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성교육에 관하여
흔히들 '쭈쭈'라고 해서 영아기 때부터 모유를 먹고, 또 말캉한 엄마의 가슴을 아이들은 좋아한다고 했다. 마치 수면 의식처럼 아이는 엄마의 젖가슴을 말랑이처럼 주물거린 다는데 여느 아이들과 다르게 단 한 번도 내 가슴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아이다. 사실, 출산 후 모유가 나오지 않아 50일가량은 유축기로 최대한 쥐어 짜내 하루에 40밀리리터씩 먹인 게 다다. 그마저도 못할 짓이라 여겨 단유를 결심했다. 쥐어 짜내는 행위가 볼썽사나운 건 둘째 치고 그 통증은 그 시절, 그러니까 갓 출산 후의 몸으로 진행 시키기에 무척 힘든 일이었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가슴을 한껏 그러모아 깔때기 모양의 기구를 유두 주변에 덮은 후 스위치를 켜면 요란한 엔진음이 방안을 가득 메운다.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압력에 내 몸도 마음도 함께 짜부라지는 것 같았다.
과감히 모유를 중단하겠다 엄포를 놓으면서 그 밤 나 홀로 방 안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이제 와 그 감정을 100% 온전히 표현하기란 불가능하겠지만 아마도 모유를 수유하는 행위 안에서 아이와 내가 완벽하게 이어져 있다는 느낌을 두 번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에 대한 서운함과 애틋함이리라. 아닌 게 아니라 아이가 옴팡진 입술로 어떻게든 빨아먹겠다 온몸에 힘을 잔뜩 주고 나의 가슴팍에 안겨 있는 시간과 그 느낌이 실제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거짓 없는, 농도 짙은 사랑이었고 그전과 후로 그런 느낌을 가져본 적은 없다. 아마도 그것이 흔히들 말하는 세로토닌이 과분비된 상태가 아니었나 싶다.
생각해 보면 모유를 먹이던 생후 1~2개월 이후로 아이는 나의 가슴에 단 한 번도 관심을 내보인 적이 없다. 늘 함께 목욕을 하고 아이 앞에서 옷을 훌러덩 훌러덩 아무렇지도 않게 벗고 입었으며 동성이라는 이유로 더더욱 가릴 것 없이 벌거벗다시피 지냈지만 8살이 되기 전까지 아이는 이렇다 할 관심이 없었다. 전혀.
6세부터 스멀스멀 성교육(이라 말하고 성에 대한 이야기로 읽기를)을 시작해 보고 싶었던 나는 당최 아무런 관심이 없는 아이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나 그것이 하나의 숙제였다. 부러 생리대를 아이 앞에서 쩍쩍 뜯어가며 물어봐 주길 기다렸고, 샤워 때 아이의 몸을 닦으며 음순과 젖꼭지 같은 단어들을 부러 소리 내며 아이의 몸을 닦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전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어떻게 하면 물놀이를 좀 더 할 수 있을까, 엄마 몰래 샴푸를 얼마큼 짤 수 있을까, 새 칫솔로 청소를 한답시고 타일 틈을 박박 닦고는 금세 자기 입으로 밀어 넣어 아무렇지도 않게 양치를 하는 아이에게 여성과 성, 젠더 이야기는 염불과도 같았으리라.
그렇게 나 또한 아이가 필요로 할 때 천천히 이야기해주자 싶어 마음을 접고는 일상에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또 그것에서의 불편함이나 기민함을 이야기하고 이해하는 대화로 자연스럽게 성을 알려주었다. 양성평등은 물론이요, 동성애와 동성혼에 대한 이야기까지 있는 그대로 팩트만 이야기해주었고 남녀의 성에 대한 설명에 도움 될 그림책도 한 권 구비해 놓았다. 무심히 식탁에 올려놓고 아이가 수시로 그것에 관심을 가지길 바랐고, 이따금 장면에 대한 질문을 걸어올 때면 부산스럽지 않고 또 반갑다는 듯 그것에 대한 설명을 어렵지 않게 들려주었다.
올해, 그러니까 아이가 9살이 된 지금 아이는 이전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전 무수한 성교육서를 읽으면서 성을 가르치는 일에 대해 나 또한 자그마한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이번에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성이라는 개념은 보다 포괄적으로 인지해야 하고 44세의 내가 성을 말해준답시고 떠올린 건 성관계와 임신, 피임 같은 것들이었다는 데에 생각이 가닿았다. 따지고 보면 아이는 어릴 때부터 나의 몸을, 그러니까 가슴 부위나 일정 부위가 아닌 나의 몸 구석구석을 곧잘 만졌고, 이따금 "부드러워!", "엄마 여기 되게 말랑거려!", "엄마 배꼽 모양이랑 내 배꼽 모양이 달라!"라며 자신의 시선과 온도 안에서 충분히 성에 눈을 뜨고 있었던 거다.
그것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난 꽤 긴 시간을 쓸데없이 흘려보냈다. 사실 아이는 엄마인 나를 통해 여성의 신체, 그러니까 자신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도 시간이 지나면 엄마처럼 말랑한 살들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이따금 엄마의 얼굴이나 명치께에 돋는 크고 작은 여드름이 자신의 몸에도 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체모가 어느 부위에 나는지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 부위를 덮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는 아이였다. 그간 내가 생각했던 성교육이 여전히 후지고 구리다는 생각이 미친 사건이 있었다.
올해 초 제주에서 아이와 둘이서 한 달 살이를 했었다. 실제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줄 곳 붙어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제주에서 아이와의 시간은 정말이지 둘만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서, 비가 내리는 오후 작은 독립서점 둥근 테이블에 앉아서, 해변길이나 산책로를 손잡고 걸으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날도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가 대뜸 물었다.
"엄마, 여자들은 가슴에 왜 그걸 하고 다녀?"
"응? 뭐? 브래지어?"
"응."
"어... 뭐 이유야 다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덜렁거리는 게 불편해서겠지."
"엄마는 안 덜렁거리던데?"
"아, 엄마도 브래지어를 늘 하잖아. 집에서는 안 해도 밖에 나올 때 꼭 차고 나오지. 근데 밖에서도 안 하는 사람들도 있어."
"그 사람들은 그럼 안 덜렁거려?"
"각자 느끼는 게 다르겠지. 안 덜렁일 수도 있고, 그게 크게 불편하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 사람들은, 되게 예쁘겠다."
"응? 예쁘다고?"
"응! 예쁜데 그걸 왜 가리고 다니는 거야?"
그날 나는 하나의 세계로 들어섰다. 노브라의 자유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브라를 하면서도 왜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없던 나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건 단순하게만 브라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여성으로서 또, 인간으로서 내가 무의식중에 하던 것들이 왜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음을 상기해 보지 않은 무수한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그것은 아홉 살 아이가 내뱉은 "예쁘겠다"라는 단순함 속에서 진정 예쁜 것들은 본연의 것, 그러니까 석보상절에서 이야기 한 아름답다가 곧 나답다는 단순하고도 당연한 명제를 내 가슴에 던져 주었다.
성에 대한 관심을 관계와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난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또 그것에서 자기만의 사유를 생각해 보는 것. 그로 말미암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몸은 각기 다르지만 분명하게 아름답고 또 언제고 어른이 되었을 때 바뀌어 갈 자신의 몸을 엄마라는 대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어쩌면 마음먹고 말로써 그런 것들을 설명하려 했던 나의 어리숙함을 아이가 한 번 더 가르쳐 준 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