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하고 특'별'했던 손가락에 관하여
초등학교에 입학 후 아이의 생활에 꽤 많은 변화가 일었다. 단순히 거대한 산은 마주했다기 보다 ‘사회성’이라 일컫는 크고 작은 ‘관계’ 맺기에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 드러난 시기가 바로 초등학교 입학이었다.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친구 관계’였다. 유치원 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무리’로 인지되던 친구가 좀 더 촘촘히 쪼개진 느낌이랄까? 우리 반 친구, 같은 학원 다니는 친구에서 몇 반, 몇 번 누구 식으로 개별적 존재 하나하나씩 나눠졌다. 그런 개별적 존재는 전체를 상대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결의 만남이고 또 다른 관계였다.
개별적 아이들이 각각의 존재로 각자 영역을 아우르는 곳이 바로 학교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놀이 상대로서 서로를 인지하던 아이들이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는 놀이 이상의 것들도 공유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서로의 '다름'이었고 그 다름은 어울림과 배척, 선망과 혐오, 쾌와 불쾌 등 많은 양가적 상황과 감정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노출되었다. 다르다는 것은 특이하거나 특별한 것이 될 수 있었다. 특'이'한 것, 특'별'한 것. 그 한 단어의 차이에 가려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흔히 다지증이라 해서 아이는 태어났을 때 특이하게 손가락이 하나 더 있었다. 왼손 엄지에 나뭇가지처럼 하나의 손가락이, 손톱과 연골을 모두 갖춘 자그마한 손가락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요즘 사람들이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엄지와 검지를 브이 자로 만들어 작은 하트를 그려내듯 아이의 엄지 손가락은 그것 자체로 하트 모양이었다. 이제 와 그것이 마냥 예뻤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손가락이 하나 더 있다는 사실은 그 너머에서 불가피하게 들러붙은 ‘기형’이라는 단어에 쉽게 함몰되었고, 태아보험 가입 시 필수로 선택한 선천성 기형 진단금을 두둑이 받으면서도 결코 기쁘지 않았다.
그것은 결코 있으면 안 되는 것이었고, 특이하다는 것은 '보통의 것에서 두드러지게 다른' 것이었다. 다르다는 것에 참 의미를 마냥 좋은 쪽으로만 해석할 수 없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의 난 지금의 나와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었고, 다르다는 것은 좋은 것과 안 좋은 것에 대한 평가지에서 차선으로 선택할 수 있는 도리 없는 체념이자 변명이었다. 무지한 엄마, 이기적인 엄마 그리고 너무나도 약한 엄마였던 나에게 아이의 손가락은 덤이 아닌 짐이었고, 하루빨리 그것을 없애야만 온전한 무언가로 아이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몸무게가 10kg이 넘어야 수술이 가능하며, 다지 수술에 유능한 원장이 있는 병원은 대구에 위치해 있었다. 정확하게 출생 10개월, 몸무게 8kg이 되었을 때 수술했다. 7월 무덥기로 유명한 대구 W병원, 1인 병실이 없어 다인 실을 쓰면서 잠자리에 까다로운 아이를 남편과 번갈아 아기 띠에 뉘여 24시간 병원 복도를 돌고 돌고, 또 돌았던 그때의 기억은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비로소 아이가 '보통의 것에서 두드러지게 다르지 않는 상태'가 된 것 같아 안도했다. 이후에 그것들이 나의 삶에 어떤 의미로 남을지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특이한 아이가 특별한 아이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그때의 일들은 아름답지 않을 수는 있지만 필수불가결한 일이었음을 이제야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다. 아이의 손가락은 절단 수술 중 손톱의 일부를 잘라내야 했기에 봉합 자리가 두드러지게 어색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별스럽지 않지만 손가락 자체만 보았을 때는 보통의 손가락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학교 아이들이 귀신같이 알아본 것이다. "넌 손가락이 왜 그래? 모양이 이상해!"
처음 아이가 손가락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날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엄마, 나 여기 왜 이런 거야?"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의 질문은 느닷없이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당황스럽고 또 차가웠다. 어릴 때, 어렸을 때 다친 거야. 별거 아니야. 그런 나의 말에 아이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고, 별 수 없이 소나기도 그치고 젖은 옷을 말리듯 내 안에서도 그것을 바삭하게 말렸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아이는 재차 해소되지 않은 지점들을 끈질기게 물어왔고(언제 다친 건데? 어쩌다가 다친 건데? 어디 병원 갔는데?등등) 다소 충동적으로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 왜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엄마 마음대로 없앴어?”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흥분한 듯 소리를 질렀다. 세상 예뻤을 손가락을 엄마가 무슨 자격으로 자신의 의사도 확인하지 않고 잘라 냈냐는 아이의 말에 어안이 굳었다. 벌려진 입은 하릴없이 탄식만 뱉어냈고, 벙벙해진 눈과 얼굴에 힘을 줘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말이야. 너한테 물어볼 걸 그랬나 봐. 미안해."
특이한 손가락은 잘라내고 없애고 숨겨야 마땅했던 나와는 달리 어나더 핑거에 대한 아이의 환상, 그것의 특별함, 그 특별함으로 자신이 남들과 다른 것에 주눅 드는 것이 아닌 자랑으로 삼을 수 있는 아이의 발상이 특별하고도 감동스러웠다. 언제고 읽었던 육아서들에서 종종 읽어대던 문구들. 아이는 어른의 스승이라는 그 얼토당토 않았던 문구들이 머릿속을 그득 메웠다.
이후에도 아이는 자신의 특별했던 손가락에 대한 향수와 그것을 잃어버린 황망함을 수시로 표현했다. 자신이 그 손가락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허탈함과 그것을 엄마인 내가 마음대로 처리했다는 원망, 다르다는 것이 왜 불편한 것인지 해소되지 않는 궁금증까지.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이따금 그것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과 감정으로 토로하듯 꺼낸다.
안다. 이런 순수함 또한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걸. 하지만 동심과 순수함으로 포장된 작은 행동과 생각들은 언제고 그 삶에서 유의미한 과정으로 기억될 날이 올 것이다. 오래전 길가에 바싹 말라죽어있던 지렁이를 땅에 묻어주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동심이, 착한 일을 하면 정말로 산타에게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시키지 않아도 신발장을 정리하고 길가 널브러진 쓰레기를 주워 쓰레기통에 넣던 선함이 결국 환생이나 특별한 선물이 아닌, 나라는 사람이 재생되고 선물이 되는 과정이었음을 시나브로 느낄 것이다.
손가락에 대한 아이의 순수한 마음은 오래가지 않겠지만 이후 자신이 특별한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사실만은 아이의 삶에 어떻게로든 크고 작은 의미를 안겨줄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다름'이 아닌 특이하고 특별한 그래서 더더욱 아쉬운 '이별한 손가락'이었다는 것을 나는, 어리숙하고도 무지했던 엄마였던 나는 영원히 아이에게 미안해 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