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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떼굴 Apr 11. 2024

차면 넘지는 법

저장하지 말아야 할 감정들

셋째 언니는 말의 홍수를 쏟는 큰언니가 피곤하다고 했다. 처음엔 하소연이었다. 그러다 지겹다고 불평했고 불평은 험담으로 이어졌다. 내가 셋째 언니의 병증 재발을 감지한 지점은 분노 단계였다. 그러나 버튼이 눌린 것은 험담 단계였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분노단계 든 험담단계 든 조증인 언니를 보살피는 일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상이었다. 그렇다고 내게 상황을 바꿀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애가 타고 답답했다.


같은 환경에서 자라도 형제간의 성향은 서로 다르다. 결핍을 인식하지 못해서 철없는, 그래서 자유로운 인격체가 나라면 셋째 언니는 거칠게 행동하는 것과 달리 속마음은 매우 약해서  단절이라는 고치에 숨기 바빴다. 숨바꼭질을 거듭할 때마다 언니는 작아졌고 마침내 작은 충격에도 쉽게 터지는 애벌레에 이른 것이다. 큰 언니의 말 폭탄을 감당할 수 없어 다시 숨어버린 셋째 언니. 살갗이 쓸리고 귀에서 피가 날 때쯤 애벌레의 심장이 그렇게 터졌을 거라고 짐작한다. 다시 조증에 도착한 언니는 반격하듯 형제들 속을 터트리고 있다.


큰 언니 또한 엄마에게 받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언니 배경이 우리 집이 아니었다면, 결혼 상대가 형부가 아니었다면, 하는 상상을 해 왔다. 맏이라는 자리의 역할은 대단해서 지금도 큰언니에 대한 깊은 존경을 거둘 수 없다. 세째언니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에 큰 언니마저 같은 원인으로 이상행동을 보이는 현실이 아득하기만 했다. 야시랑 담당인 내 지분으로 가족 분위기를 바꾸겠다 먹었던 마음에 힘이 빠지면서 나도 우울해졌다.


서로에게 얽혀 있는 가족. 큰 언니를 말리거나 셋째 언니를 달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욕심을 부려 적극적으로 나서면 다른 상처가 만들어질까 봐 조심스럽다. 나는 엄마 때와 마찬가지로 먼저 큰 언니 흉을 봤다. 뾰족한 수가 없는 사람의 소극적 방법이었다. 큰언니를 험담를 하면 안 되지만 그땐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자식에게 생색내는 사람 우리 엄마. 아버지가 바람피운 이력을 사골로 우린 덕에 생색은 무기가 되었다. 무기는 우릴 불안하게 했다. 안 떠날 테니 아버지를 같이 미워해. 그리고 나를 돌 봐. 엄마 생색에 담긴 뜻이었다. 나는 ‘원래 그런 엄마’로 받아들여서 엄마에 대한 상처가 없다. 결혼 후에는 여자로 겪은 엄마의 아픈 시간에 공감했다. 그러나 딸을 결혼시킨 나이에 언니들 상처와 마주하니 엄마를 향한 내 마음이 가스라이팅의 결과라 생각된다. 참담했다.


생색의 가벼움은 엄마 한 사람이면 충분했다. 균형의 중심 추였던 큰 언니가 과거의 희생을 생색으로 치환한다. 언니의 생색엔 분노가 섞였다. 엄마와 닮은 꼴이다. 자식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생색을 무기로 쓰던 엄마가 싫었던 큰 언니는 그런 엄마와 다르기 위해 자신을 감시했다. 하지만 애끓는 노력이 노인계로 들어서면서 결국 엄마를 표방한 습으로 드러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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