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가족들과 에버랜드를 갔다. 오랫동안 줄을 서야 했을 때 스마트폰으로 스크롤을 내리며 읽을 거리를 찾다가 눈에 띄는 글이 발견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 새로운 제도가 시행된다. 도움은 되겠지만 인센티브가 없는 공무원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을까? 게다가 게다가 철밥통 덕분에 타성에 젖은 그들이 돈에 대해 무엇을 알까? '
돈에 대한 나름의 일가견을 가진 그 사람은 새로 시행되는 제도의 방향성에 대해 논하면서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을비판하는 글이었다. 내용에 동조하는 댓글도 보였다.
그 글을 읽으며 가슴이 저릿했다. 그리고 궁금했다.이 사람은 왜 이런글을 썼을까? 나는 한참 생각했다. 무슨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를 쓸까? 아니면 제대로 된 답변을 쓸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왜 이런 식으로 글을 쓰냐고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화가 나는가?
그리고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말하는가?
십분 넘게 길게 적은 답글을 모두 지우고, 그 사람의 글에 대해 질문 하나만 남겼다. 몇 분 지나서 댓글이 달렸다. 댓글을 보고 엉켰던 마음이 혼자 스르르 풀렸다.
'아... 이 사람은 잘 모르는구나...'
한 달 전 최태성 님의 '역사의 쓸모'를 읽고,
멋져 보이는 비판 대신유치해 보이는 희망을 더 많이 마음에 새기기로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비판적인 생각에 대해 내 나름 이렇게 이해하기로 했다.
나는 교대를 다녔기 때문에나의 미래와 직업은 대학 때부터 99% 정해져 있었다.(몇몇 동기는 의대로 빠졌다)
그래서나는 발령받기 전 서울에서 자취하는 동생에게 얹혀살며 아르바이트를 했다.경력에 포함이 되는'기간제'는 하지 않았다.평생 교사로 살 것이라 생각했기에,앞으로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새벽에 영어 학원을 다니고,아침 9시 마트/백화점에 출근하거나인사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꼬박 몇 개월을 그렇게 살았다.돈도 안되고 경력도 안 되는 일을 하는 동안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첫 번째, 어떤 일이든 직접 해보지 않고서는알 수 없다.
성수동 대형마트에서 5월 대목을 노린선물세트를 팔았었다. 우리 매대에는 우리 회사제품과 다른 회사의 제품도 있었다.다른 회사 제품은 판매원이 없었지만,마트는 다른 브랜드 매대를 우리 브랜드에붙였고, 나에게 다른 회사 제품의 판매까지 맡겼다.
나는 회사에 이를 알렸고, 상황이 개선되지 않자회사가 마트 담당자에게 항의를 했다. 그 결과 옆 매대를 빼면서나의 자리도 없어져 버렸다.내가 맡은 물건만 팔면 되는 줄 알았는데,그게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그때 처음 알았다.
다시 재교육을 받고 압구정 백화점 지하 1층에서영양제를 팔았다. 가운을 입고 있으니 사람들은 나에게 와서 건강 문제를 상의했다.고작 이틀 제품 교육만 받은 나는 어쩌다사람들의 건강까지 상담하게 되었다. 같이 일하는 직원도 피부미용, 식품 영양을 전공했지만 가운을 입었다는 사실 하나로 고객들은 자연스럽게 건강 문제를 상의해 왔다. 이 역시 해보지 않았으면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보기에 백화점 일은 마트보다 쉽고 편해보였지만(휴게실은 훨씬 편했음),고객 응대는 더 엄격했고, 백화점 정직원의 무시와 갑질은 힘들었다. 게다가 나는 가운 안에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하루 종일 한 곳에 서있어야 했다.두 달간 5kg이 자동으로 빠졌다.
세 번째, 같은 일을 16년간 하며 알게 된 것이있다.한 가지 일을 끝까지 해보지 않고서는일의 전부를 안다고 할 수 없고, 대부분은 끝까지 해도 모르는 일이 많다.
회사에서 사람을 뽑을 때 한 직장에 2년 미만일한 사람은 경력자(직)로 인식하지 않는다. 만약당신이 3년간 일을 했다면당신은 3년짜리가 할 수 있는일을 아는/해본 것이다.10년, 20년의 시간을 들인 사람이 할 수 있는 또는 알 수 있는 일은 다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어떤 일을 보지 않아도, 경험하지 않아도 다 안다고 생각한다면 이것만은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사람에게또는 무조건 해내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비난보다는 격려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야 억지로 해야 하는 사람도 힘이 난다. 당신은 비난만 하면 되지만,누군가는욕까지 먹으면서 결국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안티프래질에서
그러니,우리 힘내자.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우리가 하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우리가 있는 것이다.
오늘 눈이 많이 왔다.평범한 날보다 더 힘들고 바빴을 당신에게 멀리서 작지만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