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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골사람 Jul 29. 2024

2) 생활수영인 에세이, 수영장의 OOTD





  수영장 출입이 익숙해질 무렵이 되면, 수영장에 들어오는 모습만으로 수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일명 '수린이'인지, 중급자인지, 마스터즈에 버금가는 수영인인지 구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우선 수린이의 경우를 살펴보자. 검은색 강습용 수영복이나 미세하게 장식이 있는 단조로운 차림새에 패킹이 있는 튼튼한 모양의 수경을 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중급자가 되면 가장 먼저 수린이 시절에 입었던 우중충한 느낌의 수영복부터 바꾸게 된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백제의 문화를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褸華而不侈)'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는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를 뜻한다. 중급자의 수영복을 묘사하자면 이와 비슷하다. 초급자의 복장에 비해 화려하지만 지나치지 않고, 상급자의 복장에 비하면 단조롭지만 '나 이제 수영 좀 할 줄 안다'라는 표가 나야 한다. 마지막으로 상급자의 복장은 어떨까. 새벽시간 상급 레인을 가르는 이들의 복장은 세상의 모든 빛과 색을 쏟아 부은 듯하다. 그들은 마치 권력자의 선글라스처럼 날카롭게 번뜩이는 수경과 갖가지 핸드메이드 DIY 수경 끈을 갖춘 채 수영장에 여유롭게 입장한다.


   그러나 앞서 말한 수영복과 갖가지 용품들의 특성을 제외하고서도 수영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몸'이다. 여기서 몸이란, 멋진 역삼각형의 근육질이나 바비 인형처럼 날씬한 형태가 아닌 오랜 시간 동안 수영을 해 온 사람만이 가지는 특유의 근육과 활력이 깃든 몸을 말한다. 그런 몸을 가진 사람들이 펼치는 자유형, 배영, 평영, 접영을 보면 그들의 몸 위에 각각의 영법에 따라 발달하는 고유 영역의 근육이 불거져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여태껏 그보다 더 섹시한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들의 퍼포먼스를 홀린 듯 보다 샤워실의 거울 앞에 설 때면 내 수영이 어째서 제대로 되지 않는지 납득이 가는 몸이 거울 속에 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는 없다. 더디지만 조금씩 단단해져가는 정강이와 허벅지, 어깻죽지와 전완근이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일상에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으니.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몸을 면밀하게 주물러가며 '내일은 마음 한 번 따라가볼래?'하며 어르고 달래는 수밖에. 다음 날 다시 한번 수영복을 입은 거울 속의 나를 본다. 여전히 허연 밀가루 반죽을 뭉뚱그려 수영복 속에 집어넣어 놓은 꼴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멋진 어깨 근육을 번갈아 드러내는 자유형을, 완벽한 유선형을 이루며 여유롭게 다리를 저어가는 배영을, 복근의 묵직한 힘과 함께 매끄럽게 글라이딩하는 평영을, 힘껏 화난 등 근육을 드러내며 나아가는 접영을 조금씩 체화시킬 때마다 늘어갈 수영인 특유의 활력을 불어넣을 곳이 이렇게 많다는 생각을 가진다. 그렇다. 이것은 일종의 정신 승리다. 그러니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수영인들이여 조금 뻔뻔해져도 좋다. 모두 당당히 탈의실 밖으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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