은 밤, 온몸의 피로가 발끝으로 쏟아지는 것 같아도 나는 노트북을 켠다. 고요한 집안에 들리는 것은 나의 자판 소리. 그리고 때로는 늦게까지 재택근무를 하며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남편의 키보드 소리가 그 고요함 속에 어우러진다. 주방에서 나에게 시원한 바람을 선물했던 그 다정한 사람이, 이제는 밤늦은 시간까지 든든한 동료가 되어 내 곁을 지켜준다. 그 소리는 마치 '당신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응원가 같다.
‘진짜 내 이야기’만 담기로 한 약속. 스마트스토어에 도전했다 실패했던 경험, 아이들의 고민을 들으며 함께 길을 찾았던 순간들. 내 삶의 모든 조각들을 진심으로 눌러 담아 글을 썼다. 그렇게 한 자 한 자 쌓아 올린 나의 두 번째 월급.
그것은 단순한 돈이 아니었다. 그 돈이 있기에, 나는 딸들의 월세 날이 다가와도 한숨짓지 않을 수 있다. 백만 원이 훌쩍 넘는 학원비 결제 문자를 받아도, '엄마가 힘낼게'라고 웃으며 말해줄 수 있다. 그 돈이 있기에, 나는 주말마다 더 망설임 없이 딸들이 좋아하는 돼지고기를 듬뿍 사서 김치볶음을 만들 수 있다.
밤늦도록 글을 쓰던 바로 그 손으로, 주말 아침 나는 다시 딸들을 위해 칼을 잡고 감자를 썬다. 어쩌면 나의 글쓰기는, 딸들의 꿈을 지키는 또 다른 형태의 '밥 짓기'였는지도 모른다.
남편과 내가 주말마다 차에 싣고 가는 그 수많은 반찬 통은, 그래서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거기에는 '너희의 선택을 끝까지 믿는다'는 아빠의 다정한 응원과 엄마의 든든한 마음이, 그리고 딸들의 자취 비용과 학원비를 기꺼이 감당하게 해주는 나의 두 번째 월급이 사랑으로 담겨 있다.
딸들은 그 밥을 먹고 또 일주일을 버텨낼 힘을 얻고, 우리는 깨끗하게 비워진 빈 통을 받아오며, 아이들의 꿈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듯한 든든함과 대견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