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글거리는 베이컨을 보고 있던 상혁은 불판에서 뒤로 한발 물러났다. 평소보다 뜨거운 열기다. 어제 다녀왔던 시원한 바다 때문인 건가. 현혹되지 말라던 말이 현실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그곳을 떠올리는 자신에게 보내는 예언 같은 경고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음. 베이컨이 덜 바삭한데?”
“ 왠지 프라이팬이 뜨거워서요. 델 것 같았다고요”
상혁이 약간 볼멘 듯 대꾸했다.
“ 혹시 평소보다 더 뜨겁게 느껴진 거야?”
“ 뭐.. 그냥 조금 그랬어요”
“ 흐음.. 그렇다면 조금은 현혹되었다고 볼 수 있겠군.. 잠시만”
이유가 아침 먹던 걸 멈추고 피아노 벽 쪽 선반으로 가 무언가를 뒤적였다. 그리곤 하얀색의 작은 알갱이들이 들어 있는 작은 유리병을 들고 왔다.
“ 이걸 하나 먹어봐. 그리고 저녁에 자기 전에도 한 알. 그러면 괜찮아질 거야”
“ 이게 뭔데요?”
“ 사탕”
“ 이 사탕에 뭐가 들어있는데요?”
“ 음.. 네가 느꼈던 그 느낌은 말이야.. 갈등에 대해서 압도되는 어떤 거대한 느낌 같은 거야. 그거랑 비슷한 파동의 캔디라서 그걸 먹으면 현혹된 파동을 밖으로 내보낼 수 있게 해 줘.”
“ 파동 캔디라고요?”
“ 응. 처음 들어봐서 생소하겠지만 효과가 좋을 거야”
“ 음.. 이상한 건 아니죠?”
“ 내가 그런 걸 줄리가 있나? 소중한 조수에게.”
“ 이 복.덕.방도 이상하지만 더 특이한 건 사장님이라고요”
“ 훗.. 그래?”
…
“ 지금 저더러 애가 되라는 건가요?”
남자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한쪽 귀를 이유 쪽으로 돌리고는 미간을 조금 찌푸린 채 말했다. 자신이 분명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유는 예상한 반응이라는 듯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 네. 이제부터 눈을 감고 아기가 되어 보는 겁니다. 상상하는 거예요. 말을 아직 배우지도 않았고 세상 모든 것을 다 알지도 못하는 상태죠. 다만 지금 이 아기는 충격 속에 있습니다. 세상의 전부인 엄마, 아빠가 엄청난 충돌을 일으키며 싸우고 있기 때문이죠. 아기인 손님이 그들을 애타게 바라보고 있어요. 하지만 부모는 서로 너무 화가 나서 아기가 혼란 걱정, 평화롭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어요.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그저 짐작해 보는 것만으로도 그러니까 그 아기를 이해해 보는 것만으로도 매우 달라집니다. 어때요. 시도해 보시겠어요?”
남자는 미심쩍은 건지 난처해하는 건지 손으로 눈썹 위 이마를 만지더니 무언가를 내려놓듯 크게 숨을 한번 내쉬더니 슬며시 눈을 감았다.
“ 뭐.. 그런 상황이라면 좀 답답하겠네요.”
“ 여기서 중요한 건 직접 작은 아기의 관점이 되어 바라보는 겁니다. 아기가 예전에 겪었던 그 경험을 다시 느껴보는 거예요. 현재의 자신은 잠시 물러납니다. 시작할께요.
아이는 놀란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엄청난 갈등과 분쟁의 세계에서 아기는 온몸으로 외쳐요. 싸움을 그만두라고요. 단지 말을 모르기 때문에 몸으로 멈추라는 느낌을 싸우고 있는 부모에게 전달해야 해요. 그렇게 해보세요”
약간 찌푸렸던 남자의 미간이 조금 더 찌푸려지며 시간이 조금 지나자 한숨 비슷한 것이 터져 나왔다.
“ 허.. 어렵네요. 몸집이 커다란 부모님 둘이 저렇게 다투고 있으니 거대한 무언가가 부딪히는 느낌입니다. 아무리 몸으로 외쳐도 부모님이 싸움에만 빠져 전혀 반응이 없어요. 기진맥진입니다. 아기로서는”
“ 지금 아기의 느낌이나 생각을 말로 표현한다면 어떨까요?”
“ 음.. 나는 작은 존재군,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아, 나는 중요하지 않구나 혹은 내가 의견을 외치는 건 옳지 않구나 하는 무력해진 느낌이 드는군요.”
몸에서도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라며 이제 남자는 다시 한번 숨을 깊이 내 쉬었다.
" 혹시 지금 느껴지는 아기의 느낌이 다 성장한 이후에나 최근까지 느꼈던 느낌들과 비슷한 부분이 있나요?"
".. 글쎄요.."
" 몸의 느낌이라고 하는데.. 이 아기가 느끼는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는다거나 나는 중요하지 않구나 하고 느끼는 감각과 현재까지 혹은 최근 손님이 비슷하게 느꼈던 느낌을 만들어낸 사건들이 있나요?"
이유는 무언가를 끄집어내기 위해 애쓰는 듯 미간을 찌푸린 채 집중하며 질문하고 있었다.
".. 질문이 잘 이해가 안 되는군요. 그러니까 아기가 그때 느낀 느낌과 비슷한 감각을 최근에 경험해 본 적이 있냐는 건가요?"
" 네! 맞습니다. 최근 어떤 사건에서 이와 비슷한 느낌을 경험하셨나요?"
"흠.. 이런 아기의 느낌과 비슷한 거라면 제가.. 누군가에게 말을 걸 때마다 느꼈던 것과 비슷한 게 있습니다. 최근만이 아니라 제 인생 내내 그랬는걸요. 예를 들면 남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기 힘들었어요. 어차피 이 사람은 내 말을 듣지 않을 거라고 왠지 그렇게 느껴서요. 늘 그랬어요. 그런데 지금 보니 그런 생각이 그런 마음이.. 이 아기가 느끼는 어차피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을 거야라는 감각과 비슷하군요..."
"아.. 맞습니다.. 그거예요. 생각의 원류. 성격의 원류를 지금 찾으신 거예요"
" 다만 가족들에게만은 신기하도록 제가 강압적이에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조언조차 꺼렸습니다."
" 아마 그랬을 겁니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상대방, 즉 조언을 해도 된다고 안심을 주는 상대방에게만은 자신의 의지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보통 때에 관철시키지 못했던, 주장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배가되어서 가족에게는 더욱더 강한 의지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하죠. 그러나 그렇지 않은 타인에게는 모든 것을 떠도는 유령처럼 행동하거나 개입하는 것을 망설이게 되죠. 신기하게 그렇게 타인과 만나지 않음으로 더 멀어지게 됩니다."
" 신기하도록 무기력했습니다. 사실 조언을 했다고 해서 가족들이 듣는 것도 아니었지만요. 저를 독재자라고 불러요. 가족들은. 회사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하죠. 저처럼 우유부단해 보이는 사람이 가족 내에서 그런 별명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합니다."
" 그럴 겁니다. 지금 그 원류가 되는 느낌이 어디서 왔는지를 찾았다는 게 매우 중요해요. 이제 더 진행시켜 보겠습니다. 이제 부모님 싸움에 지칠 대로 지친 무기력한 아기는 옆에 있던 정원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기는 그곳을 어떻게 느끼나요?.”
찌푸려졌던 미간이 슬쩍 펴지며 남자는 이제 약간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 그러네요. 정원이 있네요. 정말 아름다워요. 조용하고 신기한 것이 많아서 이곳에 계속 있고 싶은 느낌입니다”
“ 그곳에서 부모님들의 갈등이 보이나요?”
“ 아뇨. 그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다채로운 초록의 생명들이 주는 생명력이 느껴져요. 머리 위의 따뜻한 햇볕도 시원한 그늘도 느껴집니다. 이곳은 매우 평화로운 곳이군요. 마치 제가 꿈꿔왔던 세상 같습니다.”
“ 그렇군요. 아기는 그곳을 무척 좋아하는군요. 그런데 어쩌죠? 사실 부모님의 싸움은 이제 끝났습니다. 아기를 찾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 싸움을 멈추고 제정신이 돌아온 거죠. 아기는 무어라고 하나요?”
“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사실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미 부모님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한 것 같아요. 이 정원이 꽤나 마음에 들어요. 시끄러운 소음도 갈등도 없어서 그저 평화만 있다는 포근한 느낌입니다.”
“ 그렇군요. 아이가 그곳에 머물기를 선택하는군요.."
" 네.."
"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가끔 싸우긴 하지만 진짜의 부모와 나의 삶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이번 삶은 그냥 흘러갑니다. 제대로 인지되지 못하지요. 마치 타인의 삶처럼 살아도 진짜로 사는 느낌이 들지 않죠. 마치 떠도는 유령이 된 것처럼 혹은 그런 투명인간이 되고 싶을 만큼 현실과 괴리가 발생시킵니다. 아기가 정원에만 머물게 된다면 말이죠. 이제 눈을 뜨셔도 됩니다.”
남자는 잠시 무언가를 읊조리는 듯 중얼거리더니 서서히 눈을 떴다.
“ 혼자서도 가끔 이렇게 해보라는 건가요?”
“ 네. 생각날 때마다 그 아기가 느낀 그 몸의 느낌과 긴장을 이해해 주러 가는 겁니다. 이 아기의 분노나 느낌을 잠재우겠다는 의도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마세요. 자기 자신의 아기일 때 감정들을 관점들을 인정해 주시면 됩니다”
“. 그렇군요. 제가 저를 이해해 주는 거군요”
그는 무릎에 올려두었던 손으로 바지를 꼭 움켜잡았다.
“ 그러다가 아기가 원래 세상에 대해 다시 궁금해하는 날이 올 거예요. 아이가 가진 누적된 감정이 밖으로 나오고 세상을 보는 무의식적 기본 관점이 달라질겁니다. 제 경험상 손님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아기는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기 시작했거든요. 만나러 가셔서 오랜 기간 가지고 있던 감정이 밖으로 다 나 온 후 아기에게 이야기해 주세요. 아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현실에서 재미있는 게 많다고요. 부모님들도 그저 미숙한 사람들이라 부족했던 거라고, 시끄럽고 갈등만 가득한 세상으로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별것 아니라고요.”
…
“ 사장님 그럼 다시 들어갈 필요는 없잖아요”
“ 물론 그렇지.. 그렇긴 한데 약속을 했으니까..”
“ 그거야 … 그렇지만.”
네 번째 손님이 맡기고 간 작은 공장 건물과 부지가 매매로 이어지고 그가 다녀간 날이었다. 꼬마와 약속을 할 때 옆에서 직접 들었던 상혁이지만 이미 꽤 밝아진 남자의 모습을 보곤 또 서재방을 갈 필요가 있을지 묻고 있었다.
“ 나만 다녀와도 되지만 분명 이번엔 더 정확히 알게 될 텐데 말이야”
“ 흠.. 저도 가요. 그 이후가 궁금하긴 하니까요”
…
5층으로 내려왔을 때 상혁은 잠시 멍하니 하늘을 쳐다봤다. 지난번 왔을 때와 확연히 다른 하늘색 때문이었다. 노을에 가까운 붉은 하늘. 그때의 시린 겨울이 아닌 여름날의 저녁 하늘 같았다.
무언가를 삼켜버릴 듯 살아 움직이던 파도는 훨씬 잦아들어 난폭함이 수그러든 느낌으로 바뀌어 있었다. 늦여름의 파도가 넘실대는 시원한 바다였다. 잠시 바라보던 상혁은 그때의 바다도 아름다웠지만 지금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바다로 한 발짝 들어가고 싶을 때 즈음 멀리 소년을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놀랍도록 달라진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모래로 모양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모든 형태가 완성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손으로 모래를 흘려보내던 무기력한 모습이 아니라 눈을 반짝이며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 이제 약속을 지키러 가볼까?”
이유가 상큼하게 웃으며 말했다.
5층에 도착했을 때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정원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모두 암흑뿐이었던 곳에 듬성듬성 나무와 풀이 자라 있다는 것이었다. 새롭게 자라나 있는 건지 암흑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나무가 보이기 시작한 건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 어.. 이 나무 좀 신기해요”
그중에 있던 한 거대한 나무는 놀랍게도 뿌리가 있는 밑동과 중간 몸통 부분이 분리되어 있었다. 마치 밑동 위로 몸체가 둥둥 떠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상태였다. 걱정이 된 상혁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을 살며시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얇은 황금색 실들이 촘촘히 반짝이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 신기한 나무네요. 황금색 실들이 다시 모양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 그러네. 아직 시작인데 이 정도면.. 좋은 징조야 ”
나무 문이 열리자 그때의 정원이 나타났다. 여전히 진귀한 꽃과 나무가 있었지만 곳곳에 작은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오늘 만나러 온 주인공인 꼬마를 찾아 이유와 꽤 돌아다녔을 즈음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꼬마였다. 지난번보다 약간 홍조 띤 모습으로 말을 건다.
“ 너희들도 왔구나”
“ 그때 약속했으니까. 그런데 어딜 다녀오는 중이야? ”
“ 응! 밖에 ”
이유가 묻자 꼬마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또렷하고 밝은 표정이었다.
“ 여기 온 이후로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었잖아. 그런데 이제 나가기도 하는 거야?”
“ 응. 너희가 다녀간 이후로 다른 친구도 왔어. 그 사람은 나랑 아주 친해”
“ 아.. 그렇구나. 그 사람이 너에 대해서 잘 알아?”
“ 응. 꽃도 나비도 벌들도 잘 알아. 그래서 이야기를 많이 했어. 그러다가 언젠가부턴 밖에도 그것만큼 재미있는 게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 줘서. 그리고 부모님들에 대해서도.. 그래도 처음엔 밖이 무서웠어. 싸우기만 하는 곳이면 어쩌나 하고 말이야.”
“ 그런데 이젠 나가도 괜찮아?”
“ 조금씩. 하나하나 해보기도 하고 잠깐 지치면 여기로 다시 와. 그래도 계속 이곳에만 있지 않아도 돼. 그곳도 나름 재미있어.”
바닥에 난 잡초가 신경 쓰였는지 몇 개를 뽑던 아이는 질문을 듣자 씩 하고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웃었다.
“ 그때 말이야. 우리를 너에게 보냈던 사람이 누군지 알려주기로 했잖아. 그래서 다시 왔어. 혹시 알고 있어?”
“ 응. 언젠가부터! ”
...
" 사장님, 어릴 적 나를 만난다는 게 정말 말이 되는 이야기예요?"
" 음.. 우리 조수가 갑자기 뭐가 궁금한 건가?"
서류를 손에 든 채 이유는 상혁을 쳐다보았다.
" 그렇잖아요. 한 순간에 아기가 된다는 게 말이죠. 아니.. 솔직히 기억도 안 나는데 어떻게 그때로 돌아가봐요? 복.덕.방 서재로 들어가야 뭐가 좀 보이죠. 그냥 뭐 심리 치유 방법 들 중에 하나인 거죠?"
" 흠... 글쎄. 뭐라고 해야 하나. 많은 현대의 심리치유나 약물치료가 힘든 사람들을 돕고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 그렇죠. 요즘 사람들 좀 힘든 게 아니라고요."
" 맞아. 하지만 아주 근본적인 치유까지 가능하게 해 주느냐는 질문에는 사실 물음표가 뜨곤 하거든."
".. 어떤 분야든 그렇죠.. 완벽한 게 어디 있겠어요."
상혁은 혼잣말 하듯 중얼거리며 말했다.
" 그래서.. 하는 이야기야. 자기 자신을 스스로 이해하는 것. 그리고 무의식 속 타임라인에서 자신이 가진 설정들의 원류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지. 그러기 위해선 내면의 아이가 돼 보는 게 가장 효과적이고 좋은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거고.
문장이나 언어로 치료를 하려고 들면 의도하지 않는 언어적 왜곡이나 연상 때문에 오류나 잡음이 생길 수밖에 없어. 그리고 내면에서 예전의 에너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자신이 엄연히 있는데 현재에서만 좋은 걸 외친다고 정말 작동할까?
그래서 더욱더 나를 감각으로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는 거지. 즉, 몸에 기억된 느낌을 통해 최초로 내가 세상을 인식했던 방법, 이해했던 방법, 씨앗설정을 뿌리를 알게 되면 내가 세상을 경험하며 만들어낸 생각이나 가정들이 이해되거든. 마치 나무의 몸통이나 가지들처럼. 언어 이전의 느낌으로 말이야. 성격도 형성되고 자라는 거니까"
" 또또 어려운 소리 하시네요. 기억도 안 나는데 그게 어렵다는 거죠."
"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해보라고. 처음엔 최근 것부터 생각나거나 하는데 점점 이런 훈련을 하다 보면 더 과거의 내가 가진 씨앗 설정이 느껴져. 이번 생, 처음 시기의 내가 여전히 거기 있으니까."
" 그.. 그렇게 자기를 알면 게임이 끝나나요?"
" 게임? 음.. 게임이 끝난다는 게 원하지 않는 행동이나 습관을 자신도 모르게 반복하고 마는 관성의 힘이 약해지게 된다는 걸 말하는 거라면.. 매우 근접하지. 하지만 무언가를 멈추려고 애쓰기 전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스스로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말이야. 근원을 이해하면 신기하게도 자연스럽게 풀리니까..
어린 자신이 생존을 위해서 바라봤던 관점이었고 그걸 바탕으로 했던 선택과 설정들이니까. 그때서야 비로소 어린 날들 자신도 모르게 몸에 새겨둔 그 세팅들을 짊어지고 갈지 아니면 이제 내려놓을지 결정할 수 있거든. 그제야.. 비로소 말이야.."
이유는 손으로 턱을 괴더니 무언가 떠도는 듯한 눈빛으로 멍하니 생각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