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오후.
학교를 갔다 온 피곤한 날이었다.
나른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오늘도 엄마는 거실에서 자신만의 크나큰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자신의 실과 함께..
사실 어제 큰 책상을 하나 새로 들였다. 처음에는 어디에 둘까 고민을 하다가 우리는 소파 뒤에 있는 애매한 공간을 이용하기로 했다. 엄마는 흰색이 감도는 그 책상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책상은 내 공부 책상보다는 조금 더 컸고 식탁보다는 살짝 작은 사이즈였다. 왠지 모르게 눈길이 가는 건 신경 탓일까?
엄마는 만족스러워했다. 자수를 시작하고나서부터 항상 식탁에 앉아 어두운 불빛에 의지하다 작은 전등을 산 것도 잠시 이제는 큰 책상을 들이다니, 누구는 지출이 과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도 과하다고 생각한다. 전등은 벌써 작은 것 하나와 엄청나게 큰 것 한 개, 거기다 매달 나가는 공방의 비용, 이제는 크나큰 책상까지. 모든 게 많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의 자수 세계는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확장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엄마의 일상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바로 엄마가 집안일을 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딸로서 도와주지 않는 것에 대해 매우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학교를 다녀와서 먹는 간식과, 저녁, 그리고 빨래나 거실 청소까지 모든 게 한 발자국씩 뒤로 물러선 기분이 들었다. 살짝 혼란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빠는 집에 오자마자 당연하듯 저녁을 안 했냐 묻곤 자신이 요리를 시작한 지도 벌써 오래다. 그렇지만 전으로 다시 돌아가 엄마에게 자수를 하지 말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은 건 엄마도 있을 텐데 우리를 낳고 엄마의 꿈을 잊고 주부로만 사는 것은 아쉬울 것이다. 엄청나게.. 그래도 고민이 든다. 벌써 내 바지가 빨래통에 들어간 지 4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사소한 것. 나는 학교를 갈 때 매번 동생의 바지를 빌려 입었다. 게다가 요즘은 버릇도 생겨 점점 빨래통에 옷을 바로 넣지 않고 하루씩 더 입고 넣었다. 어쩐지 쓸쓸한 마음도 든다. 이건 엄마에게는 비밀로 할 생각이다.
그래서 본론으로 돌아와 오늘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우리 엄마의 거대한 작품이다. 지금 거실 한가운데에 펼쳐진 기다란 발 같은 천에는 여섯 개의 청자가 수놓아지고 있는 중이다. 아주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작품. 엄마가 이 작품을 무려 반년 넘게 작업한 걸로 난 기억한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이토록 오래 걸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매번 일찍 자던 옛날과는 다르게 새벽까지 눈을 뜨고 있고 허리는 점점 굽어가며 새벽 4시까지 버티던 엄마이다. 나는 공부를 그렇게 하라 해도 1시가 최대인데 어떻게 그렇게 버틸 수 있을까? 역시 자신이 열정을 담아서 한다면 무엇이든 잠이 오지 않고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무언가를 정말 사랑하게 되면, 잠도 배고픔도 뒷전이 될 수 있다는 것. 열정이란 결국 자신이 택한 고요한 광기 같은 것이 아닐까?
엄마는 완성할 것이다. 그리고 첫 대회에 나갈 것이다. 나는 여전히 엄마를 응원한다. 바늘이 천 위를 흐를 때, 엄마는 무언가를 되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의 꿈일까, 잃어버렸던 이름일까. 지난여름의 치열함인가.
빨래가 며칠 밀려도, 간식이 당장 없어도 괜찮다. 이제 엄마는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도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하나의 우주를 수놓고 있으니까.
세상의 엄마란 이런 존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