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호천사들
주관적이지만 적어도 아픔에 있어서는 그동안 무탄한 삶을 살아 오진 않았던 것 같다.
23살에 허리디스크 4,5번이 퇴행성으로 수술 직전의 상태였던 적이 있었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날 원래대로라면 친구와 놀이동산에 가 있어야 했다. 새벽에 갑자기 다리가 엄청 아팠다. 뭐지? 그 뒤로 양방, 한방 안 가본 곳이 없었다. 통증이 정말 대단했다.
5분도 못 서있었고 만세도 안되고 발목이 시큰시큰 칼로 누가 자르는 것 같았다. 그 당시 내 주변에는 아프거나 아픈 것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쓰면 안 된다. 누워서 쉬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그냥 들어야 했다. 통원치료를 하면서 6개월을 거의 누워서 지냈다. 하루 24시간 중 23시간은 누워있었다. 아픈 통증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온갖 예능을 다 봤었는데 그 시간이 끔찍이도 싫었다. 그때 다 봐서 지금도 티비를 안 본다.
여러 병원을 갔지만 MRI에서 보이는 것과 실제 내가 느끼고 있는 통증의 강도가 달라서 아픔이 디스크 때문인지 원인을 명확하게 알지 못했었다. 원인을 모르니 죽을 맛이었다.
이때를 생각하면 참 암담하다. 하루 종일 누워만 있으니 온몸이 아파졌다. 사람마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 있는데 아마 나의 높았던 텐션의 떨어짐과 내가 가지고 태어난 에너지가 이때 절반 이상은 고갈됐다고 본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대학병원 예약이 4개월을 기다리니 내 순서가 됐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서울대학병원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디스크는 mri보다 환자가 느끼는 통증의 강도로 진료를 보는 게 맞다고 하셨다.
통증의 강도로 보면 수술 직전의 상태이기는 하나 나이가 어리고 허리는 최대한 안 건드리는 게 좋으니 많이 아파도 헬스는 재활의 기초로 만들어진 운동이라 한번 참고해 보면 어떻겠나. 스트레칭 수준의 PT를 받아보라고 하셨다.
와.......!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다...!!!
살 것 같다.
족쇄가 풀렸다!!
답답해 미쳐 버릴 지경이어서 움직이라는 소리가 당장의 통증이고 뭐고 너무 기뻤다. 그 길로 바로 지인이 소개해 준 미아사거리에 있는 헬스와 필라테스를 섞은 동작을 만드는 헬스장으로 갔다.
거기서 민정 선생님을 만났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사람이자 내 인생 첫 번째 귀인이다.
몸은 마음과 연결돼 있다. 몸이 아프고 못 움직이는 동안 내 마음도 한없이 바닥이 돼 있었다. 그동안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살았던 터라 몸을 쓰는 것에 두려움이 가득했고 더 안 좋아질까 봐 초예민한 상태였다.
만세도 하기 어렵고 배에 힘을 주는 방법도 까먹었었다. ‘이렇게 아픈데 운동을 해도 괜찮을까? 나을 수 있을까?‘ 앞이 깜깜했지만 족쇄가 풀어짐에 신남도 있었다. 민정 선생님은 운동은 물론이고 불안한 마음을 다독여 주는 것부터 식단, 운동, 열렬한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우린 죽이 잘 맞아 친구가 되어 갔다.
애정으로 살뜰하게 보살펴 주셨다. 가장 힘들었던 때에 인생에서 잊지 못할 참 귀한 분을 만났었다. 정말 감사하다.
당시의 유일한 희망은 운동이었기에 눈을 뜨면 바로 헬스장으로 가서 스트레칭 수준의 PT를 받았다. 한 달, 두 달 낫기 위해 애쓰고 또 애썼다. 두 달이 돼도 통증이 그대로였다. 너무 아팠다. 낫고 있는 걸까? 불안했지만 나를 믿고 민정 선생님을 믿었다.
나을 거야 효진아 잘하고 있어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보냈다. 선생님이 자신의 일처럼 나의 완치를 바라주고 곁에서 큰 힘으로 계셔 주셔서 너덜너덜했지만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여전히 통증은 그대로인데 세 달째부터 전 달에 하지 못했던 동작을 하는 나를 보았다.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던 터라 크게 체감이 안 됐었지만 작은 희망을 쫓아 그래도 스스로에게 박수 쳐주며 통증이 다 사라질 때까지 하루도 허투루 살지 않았었다. !!
빨리 낫고 싶었던 나는 그때 스스로에게 늘 새겼던 말이 있었다.
오늘이 쌓여 내일이 된다.
오늘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일의 나에게도 변화가 없다.
오늘 조금이라도 해야 내일 조금이라도 나아있다.
10개월 내내 일반식은 전혀 먹지 않았고 오로지 정해주신 자연식으로만 먹었다.
주식은 파프리카와 감자였다.ㅎㅎ
그렇게 매일 운동과 식단을 하고 각고의 노력을 쏟아 드디어 10개월쯤 됐을 때 통증이 다 사라졌다.
이때의 노력들과 아픔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쿡쿡 아리고 아프다.
죽을 만큼 힘들 때 살 구멍 하나는 꼭 있다며 엄마가 나에게 늘 얘기해줬던 게 이때에 민정 선생님을 만났던 것이었구나 싶다.
애정으로 함께해 주셨던 시간 덕분에 다 나을 수 있었다. 언젠가 이 글이 선생님께 닿아 지난날을 생각하며 나와 같이 웃는 날이 오길 바라본다.
통증이 거의 없어질 때쯤 근처의 헬스장에 데스크 아르바이트를 지원을 했었다. 커뮤니티센터 안에 독서실과 헬스장, 골프장, 카페가 있었고 알바친구들과 직원분들 모두 너무 좋으신 분들을 만나 행복하게 일했었다.
디스크는 평생 관리해야 하는 관리의 병이다. 앞으로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하는데 다치지 않고 제대로 운동을 배워보고 싶었었다.
용희 트레이너님에게 PT를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용트레이너님과 5년 넘게 꾸준히 PT를 받았었다.
내 인생 두 번째 귀인이다. 용트레이너님.
PT를 하게 되면 친해질 수밖에 없다. 사소한 일상 대화들도 많이 하기 때문에 스타일이 안 맞으면 운동을 즐겁고 꾸준하게 하기는 어려워진다.
용트레이너님은 운동을 하려고 하는 사람을 도와주려고 하는 마음이 강했고 항상 성심성의껏 성실하게 운동을 지도해 주셨다.
따뜻하고 항상 한결같으셨다. 함께 운동을 하면 동작 하나하나에 온전히 집중 되게 포인트를 잘 짚어주신다. 이해가 쏙쏙!
함께 일할 때는 PT비용도 절반으로 해주셨었다. 처음 봤을 때 이분은 천사이신가..? 했었다. 성실하게 운동도 잘 알려주시고 여러 배려도 해주신 덕분에 다치지 않고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었다.
중간중간 쉬기도 했지만 5년을 넘게 운동하면서 디스크 평생 완치의 길에 늘 함께해 주셨다.
재발에 대한 불안함 없이 내 몸을 가장 잘 아는 선생님과 언제든 운동이 하고 싶거나 운동처방이 필요한 날에는 기분 좋게 달려갈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나의 쉼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아 있다.
용트레이너님과의 운동시간!
시간이 흘러 흘러 26살 때 꽃일을 처음 시작하게 됐는데 일을 하다가 발을 다쳤었다. 꽃을 어깨에 들고 에스컬레이터로 내려가다 뒤꿈치로 다다다다..! 미끄러졌다. 아뿔싸. 양발을 다.
하필 프로젝트를 맡은 때에 다쳐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했었다. 정해진 일정을 마치고 퇴사를 했고 본격적인 치료를 받았다.
까치발이 안되고 뛰기도 안되고 1000걸음을 겨우 걸었었다. 아픔이 지겨웠다.
또? 이번엔 발? 젠장. 괜찮아
그래도 디스크 때와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도수 치료를 거의 70회를 받았나. 도수치료는 1회 1시간에 13만 원이었고 보험 한도는 40회까지였다. 주 3회씩 총 40회를 받았는데도 완치가 안 됐었다.
더는 비용이 부담이 돼서 횟수를 줄여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담당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이후에 70회까지를 따로 무료로 치료를 해주셨다.
이 사람은 꼭 낫게 해 줘야지
라며 생각하셨다는 그 마음이 어찌나 감사한지. 치료를 그냥 해주시는 것도 너무 놀랐는데 나를 특별히 꼭 완치시켜 주겠다며 하셨던 말들이 발은 아파도 마음은 치유되는 듯했다.
곧 퇴사를 앞두셨던 선생님은 나를 낫게 하기 위해 책임을 가지고 특별하게 대해주셨다. 친구들은 신나게 놀거나 열심히 일하고 다들 아픔이 뭔지도 모르는데 나만 자꾸 아파지는 게 얼마나 외롭고 서러운지 글로 설명이 안된다.
내 속상함을 알아주기라도 하는 건지 삶은 아픔만 주지 않고 수호천사들도 함께 보내 줬다. 내가 그 신호를 놓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도수치료가 거의 끝날 무렵 발을 조금씩 써야 해서 맨몸 운동을 하는 센터를 등록했다. 거기서 수지 선생님을 만났다.
운동을 가면 상큼한 에너지로 매번 나를 듬뿍 반겨줬다. 더딘 회복에 아픔이 길어지면서 우울감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수지 선생님의 착함과 러블리함이 큰 위로가 됐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항상 미소가 지어진다.ㅎㅎ
발목이 아팠지만 수지 선생님의 존재가 큰 힘이 됐고 밸런스 운동에 재미를 붙이며 꾸준히 가게 됐었다. 일상에 방해가 될 정도의 아픔이 차도가 더딘 건 정말 힘들었다.
나으려고 애쓰는 것도 점점 지쳐갔는데 상큼한 에너자이저 수지 선생님과의 운동으로 쩍쩍 갈라졌던 마음에 희망이 걸어 들어왔다.
생각해 보니 힘들 때 도와주던 귀인들 모두 서서히 친구가 되어갔다. 죽어있던 사람이 다시 웃으려면 딱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걸 잘 안다.
지지해 주고 존중해 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힘이 솟구친다. 믿음의 힘. 지금의 내가 있는 이유라서 내 인생에 등장해 주신 귀한 사람들을 꼭 얘기하고 싶었다.
정신과 상담에서 만난 하나 선생님. 처음 간 상담 센터에서 이렇게 잘 맞을 수 있나 싶었던 내게 또 다른 엄마가 되어주신다는 선생님을 만났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존중해 본 적이 있었던가? 진짜깊이 상대방을 이해해 본 적이 있나? 선생님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진짜 존중이구나 이게 정말 이해하는 거구나를 알려주셨다. 선생님이 내게 하는 걸 보면서.
그동안 열심히 달려오신 선생님이 얼마 전 안식년을 가지기로 결정하셨고 어찌 말할지 고민을 오래 하셨다고 했다.
상담사로서도 개인으로서도 효진씨는 저에게 귀한 사람이에요.
라면서 선생님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으로 감사한 제안을 해주셨다. 선생님에게도 내가 귀인이라는 얘기가 너무 행복했다. 내가 몹쓸 일을 당해 오면 나 대신 소리쳐 주고 마음이 아픈 일을 겪으면 함께 울어주신다.
살면서 이런 분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상담을 처음 갔을 때 벼랑 끝에 있는 기분이었다. 곧 떨어지겠다. 정말 괴롭다. 힘이 없다. 답답하다. 지친다. 지겹다. 숨고 싶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들이었다.
첫날 선생님이 그러셨다.
잘 오셨어요.
사람들은 벼랑 끝에 절망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니에요.
그 끝에는 희망이 있어요.
아차 싶었다. 왜 당연하게 절망이 있을 거라고 무서워했지? 예전엔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잖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내게 정말 문제가 생겼구나. 나를 돌봐야겠다. 그렇게 상담을 시작했다. 선생님과 한배를 타고 지금은 희망으로 가는 과정에 있다.
2023년 7월 3일. 언젠가 꼭 책을 쓰고 싶다는 오랜 꿈에 용기를 낸 날이다. 용교 대표님의 전자책 수업을 신청 한 날
대표님은 예전에 헬스장 데스크에서 일했을 때 종종 뵀었다. 용트레이너님의 친한 형이었다. 꽤 오래전에 처음 봤었지만 확실한 인연이 시작된 건 전자책 클래스였다.
클래스 등록을 하고 파주에서 뵌 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모든 게 생생히 기억난다. 조심스럽게 내 얘기를 하고 대표님의 얘기도 듣고 4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렇게 7월 3일은 나에게 잊지 못하는 날이 됐다.
아주 오랜만에 긍정으로 뭉친 사람을 만났다. 사람에게 받은 부정적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많이 아파있던 난 눈물이 날 정도로 대표님이 반가웠고 많은 위로를 받았었다.
6살 누나가 5살 동생한테 자전거 알려주듯이 쓰면 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뭐든 해도 좋다.
조언은 함부로 아무에게나 구하지 말아라.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긍정의 말로 툭툭 그간의 대표님의 삶의 경험치로 나를 쳐주셨다. 흐리멍텅해진 마음이 아차! 하고 정신이 차려졌다.
나도 저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살아야 아프지 않은지. 잊고 있었던 나를 끄집어내 주셨다.
말은 그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데 대표님의 세상은 건강하면서 단단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이 명확하고 이미 목표점에 도착해 있으신 것 같았다. 이미 완성된 느낌이었다.
이날부터 대표님의 팬이 되기로 마음먹었고 지금까지도 내가 본 게 틀림이 없구나 매번 확신한다.
모든 만남에는 적절한 때가 있는데 지금 이때에 대표님이 나의 삶에 등장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아주 귀한 사람을 보내주셨구나 싶었다.
그 뒤로 상담 선생님께 이날의 만남에 대해 얼마나 기뻤고 벅찬 마음으로 얘길 했는지 모른다. 새로이 시작하는 나의 인생 2회 차에 물꼬가 되어주신 분이다.
몇 번의 아픔이 덜컥 오고부터 낫기 위해 노력하며 알게 된 게 있다.
내일 정말 내가 죽을 수도 있구나
하루 앞도 모르는구나
그러니 최선을 다해
후회 없는 오늘을 살아야겠다
아픔을 힘겹게 이겨내면서 뼈에 새겨진 말이다.
그래서 내가 느낀 것들에 대한 모든 표현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고 그때부터 더 충실하게 열정을 다해 하루를 보내왔다.
힘듦을 기억하는 것만큼 귀한 인연들을 늘 잊지 않고 살려고 한다.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건 감사하게도 수호천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니깐.
감사한 마음들을 표현하고자 얼마 전에 메달을 제작해서 선물했다. 선물을 전부 하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감사한 분들에게 힘들 때나 즐거울 때 나 또한 진심으로 울어주고 웃어주고 싶다.
내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나도 언제든 달려갈 것이다.
(그동안 아픔을 겪고 이겨내려 애썼던 나에게도 메달을 선물했다)
나의 수호천사들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