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놀이에 관하여
아이가 어렸을 때 '놀이'에 집중했다. 나만의 규칙이 있었다. 하루 한 번 바깥놀이 필수! 계절 변화 인식하기, 키즈카페와 같이 '만들어진 놀이공간'을 지양하고 같은 곳일지언정 매일이 다른 자연에서 놀기였다. 걸음마를 시작한 무렵부터 매일 밖으로 나갔다. 운이 좋게도 사는 지역은 도시와 농촌의 그 어디쯤인 분위기였고 지천이 공원이고 산이고 계곡이고 들이었다. 부산 기장 바다는 차로 20분이면 가닿았고, 7번 국도가 생기면서는 울산을 비롯 부산까지 1시간 내외로 도착이 가능하니 공원이란 공원은 다 순방했다.
푸릇푸릇 봄에는 꽃구경하러, 후텁지근 여름에는 바다로, 울긋불긋 가을에는 수목원으로, 바사삭 겨울에는 부러 강이나 계곡을 찾아 얼음을 깨며 놀았다. 오로지 놀기 위해 내일을 기다렸다. 광활한 공터에 던져 놓아도 막대기 두어 개와 돌멩이를 가지고도 몇 시간을 놀 수 있는 아이로 자랐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는 차츰 소탈하고 얌전한 아이로 성장했다. 이것은 나의 육아관에 따른 영향이기보다 타고난 아이의 성향과 기질일 터,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끌어내는지는 나의 몫이었다. 소탈하고 순응적인 아이는 크게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았고, 여러 번 옳고 그름을 설명하면 어느 정도 수용하며 받아들이기를 잘했다. 이것 또한 해도 되는 것에는 한없이 기회를 열어 주고, 할 수 있는 무수한 것들 중 이것만은 절대 안돼라고 했을 때 안되는 것을 십분 받아들이고 따를 수 있는 것이었다. 아이가 말을 잘 듣는다는 건 그런 것이다. 부모인 내가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었을 때 아이도 나의 말을 잘 들어주는. 일방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이나 불안, 걱정을 버리고 상호보완하는 삶을 추구하면 아이와의 육아도 마냥 '힘들지만은' 않은 것이 될 수 있다.
흠뻑 노는 시기에 온 에너지를 쏟았고, 그것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배움이나 경험은 온전히 아이의 몫이었다. 그것을 확인할 방법도 없었고, 이유도 없었다. 마냥 '놀기'만 하던 아이가 43개월에 처음 유치원을 가게 되었다. 따지고 보면 아이의 첫 사회생활이고 24시간 엄마와 생활하던 아이가 하루 중 일정 시간 동안은 엄마가 아닌 외부, 그것도 여러 명의 사람과 교류하며 보내게 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은 나의 육아가 이전과 이후로, 180도 변경되는 사건이었는데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아이 스스로 움직임이 가능한 시기부터 작은 것도 스스로 하길 원했던 나는 그것을 가르치는 일을 귀찮아하거나 피곤해 하지 않았다. 100번을 이야기하고, 1000번을 이야기할지언정 같은 말을 계속해서 들려줬고, 실제 100번이 가지 않아 아이는 자신의 행동을 수정 보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말이 마치 우리 아이는 뭐든 척척 혼자서 잘했다고 받아들여질까 걱정되긴 하지만 아마 나와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키워내신 부모라면 이 말의 참의미를 잘 알 거라 생각한다. 스스로 무엇을 한다는 건 그것을 잘 해내는 것이 아닌 '노력'한다는 의미이고, 그 노력으로 말미암아 2차, 3차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아지더라도 그것을 묵묵히 치러내며 아이의 노력에 애정을 담뿍 흘려 넣는 일이다. 혼자서 밥을 먹고, 옷을 입고, 물을 따라 마시고, 신발을 꿰어신는. 단순하지만 결코 혼자서만 하기에는 벅찬 자잘한 일들을 아이 혼자 하게 했다. 차려 놓은 밥의 2/3를 바닥에 쏟기도 하고, 입는다는 옷이 계절과는 상관없이 제멋대로고, 신발과 양발을 거꾸로 꿰 넣어도 그것을 부러 수정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것을 잘해서가 아닌 아이의 노력과 애씀에 대한 나만의 응원과 지지였다.
나의 응원과 지지를 힘들지 않게 획득한 아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점점 더 확장 시킨다. 실제 한국 나이로 다섯 살,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서 그런 아이의 진면목이 여실히 드러났다. 유치원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말로는 기본 생활 태도와 습관을 끊임없이 설명했는데 막상 유치원에 가니 아이는 웬만한 것들을 혼자서 충분히 해낼 수 있었다. 그것은 이전의 육아가 이후에는 불필요함을, 그 불필요함은 일면 양육자인 나에겐 감사한 틈이었고 여유가 되었다. 아이가 혼자서 하는 일이 늘어나니 상대적으로 내가 해줘야 할 일들이 줄었다. 그것은 아이가 무엇을 잘해내서가 아니라 십분 자신의 일이라 느끼는 타당한 태도에 기인되는 것이었고 실제 아이는 또래에 비해 손과 입이 야무졌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야무진 아이의 행동은 돌 무렵부터 빼먹지 않고 정성 들여 만들어간 놀이 시간 덕분이었다. 놀이를 하면서 아이는 세상을, 상대방을, 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자신을 설득하고 움직일 수 있는 힘을 키워낼 수 있었다. 매 시기 아이에게 필요한 적절한 자극을 줬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또래와 비교하며 끊임없이 나의 아이를 평가하고 재는 일에 진즉 마음을 내려놓았고, ‘평균’이라는 것의 허점을 일찍이 알았기에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었다. 각자의 속도대로 성장할 것이며 그것이 비단 모자라거나 혹은 넘치는 지점이 보인다면 적절하게 그것을 매만져주었고 아이 본연의 능력과 성향을 온전히 수용하고 공감해 주었다.
점프를 하거나 날아가는 공을 잡거나 움직이는 공을 발로 잡아 멈춰세우거나 기다란 철봉이나 나무에 매달리는 아이의 몸놀림은 내가 보기에도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그런 아이의 몸씀은 그간의 축적된 놀이에서의 경험이 몸에 녹아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는 걸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아이의 몸에 대한 믿음은 이후 아이의 모든 영역에서 거부할 수 없는 소소하지 않은 나만의 ‘믿는 구석’이 되어주었다. 초등학교에 입학 한 아이는 여전히 막대기와 돌멩이, 풀잎과 나뭇잎을 여전히 줍고 만지고 냄새 맡고 집으로 가져온다. 애지간한 곤충은 다 맨손으로 잡을 수 있고, 나뭇 가지에 열린 열매를 걱정 없이 베어 물고 화단의 나무들을 손을 쓸어가며 그것들을 만지고 느낀다. 그런 아이의 모습은 오래전 내가 바랐던 이상이었고, 자연의 모든 부분을 더럽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의 태도는 앞으로 맞닥뜨릴 미지의 세계도 같은 시선과 마음으로 피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되어준다.
만들어진 공간에서만 놀던 아이들은 계속해서 만들어져야 놀이라는 걸 할 수 있고, 실제 그런 아이들은 ‘심심해’나 ‘여기서 뭐 하라고?’를 달고 있다. 심심할 겨를도 없고, 어디에서든 할 것이 무궁무진한 아이들과 결코 같을 수 없다. 아홉 살 아이는 여전히 스스로 놀잇감을 만들고, 놀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며 어딜 가더라도 자신의 스타일대로 그 공간과 시간 속에 푹 젖어든다. 논다는 건,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일이 아니다. 만들어진 환경이 아닌 스스로가 설계하고 계획한 놀이를 밥 먹듯 한 아이들은 앞으로의 삶에서도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계획할 것이다. 불현듯 한 아이를 키우며 내가 가장 잘 한일은 아마도 도시락을 싸 들고 아이와 매일매일 그곳이 어디가 되었던 소풍이었던 그때, 아이와 함께 미친 듯이 그 시간을 놀았다는 것. 그것은 비단 아이만을 위한 시간이 아닌 아이와 엄마인 내가 미처 다 느낄 새 없이 시나브로 성장하고 자라났던 시간들이었다는 것. 다시 시간을 돌린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아가, 오늘은 어딜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