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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중간 지대'

카페 아르바이트 현장에서 본 노사 갈등의 단면

by 전지훈 Mar 26. 2025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던 찰리 채플린의 명언은 한 세기가 지난 카페에서도 여전했다. 집 근처에 있었던 교외 저수지 둔치에는 노출 콘크리트 외벽이 돋보이는 멋진 브루탈리스트 양식 카페가 있었다. 수년 전, 나는 6개월 동안 해가 질 무렵마다 건물을 감싸는 백열등 조명이 자연과 어우러지던 멋진 카페에서 커피를 만들었다. 카페에서 일하던 바리스타들은 언제나 손님의 눈에는 단정한 복장으로, 맛과 향이 뛰어난 커피를 뽑아내는 전문가들이었지만, 동시에 카운터 뒤에 있던 직원 휴게실의 쪽문 안에선 틈날 때마다 ‘주휴수당’과 ‘최저시급’을 계산하는 노동자들이기도 했다.


11월 때 이른 폭설이 쏟아지던 날, 저녁 무렵에 점장과 매니저는 가장 오래 일했던 부매니저에게 가게를 맡기고 잠시 생크림을 사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한 시간쯤 카운터를 지키고 있던 내게 부매니저의 호출이 떨어졌다. 깐깐한 성격이었던 이모에게 평소 자주 혼나곤 했던 나는 오늘은 또 어떤 이유로 혼이 날까 두려운 마음으로 휴게실에 들어섰다. 그러나 나를 기다리던 것은 예상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휴게실 한가운데 있던 책상 위에는 개인 업무 시간을 빽빽하게 기록한 수첩과 계산기, 그리고 숫자를 휘갈겨 쓴 종이가 가득했다. “내가 근무한 것보다 월급이 적게 들어왔어. 너는 젊으니까, 이런 거 잘 알지?”


이모가 설명하는 상황은 이랬다. 스케줄 대로라면 모든 직원은 8시간씩 근무를 했다. 문제는 지난달부터 연말을 맞아 새로 디저트를 팔면서부터 시작됐다. ‘인스타그래머블한 카페’에서 ‘가성비 좋은 디저트’를 판다는 소문이 돌자, 가게를 찾는 손님은 한 달 만에 두 배로 늘었다. 덩달아 100만 원 선이었던 주말 매출도 300만 원으로 뛰었다. 그러나 늘어난 일을 하는 직원의 숫자는 그대로였다. 지난달에만 주당 평균 16시간을 더 일했던 부매니저 이모는 생각하던 액수보다 한참 적은 액수의 월급을 받았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계산기를 두드리며 계산해봤지만, 결과는 그대로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 남모르게 속을 끓였던 이모는 그날 저녁,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내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었다.


전문가가 아니었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급한 대로 자리에 앉아 시급을 계산했지만, 계산을 반복할수록 이모의 결론이 정확했다는 사실을 재확인할 뿐이었다.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 채로 집에 돌아왔을 땐, 억울하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데서 패배감을 느꼈던 탓은 아니었다. 그저 설명할 수 없는 문제의 원인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만이 답답했다. 노동정책을 설명하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소득 주도 성장’이나, ‘자본주의’, ‘불평등’ 같은 낯선 주제를 다룬 책들을 한참 읽고 난 뒤에야 ‘포괄임금제’라는 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때문에, 노동자들은 한 달 동안 근로 계약서에 적힌 근로 시간보다 얼마나 더 일하든, 업주가 정한 액수보다 많은 임금을 받지 못했다. 이모가 월급 정산표를 받아들고 나서 일주일 넘게 혼자 골을 썩였던 이유는 순전히 포괄임금제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마냥 업주만을 탓하기도 어려웠다. 당시 카페는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신생 기업’이었다. 점장님은 연말 회식 자리에서 생맥주를 홀짝이며 카페를 여는 데만 5억 원이라는 거금을 들였다고 했다. 모두 땅을 사고, 건물을 올리고, 내부 공사를 진행하는 데 들어간 돈이었다. 대출 비용을 안정적으로 갚고 카페를 운영하려면 일 평균 매출이 300만 원 수준을 유지해야 했지만, 그동안 매출은 개업 특수를 입었음에도 필요한 액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틈날 때마다 직원과 면담을 하면서 고충을 듣고, 필요한 도움을 아끼지 않으려던 점장님은 업장에서 노동 착취를 일삼는 소위 ‘악덕 사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직원 복지와 사업을 병행하는 과정에서 포괄임금제는 업주가 고육지책으로 선택해야만 했던 ‘필요악’ 이었다.


카페 바리스타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간은 노동 현장과 제도권의 경제 정책이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몸소 체험했던 시간이었다. 이상적인 경제 정책은 허울이 좋았지만,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노동자에게 가닿지 못했다. 업주와 직원이 사업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보다 심각한 진짜 문제는, 노동 현장에 사업가와 노동자가 공유하는 중간 지대가 없다는 점이다. 한때, 지하철 출입문에는 코레일 노동자가 서울교통공사에 ‘포괄임금제를 철회하라’라고 요구하는 문구가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그 스티커를 보면서 카페 이모가 떠올랐다.


만약, 노동자들이 기업이 왜 포괄임금 제도를 활용하는지를 알았더라면, 또, 기업이 노동자에게 왜 포괄임금을 그 정도만 줄 수 있는지를 설명했더라면, 노사 갈등마다 파업이 등장하는 극한 대립이 이어졌을까. 되레 ‘악법’이 때로는 충분히 활용할 수도 있는 ‘자구책’이 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아쉬운 마음에 의문이 꼬리를 잇는다. 이 지점에서 글이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다소 순진한 생각이 떠오른다. 글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설명하는 통로인 동시에, 집단 사이 벽을 허물고, 솔직한 마음을 전하는 수단이다. 누군가 이 지점을 잘 풀어내기만 한다면, 5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노사 영역에서의 냉전을 끝낼 데탕트의 계기를 마련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답이 저널리즘에 있다고 믿는다. 물론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지적한 대로 언론에는 논조와 경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정치학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책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에서 지적했듯, 다양한 언론의 의견과 시각은 풍성한 여론과 민주적 여론 다양성을 실현하는 원동력이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한국은 ‘민주주의’라는 튼실한 오른 다리에 비해 ‘공화주의’라는 왼 다리가 빈약하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부실한 다리에 근육을 붙이려면, 서로 다른 처지에 기반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해야 한다. 노사 문제도 같은 문제의 연장선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정파적인 논조와 보도가 난무할지언정, 언론이 노동자와 기업가의 기울어진 목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부딪히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벽을 허물기 위한 노력이 없다면, 언론이 제아무리 ‘공화’를 부르짖은들, 결국 공염불일 뿐이다. 반세기 넘게 계속된 노사 사이의 겨울이 녹느냐는, 언론이 기꺼이 벽을 허물 수 있는 도구가 되어줄 수 있느냐에 달렸다. 경제학자 앨프레드 마셜도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심장’이 경제의 핵심이라 하지 않았나. 더러는 순진하다고 생각하겠으나, 나는 여전히 이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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