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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떼굴 May 09. 2024

퍼즐을 맞추는 시간.

각자 만든 허상의 엄마


억울하다고 악을 쓰던 큰 딸년이 조용해지니 셋째 딸년이 다음 타자로 나서 자길 왜 낳았냐고 잡아먹을 듯 지랄이다. 꽃 타령도 하루이틀이고 지랄도 한두 번이지 걸핏하면 쳐들어와 공격을 해대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이럴 땐 먼저 간 영감이 생각난다. 생각해 보면 영감이 가고 나서야 내 인생은 황금기였다. 영감 병시중에서 벗어난 지 이십여 년, 가끔 외로울 때도 있지만 외로움은 잠깐 참으면 그만이었다. 평생 나를 묶던 족쇄들이 모두 풀린 자유로움은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영감이 죽고 몇 년 지나지 않아 위암에 걸렸을 땐 앞이 캄캄했다. 큰 아들과 큰 딸네로 이 집 저 집 옮겨 다녔지만 어느 곳도 편하지 않았다. 눈칫밥이 싫어 내 집으로 돌아왔고 내 집에서 병을 완치시켰다. 그 후로 다시 병원 신세를 지게 될까 봐 두려워 한시도 몸을 놀리지 않고 바쁘게 움직였다. 덕분에 나이에 비해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편이다. 이런 내가 스스로 자랑스럽다.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이승에 남기는 미련 없이 기꺼이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마지막 남은 소원이라면 한 가지, 그저 자는 잠에 조용히 떠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무 잡념도 섞이지 않은 이른 새벽, 엄마가 흔들의자에 앉아 기도를 시작한다. 자식은 물론 손주들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안위와 재복을 주님께 빌고 간청한다. 세수를 마친 맑은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흔들의자 주변에 낮고 넓게 깔린다. 엄마와 함께 자는 날, 매번 같은 시간, 같은 내용을 읊조리는 기도에 잠을 깬다고 큰 언니가 말해 주었다.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기억력이 그저 신통 방통하더라고도 했다.


나의 지난 몇 년은 미운 감정에 전염된 못난 시간이었다. 날마다 매를 들던 유년, 성적표 한번 요구하지 않던 무심한 학부모, 친정엄마라는 이름으로 입장이 변경되었을 때조차 달라지지 않던 엄마에게 불만이 없었다. 언니들 원망을 들어주다 미운 감정에 이입되었고 엄마가 싫어졌다. 그즈음 자기주장 외에는 귀를 막는 언니들도 싸잡아 거리를 두었다.  


저벅저벅, 엄마와 영영 이별할 날이 가까워온다. 엄마를 향한 감정을 더 훼손시키면 안 될 것 같다. 야시랑 쟁이 막내딸과 원래 그런 엄마의 관계로 자연스러운 이별이 이루어져야 한다.




두 부류의 강자가 있다. 이타적 강자와 이기적 강자. 약자를 보면 마음이 무너지는 사람과 얕보는 사람. 내가 왜 새끼들에게 지고 살아. 며칠 전에도 엄마는 셋째 언니에게 발칵 화를 냈다고 했다. 자기 안위가 먼저인 내 엄마는 이기적 강자다. 엄마의 여러 얼굴을 알고 있다. 내 앞에서는 자식 걱정을 입에 달고 살는 약자처럼 굴지만 셋째 언니 앞에서는 약자를 얕보는 강자가 되는 엄마다.


모녀지간의 암투는 우리 집만의 일이 아니다. 몇 년 전, 친정 엄마가 미워서 임종조차 지키고 싶지 않다는 SNS 지인의 글을 본 적이 있다. 지인의 인성이 의심되는 내용이었다. 얼마 뒤 다른 지인도 엄마의 기록을 올렸다. 앞선 지인에 비해 방대한 분량이었다. 글을 읽고 계모보다 더한 친모도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지인은 어린 시절 엄마에게 학대당한 일화들을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전했다. 그 뒤부터 내 큰 언니 불만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때부터 엄마가 객관 된 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대상이 떠난 세상에서 태도를 바꾸는 사람들을 본다. 엄마에 의해 아버지는 세상 다정한 남편으로 이미지 변신을 했다. 엄마 임종을 지키고 싶지 않다던 지인도 돌아가신 자신의 엄마를 이미지 세탁했다. 몸살로 누운 지금 엄마가 해준 잡채를 먹으면 힘이 날 것 같다고, 한 여름 입맛 없을 때 물 만 밥에 엄마표 오이지를 올려 먹고 싶다고. 음식은 엄마라는 공식을 대비한 그리움으로 엄마를 추겨 세웠다. 또 다른 지인은 엄마 이야기를 두 번 다시 올리지 않았는데 만나서 물어보니 글로 모두 표출하고 나니 미련도 사라졌다고 했다. 미련을 남긴 엄마와 미련을 거둬간 엄마. 상처를 안고 사는 자식과 치유된 자식. 미련을 남기지 않는다고 상처까지 거둬 갈 수 있을까?..


각자의 마음 안에 크지 않는 소년과 소녀는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그 시절에서 성장을 멈춘 아이들이다. 좋은 기억에 살고 있는 소년/소녀는 삶의 동력이 필요할 때 소환되지만, 나쁜 기억에 갇힌 소년/소녀는 떠오를 때마다 사기가 꺾인다. 오직 자신의 이해로 쉽게 남을 단정 짓는 이들은 성장이 박제된 고립무원의 성 밖에서 멋대로 상처를 들춰 의식 없는 가해를 저지른다. 형제, 부모, 그게 누구든.




자식은 부모와 일대일을 원하지만 부모는 일대일처럼 여러 자식을 상대해야 하는 의무로 산다. 자식의 기억과 부모의 기억이 다른 이유다. 같은 상황을 두고 전혀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딸을 보고 기가 막혔던 적이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도 타이밍이라는 조건 하나로 삐꺽 일 수 있는 마당에 자식마다 엇갈리는 경우의 수는 또 얼마나 방대할 터인가.


자식이 일곱인 엄마는 자식들과 감정 교류가 최소한 일곱 번이다. 외할머니 환경을 거쳐 온 엄마도 성장을 멈춘 마음속 아이를 데리고 결혼했을 수 있다. 옳고 그름의 여과장치가 없는 아이를 데리고 그저 체화된 정서만 가지고 자식을 낳았을 엄마. 일곱을 낳고 기르는 동안 새로 터득한 경험을 지혜로 바꾸며 세상을 헤쳐 나갔을 엄마를 떠올린다.


아이를 낳기로 한 결심이 자발적 엄마가 되겠다는 결정과 동의어가 될 수 있을까? 가임 능력이 있을 뿐 임신 결정권자는 아니었을 엄마가 스무 살에 씌워진 엄마라는 올가미 안에서 자유로웠을까? 우리는 사회가 덧씌운 역할, 정확히 말해 희생을 더 잘 수행해 온 부모에게 공감점수를 준다. 비자발적으로 박탈되는 여러 요소를 무시하고 자신들 욕구만 당연시한 시각 오류다. 엄마처럼 안 살아, 를 외쳤던 세상의 모든 딸들은 그래서 엄마보다 진화된 일상에서 스스로 만족한 삶을 살고 있나? 그렇다면 왜! 요즘 아이들은 엄마라는 관문 앞에서 자꾸 뒷걸음질 치는 걸까?


자기 욕구에 맞춰 엄마를 재단하는 자식들. 엄마를 떠올려 따뜻하고 싶다는 환상은 엄마의 희생을 강제한 기억의 한 조각에 불과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자기 형편에 따라 보이는 달라지는 세상이다. 엄마의 초상도 그럴 것이다. 자기 형편은 미리 규정한 엄마와 실존하는 엄마가 먼 이유일 수 있다.  


셋째 언니는 엄마가 죽고 나면 후회하지 않기 위해 엄마에게 집착한다고 말한다. 엄마는 언니의 노력을 긍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 눈에 헛된 노력이지만 언니에겐 필요한 노력이다. 다정한 이별을 꿈꾸는 나 역시 허상을 붙든 건지 알 수 없다. 누가 누구를 판단하겠는가.


다만 엄마와 나 사이에 난 마음길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엄마의 지난 생을 인정하며 남은 생 또한 자연스럽게 흘러가시도록 지켜보려 한다.    


이전 15화 원래 그런 사람, 우리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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