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가방끈이 길거나 책 쓴 사람, 타 기관의 연구원으로 발탁된 사람이 강의를 하기는 한다)
만약 나에게 부업이 허락되었다면 내가 쓰고 있는 글은 '1억 모아 봤니?'가 아니라 10억 모아봤니 또는 5년 만에 10억 모으기가 되었을 것이다.
주말에 약속 없이 쉬는 날이면 서빙을 해볼까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많았다. 그저 월급만바라보기에는 아무것도 벌 수 없는 내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손쉬운 부업을 하거나 직장 내 메신저로 주말에 '사람 하나보내주세요~.'하는 메시지가 오면 '저요~.'하고 냉큼 신청했다.
한창 종자돈을 모을 무렵 매일 했던 합법적 부업을 소개한다. 내가 어떤 일로 돈을 추가로 모았는지 그것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정리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변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1. 출석체크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지금 이걸 하고 있을 것 같다.처음부터 너무 당연한 것일 것 같지만
매일 출석체크 하는 일은 엄청난 끈기와 집중력이 필요하다. 누구나 할 수 있으나, 포인트가 목돈이 되려면 개근을 해야 하기에 정말 어렵다(요즘은 포인트도 랜덤이다. 간헐적 강화로 그만두지 못하게 한다). 나는 몇몇 사이트에 매일 출석체크 했다.
혹시 일이 바빠 출석체크를 못하는 날이 있으면 한 달을 날렸다고 '뭐가 그렇게 바쁘길래 매일 하는 것도 기억 못 하냐.'라고 스스로 매우 자책하기도 했다. 시장 갈 때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고, 대형마트의 비닐봉지를 모아 장당 50원으로 바꾸던 사람으로 출석체크하며 매일 받는 20~30원은 상당히 의미있는 돈이었다. 그렇게 몇백 원을 모으고 매일 몇십 원을 아꼈다.
2. 설문조사
인터넷 설문조사가 유행이었을 때부터 거의 매일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만족스러웠던 점은 조사 대상이 아니라도 '아쉽지만 설문조사 대상이 아닙니다.'라고 정중히 거절하며 50원의 포인트도 챙겨주었다. 게다가 3000원이 넘으면 통장으로 이체가 가능했다. 몇몇 사이트에(지금은 상장된 설문조사 사이트 포함) 로그인하며 퇴근 후 열심히 조사에 임했다. 간혹 30~40분짜리 설문조사를 마치고 1200원이 적립되면 그날은 정말 횡재한 날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50원에 만족할 수는 없었다. 포인트를 더 받고자 나를 속이는 일이 종종 생겼고 이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양심을 속이며 모은 포인트는 정기적으로 몇천 원씩 계좌로 꼬박꼬박 이체했다.
3. 패널 참여 설문 조사
설문조사 사이트에서 참여 포인트는 적지만 패널 선정을 위한 조사에 응모한 후에 몇 가지 쏠쏠한 대면 설문조사를 한 적이 몇 번 있다. 그때 서울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당시 수원에 살았고 패널조사를 하려면 서울로 가야 했다. 퇴근 후 시간이 빠듯하여 못 가는 날이 더러 있었고, 주말이 아니면 정말 좋은 설문조사도 눈앞에서 놓치기 일쑤였다. 3만 원 이상 주는 대면 설문조사는 정말 꿀이었다.(이때 서울로 갈걸... 아쉽다)
4. OK캐시백 포인트 모으기
진짜가 나타났다. 바로 OK 캐시백 포인트를 모으는 것이다. 정말 열심히 모았다. 이렇게 빨간 쿠폰을 모아달라고 멀리 사는 부모님께도가르쳐드렸다. 같은 층 직장 동료에게 캐시백을 모으니 커피믹스 박스는 버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마트에 갈 때는 캐시백 모음판을 30~40장씩 가지고 왔다. 그리고 나는 캐시백 쿠폰이 박힌 물건만 샀다. 인터넷 쇼핑을 할 때도 캐쉬백몰을 경유했었다. 그러면 총액의 1~2%를 다시 포인트로 넣어주었다. 내가 이렇게 캐시백 쿠폰을 모은다는 것이 직장에 소문이 났다. 그래서 몆몇사람은 캐시백포인트를 모아서 전해주었다. 내가 다른 층에 가서 커피 박스에 붙은 포인트를 뜯어도 다들 '쟤가 걔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캐시백 포인트는 적립될 때마다 10%의 세금을 뗐다. 포인트를 모으는 을의 입장에서 10% 차감은 엄청난 갑질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그래도 모아야지. OK캐시백은 5만 원이 넘으면 통장에 현금으로 입금이 가능했다. 어느 해는 캐시백으로만 15만 원을 모았다. 최고였다.
5. 선거 요원, 시험 감독
선거가 있는 해에는 선거 운영 요원을 뽑는다는 메시지가 온다. 그러면 나는 자신 있게 '저요~'라고 신청을 한다. 너무 좋았다. 하루 일하면 6~7만 원이 들어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었지만 출석체크로 하루에 몇십원버는 나로서는 그 돈을 당일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꿀알바였다. 직장동료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기에 내가 지원했고, 나는 선거 전날 진행요원 사전연습으로 조퇴를 하고 다음날 새벽부터 저녁까지 선거업무를 지원하거나 시험감독 알바를 뛰었다.
이렇게 열심히 돈을 모았다. 부업으로 모은 돈은 바로 은행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리고 꼭 필요한 생필품을 살 때 외에는 사용하지 않았다. 변동지출이 생길 때 포인트로 모은 푼돈은 월급을 건드리지 않아 고정금액을 저축하는데 매우 유용했다.
이런 방법으로 돈을 벌 수밖에 없었다. 종잣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밑천이 없는 사람은 시간을 팔아서 돈을 사야 한다.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것은 종잣돈을 모으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돈을 모으는 나를 매우 한심하게 생각하는 동료나 선배들이 많았다.
몇몇 선배들은 " 사람이 돈을 좇으면 돈이 달아난다."라는 말을 했다. 동료들은 가끔 나에게 그동안 모은 돈에 대해 물어봤다. 그때마다 나는 돈을 모으고 굴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모은 돈 외에 다른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느 날, 직장 후배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지나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왜 쓰레기장에서 캐시백 쿠폰을 뒤져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 당시 나는 캐시백 쿠폰에 미쳐서 아파트에서 분리수거하는 날이 되면 종이류 분리수거장을 기웃거렸다. 캐시백으로 100만 원 모은 여자가 한번 티브이에 나왔는데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라고 했지만 나도 어느새 그러고 있었다. 그날은 직장에서 분리수거를 하다가 커피 믹스 박스를 곁눈질로 쳐다봤을 뿐이다(이미 내가 다 뗐으니까...). 그 모습을 후배가 봤는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나에게 농담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말로 이야기했다. 주변 사람들은 " 야, 너 진짜 너무한다."라며 웃었고, 나는 진지하게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사과는 들었지만 속이 상했다. 갑자기 이런 내 모습이 참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