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던 집_2
"너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뭐야?"
그 질문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입안 가득 피를 흘리고 있던 엄마의 모습과 그 사이에서 빛나고 있던 금니. 그것이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이었다. 그곳은 우리가 살았던 본채인 할머니집이 아니었고, 엄마와 사이가 좋았던 아주머니가 아랫채에 사글세로 살고 있던 단칸방이었다. 엄마의 울부짖고 있었다. 아줌마는 엄마의 피를 닦아주며 엄마를 말리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마당에서는 그 집 아저씨인지 동네 아저씨인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몇 명의 사람들이 인사불성인 아빠를 붙잡고 있었다. 아빠는 피범벅이 되어서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며, 엄마와 차마 내뱉을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있었고, 어린 나와 동생은 할머니 품에서 그 모습을 보며 울부짖고 있었다. 할머니는 우리가 버둥거리자 하얀 수건을 휘둘렀다.
왜 하필이면 난 그 잔인한 기억을 가장 오래된 기억으로 떠올린 것일까. 차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답할 수 없는 그 이야기를. 이후 나는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내가 지금 알고 인식하고 있는 기억과 그 기억이 너무나도 달라서. 자상하다고 생각했던 내 늙은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나는 그 질문도 답하지 못한 대답도 봉인하고자 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나쁜 기억은 최대한 빨리 잊자.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그러면 그 기억도 희미해지다 어느 순간 기억조차 하지 못할 거라고. 그렇게 믿어 왔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너무나도 강력했던 질문이었던 것일까. 아님 내 몸이 기억하고자 했던 것일까. 그날 이후 나는 매일 아침 새로운 "가장 오래된 나의 기억들"과 마주해야 했다.
그곳은 마당과 대문을 공유하는 자그마한 집이었다. 할머니집과 비슷하게 본채와 작은 단칸방들이 세네 개 있었고, 마당과 대문뿐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공유했다. 추후 엄마에게 내가 그 집을 기억한다고 하자, 할머니의 시집살이에 견디지 못해 달방을 얻어 나간 거라고 했다. 차라리 할머니집과 더 먼 곳이었으면 좋았을 걸. 겨우 얻은 셋방은 바로 옆마을이었다. 가난한 농촌에 가난한 농부에게는 도시로 나갈 엄두도, 그렇다고 홀어머니를 곁을 멀리 떠날 배포도 없었다. 그래도 난 그 집이 좋았다. 마당에 나가면 내 또래의 아이들이 늘 두세 명은 있었고, 우리는 그곳을 기지삼아 하루가 모자라게 놀았다. 소독차를 쫓아다니기도 하고, 땅따먹기도 하며. 술래잡기를 하는 날이며 우리가 살았던 단칸방 전체가 무대가 되어 술래를 피해 숨어 다녔다. 그곳에는 나와 놀아줄 친구들이 있었다. 그중 몇은 읍내의 유치원에 다녔고, 나와 몇은 그 친구들을 기다리며 하루종일 놀았다. 정말 낡은 한옥집 아랫채에 화장실이며 수돗가까지 공유해야 했던 집이었지만, 나는 마당 평상에 앉아 친구들을 기다리던 그때의 그 정서를 기억한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친구가 저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나와 놀아줄 것이고 잘하면 내가 먹기 싫어하는 한약도 몰래 먹어줄 것이다.
얼마가 지났을 때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친구는 낡은 우리 집 바로 옆에 새 양옥집으로 이사를 갔다. 처음부터 친구네 가족은 집이 완공될 때까지 잠시 그곳에 거처한 것이었다. 새집에는 화장실도 집 안에 있고, 부엌도 안에 있었다. 소파라는 것을 처음 봤고 하얀 레이스의 침대가 깔려 있는 친구방도 있었다. 빨래를 널 수 있는 마당 대신 햇빛이 잘 드는 넓은 옥상이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집을 침범하며 놀았고 나는 그 친구가 유치원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 관계가 깨어진 건 한 순간이었다. 그날도 다른 날과 같이 단칸방인 우리 집에서 슈퍼맨 놀이를 했다. 서로에 목에 금색과 빨간색 보자기를 매고, 같이 놀아달라는 동생의 성화도 무시한 채 갖가지 이불 위를 날았다. 엄마는 그 모습에 왜 넓고 좋은 새 집에서 놀지 좁아터진 데서 난리냐며 우리를 쫓아냈다. 우린 어쩔 수 없이 친구의 새집으로 갔다. 그때였던 거 같다. 그 양옥집이 다르게 보였던 건. 그날 이후 나는 친구 집 대문을 넘지 않았다.
얼마 후, 우린 농사를 짓기 위해 마을 안쪽의 농가주택으로 이사했다. 창고가 딸린 집이었다. 여전히 같은 마을에 살았지만 친구를 만날 일 더 줄어들었다. 친구가 도시의 초등학교를 가며 우리는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가 되었다. 간혹 마을 정류장에서 친구를 보았지만 우린 서로 의식만 할 뿐 인사도 나누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나는 집에 갈 때마다 마주칠 수밖에 없었던 그 친구의 집을 기억한다. 빨간 벽돌이 니스칠을 한 듯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밭과 논 사이에서 이질적으로 빛나던 그 새 집. 매일같이 그곳을 지날 때면 언제가 우리 가족도 자연스럽게 저런 집에 살 수 있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내 집"에 집착하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지지 못했음에. 가질 수 있는 희망이 없음에. 집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기에.
나는 "내 집"을 가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