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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후니 Jun 23. 2024

‘우리 할배의 꿈’ 전자책 만들기

2 장. 할배의 꿈, * 집이 아닌 병원에서 글을 쓰다

할아버지 서재에서 이 때까지 모으신 글감인 원고를 다 꺼내었다. 

총 7권의 노트였다.   

노트 옆에는 '상주 새마을운동본부'라는 글자가 새겨진 오래 된 연필이 데구르르  구르고 있다.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가 가지 신 모든 것들이 다 오래된 것 같다.  

적어도 나보다 나이가 많은 듯한... 물건들도 다 어른들이다.  

"이 연필로 내가 글을 쓴 기라.. 내가 어렸을 적 상을 받은 연필 100자루 가지고  애끼고 애껴서 쓴기다. 허허허.."  

"와아 대단하셔요.. 할아버지 샤파(연필 깎기)도 없는데 뭘로 깎으셨어요?"  

"이걸로.."  

내미시는 물건을 보니 까만 색으로 된 칼이었다. 

칼로 연필을 손수 정성스레 깎으셔서  글을 쓰신 것 같다.  

"연필을 요걸로 깎으면서 심호흡을 하제.. 그렇게 글을 쓰는 기라...부대에서도 그렇게  글을 썼다 아이가..."


나도 글을 쓸 때 커피를 한잔 마시거나 산책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마음을  다잡고는 했는데, 할아버지는 연필을 정성스럽게 깎으시면서 글쓰기 준비를 하셨던  거였다.   

"자 이제 이걸로 전자책 만들라믄 우야믄 되노?" 

"네 할아버지.. 쓰신 것들은 글 감이고 전자책은 컴퓨터나 노트북으로 작성을 해야  하거든요.. 일단 제가 원고 주시면 이걸 서울 가서 MS WORD 프로그램으로 글을 옮겨  놓겠습니다."  

"뭐? 엠에스 무시기가 뭐꼬?"  

"아~~ 흐흐흐 전자책으로 변환하기 위해서 공책의 글을 컴퓨터에 글로 바꾸기  위한 프로그램이에요. 그걸 해야지 향후에 전자책으로 바꿀 수 있답니다."  

"그래.. 난 잘 모르겠다...허허.. 그러면 할애비가 쉽게 이해해보자면...내가 이런  노트나 공책에 쓴 글을 전자책으로 바꿀라마 그 뭐 MS인가 무시긴가에 다가 이 글을  다시 옮겨 적어야 된단 말이제?"  

"네네 그리고 MS 무시기가 아니고 MS, 즉 마이크로소프트 WORD 프로그램입니다.  다음주에 제가 노트북을 들고 내려와서 보여 드릴 게요.."  


할아버지의 눈이 반짝인다.  

"와 우리 강아지가 진심이네 그려.. 허허허 그래주마 난 좋지.."  

"당연하죠 할아버지. 아참! 그리고 글은 다 쓰신 거에요?"  

"아니 마지막 정리를 조금 더 해야 하는 디 손이 아파서 글 쓰기가 영 그렇네..."  

"아~~ 그러시면, 할아버지가 글로 안 쓰셔도 저 휴대폰에 대고 말씀하시면  글로 작성이 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말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으세요?"  

"뭐? 말로? 그런 것도 있나? 야 세상에 별의 별끼 다 생깄네.." 

"흐흐흐 엄청 편리 해졌죠..."  

"그래 손으로 쓰는 것 보다 말로 하면 편하제... 자 우찌하믄 되노?"  

"자 제가 이 '클로바노트' 어플을 켤 건데요.. 여기다가 말씀하시면 글로 변환이  되세요."  

"아 글나? 좋네.. 자 그라면 함 해보자.."  

할아버지는 내 휴대폰에 대고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이 글로 바뀌는 것을 어린아이  마냥 신기해하시면서 눈을 반짝이셨다.  


'나이가 들면 애가 된다는 말을 들었는데.. 할아버지를 보니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나 또한 즐거워하는 할아버지를 보니 왠지 모르는 뿌듯함이 생겼다.  

"아참! 제가 차에 마침 예전에 쓰던 휴대폰이 있는데, 그 휴대폰에다가 클로바노트를  깔아드릴께요. 제가 서울 가더라도 글을 쓰시고 싶으실 때 그 프로그램을 누르셔서  말씀으로 녹음만 해두세요.. 제가 그러면 다음 주에 와서 글로 바꿔드릴께요."  

"오이야.. 아이쿠 고맙데이.. 울 강아지..허허허.."  

그렇게 하루가 가고 다음날 나는 처리해야 할 일로 인하여 다시 상경했다.  


"띠리링~ 띠리링~"  

"할아버지!"  "오이야~ 울 강아지 잘 올라갔나 싶어서 전화했지." 

"흐흐흐 제 나이가 몇인데요.."  

"네 나이가 몇이라도 내는 니가 항상 얼라다.. 강아지다.."  

"흐흐흐 네 잘 올라왔습니다. 할아버지도 잘 쉬시고 글 쓰시고 싶으실 때는 제가 드린  휴대폰을 여셔서 녹음하세요. 제가 알려드린 방식으루요.."  

"오이야 알았구마.. 민수도 잘 쉬고 다음 주에 보자.. 얼른 드가거라.."  

"네 할아버지. 건강하게 지내세요..꼬옥이요..."  

"그래 오이야.."

  

전화를 끊고 선 왠지 할아버지가 갑자기 떠나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머리를 가로저으며 강하게 털어내려 했지만.... 불안감이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아! 할아버지....'  


나는 퇴근 후 본격적으로 할아버지가 주신 공책의 글을 MS 워드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제목 글자(폰트)는 18정도, 소제목은 16~14정도, 본문은 12정도 크기의  글자로 작성하였다. 

그리고 간격은 1.5정도 띄웠다.  여기서 잠깐 설명을 보태면 전자책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크몽'과 '탈잉'이라는  플랫폼에서는 글자 사이즈의 규정이 정해져 있다. 

내가 전술한대로 본문은 12이고  제목과 소제목은 제한이 없다. 간격은 크몽의 경우 1.5 간격에 A4지 기준 20장 이상을  작성해야 하고, 탈잉은 50장 이상이 되어야 한다. 


나머지 플랫폼(부끄끄, 유페이퍼,  텀블벅)에는 글자수와 간격, 총 페이지 수의 제한은 없으나, 통상적으로 본문 글자  크기 12, 간격 1.5, A4지 50장 이상을 준용하여 집필하게 된다.    

그리고, 폰트는 기본 폰트를 최대한 활용하여야 한다. MS 워드나 다른 워드파일들을  보면 개인이 저작권을 가지거나 회사가 저작권을 가진 유료글씨체가 있다. 

이런  글씨체를 내가 전자책 판매를 위하여 작성하여 판매하게 되면 글씨체 도용이 되어 법적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가급적 각 프로그램에서 주어진 기본 서체를 활용해야 한다.    



[할아버지의 글 1편 / 제목 : 기똥차게 억시로 운 좋은 날]  

나는 오늘 당직사관이다. 3번째 순찰을 마친 지금 시각은 새벽 4시다. 

어슴프레  새벽이 밝아 오는 것 같다.  갑자기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당직실 창문을 열어서 밖을 보니  까치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  


새벽 4시 10분.. 갑자기 당직대 비상벨이 울린다. 비상사태가 발생한 것 같다.   

상황을 파악해보니 내무반에서 누군가 작전과로 신고를 급하게 넣은 것 같다.  

나와 당직사령관인 김 대위가 같이 그 내무반으로 내달렸다... 

심상치 않다.. 걱정이  되었다.. 심장이 뛰었다..  


내무반을 열고 들어가 보니 사병들이 모두 깨어나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었고, 헤집고  들어가보니  사병하나가 쓰러져 있고 동료 병사들이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다...  

정황을 보니 호흡곤란이 온 것 같았다. 


그가 누구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나는  의무사관에게 비상을 쳤다.  

'아 골든 타임을 놓치면 안될 텐데...'  의무사관과 긴급 호송차가 내무반 앞에 도착했고, 의무병들이 급하게 뛰어들어왔다.  


그제서야 그 사병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평소에 나를 잘 따르던 김 상병이었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강단 있는 어머니께서 꼭 군대생활을 해야 남자라고  하시면서 부대에 보낸 친구이고 위문 오실 때 마다 따뜻하고 맛있는 떡을 주시던  어머니의 아들... 시장통에서 떡을 팔면서 뒷바라지하던 그분의 귀한 아들이었다..  


'제발..제발..제발.....!'  


난 당직사령관의 짚차를 몰고 당직사령관과 급하게 김 상병이 실려서 떠난 호송차를  따라 내달렸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쉴새없이 김 상병의 응급실로 달려갔다.  (...)  

시간이 꽤 흐른 것 같다.. 아직 별 소식이 없다.. 


병원 간호사가 나에게 찾아왔다.  

"혹시 이대봉하사님 맞으세요?"  

"네 맞는데요.."  

"아! 집에서 저희 병원으로 부모님께서 연락이 오셔서 아내분께서 출산할 것 같다고  하시는데  빨리 가보 셔야 할 것 같아요.."  

"네에??"  

'그리고 보니 어머니께서 이번 주가 출산고비라고 하시 더만 그 날이 되었 구만.'  

그런데 나는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김 상병이 사경을 헤매고 있고, 만에 하나..  하늘에 별이 된다면..  

그 어머니는 어떠실 것인지 만감이 교차했다... 마음이 아팠다.   

'제발..제발..'  

나의 마음은 남아있자고 하지만... 발걸음은 아내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미안해 김 상병! 꼭 이겨내고 살아야 해!'  

나는 당직사령관에게 이야기하고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  

아이가 태어났다. 고추였다. 너무나 기뻤다. 세상을 다가진 것 같다... 너무  행복하다....  

그런데, 뭔지 모르는 불안감이 찬바람 들듯이 마음 속으로 쑤욱 들어온다..  '아차!'  나는 황급히 김 상병이 있는 00병원으로 전화를 걸었다.  


"네? 정말이요?? 아니 그럴 리가요............"  "흐흐흑........."  

내 아이가 태어난 날 내가 아끼던 김 상병이 세상을 떠나 하늘에 별이 되었다. 


나는  아직도 그 김 상병의 마지막 순간을 같이 하지 못한 죄책감이 남아 있다.  

아들을 볼 때마다. 김 상병이 얼굴에 겹친다! 

나는 그럴 때면 이렇게 이야기하며  떨쳐내려고 한다.  

'그래도 내 아들 이장호를 만나게 된 날이라 기똥차게 억시로 운 좋은 날 아이가?'  

그 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김 상병 곁을 지키겠 노라고 말하기가 왜 쉽지 않는지  모르겠다. 

 



글을 옮겨 적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뜨거워졌다.  

'할아버지도 이런 시절이 있으셨구나.'  

어렸을 적 우람한 체격은 온데 간데없으시고 한 없이 작아 지신 할아버지의 어깨가  

갑자기 떠오르면서 다시금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리링~"  

새벽을 깨우는 벨소리에 잠이 깼다. 시간을 보니 새벽 5시 15분을 가르키고 있다.  

"네..여보세요.." 

"민수야 할미다.. 네 아버지도 오고계신단다.. 네 할배가 갑자기 쓰러지셔서 응급실로  가고 있다. 알고 있거레이.."  

"앗... 네네.. 저도 빨리 내려갈께요.."  

"뭐할라고? 일보레이.."  "아니에요 갈께요.. 병원이 어디에요?"  

"안와도 되는디.. 병원은 00병원으로 간다카더라.."  

"네네.."  나는 평소보다 3배의 속도로 차비를 해서 구미로 차를 몰았다.

 

'할아버지 제발 무탈하셔야 해요.. 저랑 이 책 완성하셔야죠..'  

나는 마음 속으로 빌면서 엑셀을 밟았다..  

구미 00병원에 도착해서 아부지께 연락드리니 먼저 도착하셔서 할머니랑 어머니랑  같이 계신다고 하셨다. 응급실에 들어가 보니 할아버지가 힙겹게 숨을 내고 계셨다.  

조금 전 보다 나아지셨다는 의사의 말씀을 듣고는 조금이나마 안심이 되었다.  


"조금 더 지켜보고 용태가 좋아지시면 일반병실로 이동을 하셔야 될 것 같아요.  연로하신 데, 질환도 있으셔서 조금 더 힘들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할아버지께 다가가서 손을 꼭 잡아 드렸다.  

'할아버지 꼭 깨어나세요. 저랑 이 책 꼭 완성해요.'  

시간이 흐르고 할아버지의 상태가 많이 좋아지셔서 일반병실로 이동했다.  

호흡과 맥박도 정상으로 돌아오셨고, 처음보다 훨씬 좋아지셨다.  


조금 지나니 할아버지가 눈을 뜨셨다. 

 "아이고, 아침부터 난리가 났구마이..."  

"아버님 무슨 말씀이셔요. 천만 다행이셔요..."  

"할아버지 저도 얼마나 걱정한 줄 아세요?"  

"아이고, 우리 아들 내외랑 강아지 왔구마이... 걱정 많이 했나부네.. 내가 이래봐도  대한민국 최정예 육군 하사관 출신 아이가? 쉽게 안 죽는다 마."  

"아버님 말씀 들으니 많이 좋아지신 것 같네요.."  

굳은 표정의 아버지가 그제서야 얼굴이 조금 펴지셨다.  


"할아버지 책 만드시는 것 완성하실 때까지 무조건 건강하셔야 해요."  

"아이고, 맞다. 글체.. 우리 강아지랑 책 만들어야 제."  

"엥? 아버님 책이 무슨 이야기세요?"  

"아~~ 그런게 있다 마.. 민수랑 나랑만 아는 비밀이제..ㅋㅋ 안글나?"  

"네네 맞아요 할아버지! 아버지는 모르셔도 되요..흐흐흐"  

"민수 너.. 흐흐 그래 할아버지가 원하시는 거 있으시면 네가 잘해드려라."  

"네 아버지." 

 

"할아버지 당분간 글을 여기서 완성해야 할 것 같아요. 마침 제가 노트북도 챙겨왔으니  회사에 휴가를 조금 내고 여기서 작업을 할께요.."  

"뭐할라 고 휴가를 내노? 회사가 중헌디..."  

"아녀요.. 중요한 프로젝트가 끝나서 여유가 좀 있어요..."  

"아 글나.. 니가 문제만 안되 삐면 나야 좋지.."  

그렇게 우리는 병원에서 나머지 원고를 작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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