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던 집_16
후암동에 처음 온 날을 잊지 못한다. 신촌 고시텔에 살던 당시에도 서울에서 다시 집을 구한다는 아니, 서울에 다시 올라올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전에 살았던 신림동 고시촌에서의 생활도 그랬지만 그전까지의 서울에서의 삶은 나에게는 생각보다 혹독했었다. 삭막한 도시의 표정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도 같이 동화되어 가는 느낌. 그래서 일부러 방을 구하지 않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고시텔에 살았다. 서울에 대한 그런 나의 생각을 변화시켜 준 것이 후암동이었다.
서울역 앞 남산아랫자락의 동네. 처음 동네를 방문한 것은 같이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동료의 집들이였다. 처음 가는 동네라 낯설었지만 뭔가 모를 안락함과 그리움이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남산타워가 뭔가 신비로웠다. 한여름의 후암동에는 녹음이 푸르렀다. 남산 중턱에 위치한 동료의 작은 투룸에는 남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산바람이 불고 있었다. 한여름에 에어컨을 틀지 않았는데도 맞은편 창을 열자 한순간에 바람의 길이 생겼다. 당시 창문 없는 고시텔에 살던 내게 남산의 바람은 신선했다. 서울에도 이런 동네가 있구나. 뭔가 읍내 같으면서도 아티스트들이 모여 살아서 힙한 동네. 후암동에 살아보고 싶었다. 그 기회는 의도치 않게 생각보다 일찍 왔다. 후암동에 사는 동료가 출장차 집을 비우게 되었고, 흔쾌히 나와 당시 나와 비슷한 사정을 가진 다른 동료에게 보름간 집을 내주었다. 고시텔을 탈출한 후 다음 프로젝트까지 여유가 있던 나는 바로 그 집으로 들어갔다.
30년은 넘은 붉은 벽돌의 낡은 빌라. 1.5층이지만 남산중턱 경사면에 지어져 훨씬 높이 위치해 있었다. 침실의 창문을 열면 숙명여대까지 시원하게 보였다. 그 풍경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필지에 맞춰 지어졌는지 사다리꼴에 정사각형인 방은 없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그 집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미술을 전공한 동료는 자신의 작품뿐 아니라 다양한 소품들로 공간을 채워놓았다. 책이 인테리어가 될 수 있다는 걸 그 집에서 배웠다. 남산의 가파른 경사면을 올라 숨이 가빠질 때쯤 그 집은 나왔다. 반층을 올라가서 육중한 현관문을 열면 작은 현관이 있었고 그 앞으로 주방 겸 거실이 쭉 뻗어있었다. 현관 바로 앞에 작은 개수대와 냉장고, 식탁이 있었고, 오른편으로 침실로 쓰는 작은방과 조금 큰 안방이 있었다. 제일 안쪽에는 보일러실과 화장실 겸 욕실이 길게 뻗어있었다. 세탁기는 화장실에 들어가지 않아 식탁 뒤에 있었다(세탁기가 거실에 있어서 약간 일본집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각 방마다 큰 창이 있었고, 메인도로를 면한 주방과 화장실에는 바깥에서 보이지 않도록 앙증맞은 크기의 작은 창이 있었다.
동료는 침실, 나는 안방 이렇게 각자의 방을 나눠서 우리는 휴가 아닌 휴가를 보냈다. 같이 영화를 보고 요리를 하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늦은 저녁이 되면 소월길을 따라 남산을 산책했다. 그곳은 도시의 콘크리트향이 아닌 푸르른 냄새가 났다. 퇴근시간이 지난 소월길은 한산했고, 그 길에서 보는 서울의 밤은 빛났다. 남산을 둘레로 있는 동네들인데 동네마다 각각의 특색이 있는 것도 재미있었다. 잿빛으로 보이던 서울이 색색들이 크레파스로 물들여지는 듯했다. 어지럽고 복잡하다고만 생각했던 서울이 뭔가 톡톡 튀어 오른 팝시클 같았다. 서울에 이런 곳도 있구나. 나는 후암동에 매료되었다. 다시 서울에서 살 수 있게 된다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었다.
같은 해 11월, 나는 후암동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