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찌 쓰마 되노?
"민수야...!"
할아버지가 주무시다가 깨어나셨다. 곤히 잠드셔서 7시간 이상 주무신 것 같다.
평생 군인과 공무원을 하신 할아버지여서 5시간 이상을 푹 주무신 적이 없다고 한다.
게다가 나이가 드시고 나서는 4시간도 못 주무신다고 하셨는데.. 기력이 쇠하셔서 그러신지 7시간을 내리 주무시고 깨어나서 나를 부르셨다.
"네 할아버지!"
옆에 간이 침대에서 잠을 잔 나는 몸을 일으켜 침대의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제 글을 좀 써보자 꾸나."
"네 할아버지 그러시죠. 제가 노트북에 글을 옮길 테니 할아버지는 마무리하실 내용을 녹음하셔서 글로 옮기시면 될 것 같아요."
"아 그러면 나는 클로바노트 인가 뭔가 켜고 글을 써볼꾸마.."
"네"
나는 옆에 간이 책상을 펴서 노트북으로 글을 옮겨 적었다. 할아버지는 옆에서 말로 글을 쓰고 계셨다.
나는 글이 혹시나 오타가 나지 않도록 할아버지가 말씀하시는 내용은 흘려듣고 할아버지 노트에 글을 주시했다.
"민수야 나중에 해야겠다.. 억수로 피곤허네.. 허허허.."
"네네 할아버지 고생하셨어요.. 저는 이제부터 열심히 글을 옮겨야 겠네요.."
"아 근디 나도 그 노트북 글 옮기는 것 한번 알려주라."
"할아버지 자판 쓰실 수 있으세요?"
"야야.. 이래봐도 공무원 시절에 한 타자했지 아마.."
"하하하 타자랑 글자 배열이 다르실 텐데요..."
"실은 나비 타법으로 천천히라도 쳐본 적 있으요... 이 할애비가 말이지...허허"
"나비 타법이요?"
"나비가 고양이 아니냐? 고양이 발처럼 툭툭 친다는 게지...."
"하하하하... 주먹으로 치시면 안 되요 할아버지.."
"예끼 이놈 손가락이지 하모하모..."
나는 할아버지 앉으신 앞쪽에 간이 책상을 옮겨서 노트북을 놔 드렸다. 그리고 설명을 드렸다.
'툭.툭.툭, 툭...'
'이게 나비 타법인가? 흐흐흐...'
"아 그리고 할아버지 이 글을 쓸 때 규칙이 있어요... 이 글자 크기가 폰트사이즈라고 하는데..
12로 쓰셔야 해요. 그리고 이 줄과 줄의 간격은 1.5 정도 간격을 띄워야 하고요..."
"아이고, 무신 말인지 모르겠다 만.. 내 방식으로 이해하면 글자크기 랑 요기 줄간격은 규칙이 있다는 거제?" "네네 전자책 일부 플랫폼.. 아.. 그냥 전자책 등록, 판매할 수 있는 일부 회사에서 규칙을 세운 게 있어요.." "아~~ 그래 그래 그람 규칙 지켜야제.."
'탁, 탁, 탁, 타탁,타타탁,...'
할아버지의 손놀림이 조금씩 빨라지셨다.
"아 그리고 할아버지 할아버지 총 7권의 공책 중에 제가 한 3권 정도 옮겼는데.. 한 권당 20페이지 정도 나오니까 할아버지 책은 총 140페이지 분량의 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엄청난 분량의 책이네요...
보통 전자책 기준으로 50페이지 정도만 되어도 되긴 하는데.. 할아버지는 거의 종이책 수준의 분량이 나올 것 같아요."
"아이고, 그러냐.. 그래도 할애비 인생이 종이책은 되지 암... 허허허.."
"그리고 할아버지 책표지는 원고를 다 옮기고 제가 깔끔하게 멋진 걸로 만들어 드릴 테니 걱정 마시고요.." "아이구 우리 강아지! 네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 그래 그래.."
나는 다시 할아버지에게 노트북을 건네받아서 할아버지 공책의 원고를 노트북으로 옮겼다.
[할아버지의 글, 제목: 엄마와 아이]
때는 1978 년 철도역무원 시절이었다. 눈이 많이 내려서 행인들과 승객들이 미끄러질까봐 새벽부터 나와서 비질을 해댔다. 눈이란 것이 바라보기만 하면 참 이뿐데 거시기하게 쌓이면 여간 골치 아픈 것이 아니다. 혹시나 노인이나 임산부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 날텡게.. 내가 비질을 해야 한다.
(...) 고놈 참 고약하게도 그칠 줄 모르게 내린다. 역 앞에 애들이 뛰어놀고 재잘재잘 대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괜스리 좋아진다. 갑자기 분희가 생각나는 날이구먼.. 첫 눈 오늘 시절에 빨간 꽃 양말 들고 선물주러 갔는데... 대구로 이사가삤지.. 아스라이 생각나는 분희..
’잘 살고 있겄지?? 걘 내 기억 할랑가 몰겠네. 마 다 잊혀지는 거지... 그래도 마음 한켠에 이쁜 추억 하나 있는 게 어디고?’
(...)
"저 아저씨 죄송한데요..."
어떤 아주머니가 천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5살 쯤 되어 보이는 애하나를 델꼬 등에는 갓난쟁이를 들쳐없고내 앞에서 말을 걸었다.
"아~ 네 무신일인교?"
"네, 죄송한데예.. 저 기차 쪼까 타면 안될까예?"
"아~ 되지 왜 안되는교.. 기차표 어여 내보이소.."
"아니... 제가 차표 끊을 돈이 없어가.. 이렇게 부탁하는 거라예"
"허허.. 차표 없으면 안 되지요...."
갑자기 그 아지매가 땅바닥에 풀석 주저 앉더니만 내 바지를 잡았다.
"지금 밥묵을 돈도 없어가 애들도 굶었는데.. 서방 찾으러 가야하는데 돈이 없어가..."
"딱하지만.. 규정상..... 음... 그 서방은 어디 갔는교?"
"대구에 갔다네예 바람나서 도망 가뿌가꼬.. 보시다시피 애는 이래 놔놓고.. 나 혼자 구신처럼..."
"허허.. 그 사람 참말로 나쁜사람이네요..."
"그래서 찾으로 가야 되는 기라예 찾으마 차표값 부치 줄거라예"
이 아지매 너무 딱한 것 같다.
"근디 대구 어드메에 있는지는 아는교?"
"대구가서 이리저리 찾아봐야지예"
"대구가 어디 동네 구멍가겐 줄 아는교?"
"연이 있으면 만나겠지예..."
마음이 찌릿찌릿 해진다... 호주머니를 훔치니 아침에 아들내미 줄라고 샀던 사탕이 들어 있었다.
사탕봉지를 아지매 손을 잡고 있는 아이에게 건넸다.
“아이고, 이 귀한 것을.. 어여 감사하다고 해야지..”
“감사합니다!~”
“아이고, 별거 아닌데 아한테 와그라요?”
나는 역무원실에 들어가서 차표 두 장을 가져왔다.
“아지매 얼라들은 차표 필요 없을 거니까 혹시 서방 못 찾으시면 다시 돌아올 때 이 차표 쓰이소.”
“아이고, 마… 너무 감사합니다. 이 은혜 꼭 갚을께예..”
“꼭 찾으이소. 그리고 행복하이소.”
“감사합니다. 아저씨”
“그람 살펴 가이소..”
나는 들어오는 기차를 확인하기 위해 플랫폼으로 나갔다.
‘뿌우~~~’ 기차가 들어온다.
신호 확인 및 정리등을 하고 있으니 저 멀리 그 아지매랑 아이들이 기차를 타는 모습을 보았다.
“꼭 찾아야 할낀데..”
“뭘 찾아요?”
차장이 물어본다.
“아니 어떤 아지매 말인기라. 바람나서 도망 간 서방 찾으러 간다해서…”
“아이고, 천하에 나쁜 놈이네요.. 그람 형님 저 가요. 수고하이소.”
“그래 안전 운전 하는기라이~~ 조심 조심!”
“네네..”
다시 역무원실로 들어오는 데 문 앞에 왠 비닐봉지가 놓여있었다.
살펴보니 삶은 옥수수 2개랑 옥수수 씨앗이었다.
“아이고, 아지매가 애나 묵이지.. 이걸 왜 나두고 갔노?”
옥수수를 받아 드니 안타까움이 더 밀려온다.
(…)
집사람이 옥수수를 잘 키아서 옥수수 농사도 잘 되었다. 대구로 떠난 아지매는 그 이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아마도 찾았겠지…’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찾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지매 차표 값은 필요없어요. 그 차비보다 더 큰 선물을 받았으니까… 돌아오면 이 선물 다시 나눠 줄낀데…”
나는 옥수수가 알이 실하게 차 있는 옥수수 밭 앞에 서 있다.
(…)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대구에 모 여인숙에서 아들내미 둘이랑 아지매 하나가 죽어 있었다고 하였다. 여인숙 방 한 켠에는 연탄불이 피워져 있었다고 한다.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지만, 아이에겐 눈깔사탕 몇 개가 있었고, 아지매 보따리에는 차표 한 장이 있었다고 했다.
‘내가 그때 못 가게 말렸어야 하는데…’
아직도 내 마음 속에는 그 아지매와 아이들의 기차 타던 모습이 남아있다.
코 끝이 찡해졌다. 뭔가 모르는 마음이 벅차올랐다.
‘와아~ 우리 할배 필력이 대단하시네… 내가 할아버지의 유전자를 받았나보다.’
고개를 들어서 침대를 바라보니 할아버지가 눈을 감고 주무시고 계시다.
‘몸도 성치 않으신 데 많이 피곤하신 가 보다.’
나는 몸을 들어서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꼭 감사 쥐었다.
‘할아버지 꼭 병이 나아서 더 많은 꿈 저랑 이뤄보아요. 그리고 이 책 반드시 출간해서 할아버지 꿈을 이뤄드릴 테니 저랑 출판 후에 여행이라도 가요. 할아버지가 자랑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