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떼굴 Apr 25. 2024

부재중 전화

엄마는 시간부자

부륵. 부륵~.

테이블 위에서 핸드폰이 몸을 비튼다. 어서 자신을 일으켜 세우라는 몸부림이 무척이나 간절하다, 잠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다시 용을 쓰는 핸드폰, 그것을 향해 테이블로 다가간다. 그러나 통화 버튼을 누르는 대신 앞치마 주머니에 그것을 감금한다.


올해로 구순인 친정 엄마의 오후 루틴은 핸드폰에 입력된 순서로 번호를 누르는 일이다. 1번 큰언니 2번 둘째 언니. 누가 바꿔놓지 않았다면 나는 5번이고 내 핸드폰이 울리는 시간은 다섯 시에서 여섯 시 사이다. 변함없는 그 시간은 노인정에서 돌아와 이른 저녁을 드시고 십여분이 지났을 때이다.


그냥 앉았다  궁금해서. 용건은 언제나 한결같다. 몇 년 전만 해도 너는 엄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아?라는 타박으로 통화를 시작했다. 타박으로 말문을 여는 것보단 그냥이 났다. 하지만 궁금함이 쌓일 틈을 주지 않았다는 생각의 변화는 아직이다.


1인 자영업자는 할 일이 많다. 나는 대체로 일하는 중에 오는 전화를 받지 못한다. 엄마 전화만 피하는 건 아니란 소리다. 전화가 일의 맥락을 끊기도 하지만 엄마의 전화는 고려할 사항이 하나 더 붙는다. 통화할 때 목소리 볼륨을 한껏 높여야 하기에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아야 한다. 그 사이 손님이 올 수도, 이미 온 손님이 뭔가를 요청할 수도 있다. 통화로 부재하는 나는 손님 입장에선 거슬릴 것이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다음 순번으로 넘어가거나 통화를 이루지 못한 자식들 번호가 다시 눌러지거나 둘 중 하나다.


엄마의 전화를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은 날. 내 핸드폰에는 부재중 전화 숫자가 올라간다. 가끔 그 숫자에 울화가 치민다. 혼자 동동 거릴 딸 입장을 살피지 않는 엄마가 서운하기 때문이다. 일하는 도중엔 받지 못하니 아침이나 저녁에 하시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통하지 않아 설명을 포기했다. 매일 궁금한 엄마에게 모처럼 전화를 드리면 그땐 또 시큰둥하게 반응해서 정말 궁금한 게 맞나 싶기도 해서 그냥 궁금해서가 수긍된다.


그렇게 부모 자식 간의 안부전화는 엄마의 주도적인 패턴으로 정착되었다. 전화를 못 받는 내 상황에 짜증이 일면 급한 일이면 어쩌지 하는 조바심도 같이 일어난다. 조바심은 허탈감으로 바뀌기 일쑤다. 안도감이 섞인 허탈이지만 허탈감의 반복 뒤로 엄마 전화를 건너 건너 받는다. 하지만 건너뛴 만큼 불편감이 가슴 한편에서 뭉근히 졸아들고 있다.


김치 담을 준비로 풀을 쑬 때, 약한 불에서 느리게 졸아들면서도 임계점을 넘기면 풀은 용암처럼 풀떡거렸다. 풀떡거리는 용암을 잠시 지켜보다 불을 끄고 찬물로 농도를 맞췄었다. 멀지 않은 미래에 돌아가시게 될 엄마. 앞치마 주머니에 핸드폰을 감금한 내 행동은 엄마의 죽음 앞에서 깊은 후회로 풀떡거릴지 모른다. 그때 나는 어떤 찬물로 후회를 잠재울 수 있을까.


내 엄마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이다. 자식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본인의 사정과 감정이 먼저인 분, 태어나 처음 익힌 세상 말이 엄마이듯 비교를 알기 전부터 내 엄마는 이미 ‘그런 엄마’로 완성형이었기 때문이다.





이전 13화 노인이 된 언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