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던 집_5
시골 동네에서 살았던 집 중에 가장 좋았던 집은 단연 강가의 양옥집이었다. 주인집 옆에 두 칸짜리 셋방. 우리가 살았던 집 중에 가장 새집이었고, 처음으로 집 안에 화장실이 있었다. 화장실이 집 안에 있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시절 마을에서 그런 집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린벨트로 묶여 있던 지역이라 새로 집을 짓거나 하는 것도 어려웠다. 버스가 잘 다니지 않는 정류장은 아득히 멀었고, 주변에는 바로 붙어있는 주인집 외에는 없었지만 오히려 좋았다. 대나무 숲이 있는 폐가를 돌아 약간의 오르막을 오르면 그 집이 보였다. 강가 근처의 양옥집 셋방. 그 집에서 오래 살진 않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좋은 추억을 가진 장소였다.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안쪽 주방이 바로 보였고 작은 거실을 기준으로 방 두 개가 양쪽으로 있었다. 오른쪽에 큰방은 엄마아빠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막냇동생이 썼고, 맞은편의 작은방은 나와 작은 동생이 썼다. 안쪽 주방 옆으로 샤워실 겸 화장실이 있었다. 12평 정도의 작은 집이었지만 흙벽이 아닌 시멘트 집이었다. 현관을 나서면 넓은 자갈마당이 있었고, 시골 어느 집에서든 볼 수 있는 장판을 깐 평상이 놓여 있었다. 햇볕이 잘 들었고, 동네에서 유일하게 있는 낮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어서 마당에 서면 강물 흘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집은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이 가장 많았던 집이었다. 처음으로 우리 방이 따로 생겼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 산타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고, 막냇동생이 생겼고, 첫 이를 뽑은 곳이었다. 소작농이었던 엄마아빠는 늘어난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농지를 더 빌렸고, 집을 비우는 일이 더 많아졌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동생들을 돌봤다. 그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그래서 배운 것이 자전거였다. 동네 점빵이라도 가려면 어린 내게는 너무나도 멀었다. 엄마는 곧 입학할 초등학교 통학수단으로 생각해서 가르쳐줬지만 다른 용도로 사용될 줄은 몰랐었다.
어린아이는 금방 몸으로 배운다. 나는 하루 만에 자전거를 마스터했다. 어린이용 자전거를 구비할 수 없었던 우리 집은 내게 철제 바구니가 달린 낡은 자전거를 줬다. 높은 자전거에 타려면 한쪽을 기울여 페달 위 한쪽 발을 올린 다음 바퀴를 굴리며 나머지 한쪽 발을 페달에 올리며 평행을 잡았어야 했다. 나는 누구보다 그 동작에 자신이 있었다. 큰 자전거를 탈 때면 마치 나도 어른이 된 거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금방 큰 자전거에 익숙해졌고 아직 걷지도 못하는 막내 동생을 자전거 바구니에 태우고 동네를 누볐다. 동네 사람들은 내게 동생 잘 돌보는 아이라며 칭찬을 했고, 엄마는 일하는 도중에 그렇게 짬짬이라도 우리를 볼 수 있어서 행복해했다. 엄마가 우리를 발견할 때마다 나는 뿌듯했다. 자신감이 생겼다. 동생을 태우고 절대 넘어지지 않을 자신감.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유치원에서 돌아온 둘째가 평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맡은 임무를 했다. 분유를 타서 동생에게 주고 기저귀를 갈고 숙제를 하고 그리고 엄마를 기다렸다.
평상에서 강가를 보면 반대편의 집과 밭이 보였다. 그렇게 넓지 않은 강이어서 육안으로 사람들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기 반대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저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 되면 우리 엄마아빠도 돌아오겠지. 가까우면서도 먼 그곳을 보며 막연히 그렇게 생각하면서 강물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금세 시간이 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