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던 집_1
"이삿짐을 정리하고 나가려는데 구렁이 한 마리가 집 안에 있었어."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무섭기도 하고 이상해서 차마 쫓아내지도 어떻게 할 수도 없었어."
엄마는 약 28년간 살았던 시골집을 이사하고는 그 집과 뱀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시골집답게 온갖 벌레들이 나왔지만, 집안에서 뱀이 나왔다는 얘기는 난생처음이라 뭔가 나도 모르게 소름 돋았다. 농사를 짓기 위해 연으로 빌렸던 사글세의 시골 흙집. 처음엔 가족 누구도 2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살게 될 거라 생각도 못했었지만, 막상 쫓겨나려니 가슴 한 편의 슬픔과 함께 울분이 치솟았다. 사글세이긴 했지만 사는 동안은 우리 집이라 생각해 수세식 화장실도 뜯어고치고, 해마다 무너져가는 흙벽도 도배하고 했었는데..... 28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왜 이 무너져가는 흙집 하나 가지지 못했을까.
"너는 모르지? 사실 네가 같이 그 집에 살 때도 뱀이 나온 적이 있었어."
강가 근처 동네여서 그런지 몰라도 간혹 아니 때마다 시멘트 길 위에 구불구불 가는 뱀을 봤다. 뱀은 보통 나의 인기척을 느끼면 수풀로 도망쳤지만 그렇지 않은 녀석들도 있었다. 위풍당당 똬리를 틀고 길 한가운데에서 내가 도망치기를 기다렸다. 집으로 가는 유일한 길 가운데에서. 나는 뱀의 옆을 지나간다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런 노력이라도 보이면 그 녀석이 나를 덮칠 거 같은 불안에 시도조차 하지 못했었다.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누군가 와 주길 한없이 기다렸다. 그럴 때면 어떻게 알았는지 엄마는 나를 발견해 줬다. 그런 뱀이 집에 있었다고? 그땐 우리가 어려서 차마 말하지 못했었다고. 뱀은 아빠가 잡아서 강에 풀어주고 나오는 통로를 시멘트로 발랐다고만 했다. 그 이후 이십여 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집에서 뱀을 볼 일은 없었다. 엄마는 뱀이 더 이상 집 안에서 보이지 않았기에 사라졌구나 했는데, 쫓겨나는 그날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좋은 결말로 이 집을 떠나는 게 아니었기에 뭔가 그 뱀을 보는데 동생이 흘러가듯 했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셋다 태몽이 뱀이었데. 커다란 뱀이 엄마 품에 안기는. 엄마가 젤 싫어하는 게 뱀인데 왜 하필 셋다 뱀이었었까. 기분 좋은 태몽은 아니었네" 하고 웃으며 넘겼던 그 얘기가 왜 그 순간 기억났는지 모르겠다. 우리 형제는 그 집과 함께 자랐다. 그리고 그 집을 이사하는 그날을 기점으로 막내 동생이 마지막으로 엄마아빠에게서 독립을 했다. 우리를 키운 집. 우리가 자란 집. 모든 기쁨과 슬픔이 있는 집. 그래서일까. 그 집이 우리 집이 아님을 알았음에도 애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집을 쫓겨나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날 발견 된 뱀 한 마리. 엄마의 뱀얘기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살았었던 공간에 뱀이 있었다니 너무나도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는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겠지. 동시에 나는 그 집의 뱀이 우리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선을 본 지 채 한 달도 안 돼서 급하게 결혼식을 올렸다고 했다. 비혼이었던 엄마의 사업자금을 큰외삼촌이 들고 튀었는 데다,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외할머니의 불호령을 차마 어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결혼은 결코 행복할 수 없었다. 몇 번이고 도망치려 했지만 그때마다 엄마의 발목을 잡은 건 아이들이었다. 엄마 없이 자랄 아이들 때문에 엄마는 그 세월을 견뎠다고 했다. 우리는 그동안 어른이 되었고 그 집과 엄마에게서 독립을 했지만 엄마는 쫓겨나기 전까지 그곳에 묶여있었다. 이제는 편해져도 된다고 그렇게 엄마에게 말했지만, 그 세월이 아까워서일까 차마 벗어나지 못하는 엄마를 보며 우린 어느 순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엄마를 그 집에서 빼내는 것을. 우리가 없는 그 집에서 엄마를 지켜준 건 어쩌면 그 뱀이었을 수도.
엄마와 내가 그토록 싫어하는 뱀. 뱀이 나오는 집에서 우리는 살았다. 그 뱀은 우리를 지켜준 구원자였을까? 아님 우리를 노리는 파괴자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