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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의숲 May 03. 2024

유머를 잃지 말아야지!

내가 나에게 보내는 사이렌

나의 학창 시절을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은 알겠지만 난 정말 웃긴 사람이었다. 이유 없이 즐겁고 흥과 에너지가 넘쳐났었다. 서울로 이사 오기 전 초등학교 입학 전에 포항에서 살 때였다.


11층에 살았는데 유치원을 다녀와선 “엄마 다녀왔습니다! 하고 나 놀다 올게!” 들어왔던 문이 닫히기도 전에 그 틈으로 슝~ 나가 놀았다.


같은 아파트 9층, 10층에 단짝 친구들이 살았었는데 하루 종일 음악을 틀어 놓고 셋이서 흥을 불태우며 춤을 추고 놀았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빠의 회사 발령으로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됐었다. 서울이든 포항이든 나에게 위치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새로운 친구들은 어떨까? 우와 재밌겠다!”


눈앞에 비눗방울이 빵빵 터지듯 모든 것들이 재밌고 신기했고 하루하루 신나고 설렜었다. 내 어릴 때를 떠올리자니 웃음이 난다.


서울에 전학 와서의 첫 기억은 앞자리에 있는 친구에게 지우개를 빌려주었는데 지금 그 친구는 나의 가장 오래된 절친이 됐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수업이 끝나면 마치 우린 의식처럼 8명의 친구들과 학교 앞 분식집에 가서 넓은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라볶이를 시키고 파티를 했다. 복닥복닥 그땐 그게 그렇게 맛있고 재밌었다.


늘 나의 황금기는 10대였다고 말해왔을 정도로 예상 밖의 재미난 일들이 많았던 다이나믹한 10대였다.


중학교 배정을 받는데 우리 학교에서 몇 명만 가는 꽤 먼 중학교에 당첨이 됐다.


슬픔은 잠깐이었고 가면 어떤 새로운 친구들이 있을까? 기대와 설렘으로 이름도 낯선 학교로 입학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본격적으로 판을 더 키워 놀았었다. 수련회나 수학여행 때면 친구들이 호명해 앞에 나가 춤을 췄었는데 일제히 도미노처럼 자지러지게 웃으며 뒤로 쓰러졌던 기억을 떠올리면 여전히 짜릿하다.


만우절은 빅 이벤트의 날이었다. 합리적으로 장난을 쳐도 괜찮은 날 아닌가.! 신나 신나 친구들과 레퍼토리를 함께 짜고 난 실행을 담당했다.


*23#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친구에게서 장난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오호 이게 재밌는 거다. 화답으로 팀원 2명과 스토리를 짜고 친한 친구들에게 장난전화를 했다.


친구들은 나인걸 금방 눈치를 챘고 주거니 받거니 티키타카가 오가며 서로 즐겼었다. 생각보다 큰 호응을 얻어 일이 꽤 커졌었고 지금도 친구들과 가끔씩 그때를 곱씹으며 웃는다. ㅋㅋ


고등학교 때는 체조경기장을 빌려서 체육대회를 했을 정도로 체육에 진심이었던 학교를 다녔었다. 1학년 때는 핸드볼, 2학년 때는 농구. 3학년 때는 배구였는데 의기투합해서 주말에도 모여 연습하고 다 같이 전투적이었다.


응원단장을 맡았는데 응원하다가 성대결절이 왔을 정도였다.

“나는 람보다!!! 우두두두두” 역시나 내 대사였던 만우절도 기억난다.


장난꾸러기에 친구들 웃겨주는 게 마냥 재밌었고 매사 열정적이고 높은 텐션의 밝은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주변에 사람들이 늘 많았고 개그우먼 하라는 얘기도 정말 많이 듣고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도 있었다.


설렘과 즐거움으로 넘쳤던 내 10대는 이러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똑같이 어떤 재미난 일들이 펼쳐질지 기대됐었고 소소한 걸로도 흠씬 행복해했었다. 난 내가 훗날 대통령이 될 수도 있겠거니 하고 생각했다고 하면 말 다 했다고 본다. 하하


그러나 20대가 되고 10대 때와는 다른 전개가 펼쳐졌다.


인생의 쓴맛을 처음 맛보게 되는 일이 찾아왔다. 허리 디스크가 터진 것이었다. 만세도 못하고 5분도 걷기 힘들었다. 쾌활했던 나는 이때를 기점으로 낫기 위해 애쓰면서 에너지의 절반 이상이 날아갔고 이 전보다 훨씬 차분해진 계기가 됐다.



예전에 존경했던 회사 대표님께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 있다.


평생에 쓸 에너지의 총량이 각자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학원이며 과외며 선행학습을 하는데 초등학교 때 100점을 맞는 게 뭐가 중요하냐는 말이었다. 에너지 총량 법칙을 얘기해 주시면서 인생에서 스퍼트를 날려야 할 때 적재적소에 에너지를 발휘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시험인 수능을 위해 고등학생 때. 가고 싶은 곳에 들어가기 위해 취업 준비를 할 때.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등등 말이다.


다시 예전의 텐션으로는 돌아가지 못하는 걸 보고 이 얘기가 더 와닿았었다.


‘저때부터였을까? 지쳤던 마음이?’


그 뒤로도 좀처럼 특별한 일들이 내게 일어났었다. 한창 좋아하는 일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을 때 일하다 양 발을 다쳐서 잠시 멈춰야 할 때도 있었고 내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전력 질주를 해야 했을 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번아웃이 찾아왔다.


에너지가 전부 소진된 것이다.


냄비에 물을 붓고 끓이면 물이 끓다가 계속 가열하면 물이 점점 증발하고 물이 하나도 안 남았을 때면 냄비에 불이 붙어서 냄비가 타버린다. 정확한 설명의 내 상태였다.


호쾌하고 누군갈 웃겨주며 밝고 유쾌했던 예전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 갔다. 그땐 삶이 힘들어지다 보니 자연스러운 일이라 여겼는데 상담을 하면서 유머는 나의 줄기이자 생명력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나 힘들어 살려줘“ 내가 나에게 보내는 사이렌이었구나. 지나고 보니 그러했다.


누군갈 웃겨주는 힘이 부족해지거나 일상에 웃음이 사라지고 뾰족뾰족해지고 있다면 앞으로는 스스로에게 꼭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조금 쉬어가도 괜찮아 효진아’

‘너무 애쓰지 마. 너보다 소중한 건 아무것도 없어.’

‘힘들지? 요즘 널 힘들게 하는 게 뭐야?’

‘지금도 너무 잘하고 있어!‘

‘네가 싫으면 하지 마!’


잠시 모든 걸 멈추고 내가 하고자 하는 얘기들을 귀담아 들어줘야겠구나 싶었다.


나를 벼랑 끝에 내 몰았던 날들이 스스로 많았다면 나와 화해하는 데 어렵고 오래 걸리겠지만 어느 누구보다 나는 나랑 친해야 한다.


나에게 보내는 사이렌을 알아차리자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닌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나를 내가 사랑해야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을 어쩌면 우리는 머리로만 알고 있지 않을까?


나를 사랑한다는 건 뭘까?

어떻게 하는 게 나를 사랑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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