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근대건축물 그림 연작
서울의 근대건축물 연작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했던 생각이다. 문득, 서울의 근대건축물이 우리의 기억속에 자리 잡은 방식에는 모순이 많다고 느꼈다. 시기적으로 가깝지만 기억속에 희미하고, 공간적으로 중심에 있으나 지나쳐도 잘 알지 못한다.
근대보다 훨씬 이전에 지어진 경복궁, 창덕궁, 다보탑, 석굴암 등의 문화유산은 오히려 우리의 기억속에 명료하게 자리하지만, 이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역사의 굴곡을 버텨온 근대의 건축물들은 어디서 들어본 듯 아닌 듯 기억속에 어렴풋하다. 한국사의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 근현대사이기에 진도에 쫓겨 후루룩 배웠기 때문일까? 아직 시간의 빛바램이 덜해서일까?
서울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이국적이고 빈티지한' 건축물을 발견한다면 그건 우리나라의 아픔이 가득했던 근대 시기를 함께해 온 역사적 장소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근대건축물을 보며 '왜 이런 건물이 있는지 몰랐을까?'하고 되묻게 된다.
알지만 모르고, 가깝지만 희미하고, 특별하지만 잊혀진 서울의 근대건축물들을 모아서 나는 'Older Than Old - 오래됨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고 이름 지었다. 근대역사와 기억 사이에 모순이 있듯 제목도 어법에 맞지 않고, 그림 속에도 원근법적 모순이 담겨있다. 이러한 표현적 모순은 전적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 Philippe Weisbecker에게 빚지고 있다.
어쩌면 역사적 가치로 철저히 '보호'되어 생활과는 유리된 유명한 국가유산보다 지금의 일상에 섞여 잘 모르는 채로 어우러지는 근대건축물은 더욱 독특한 신비로움을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간의 나이테를 켜켜이 쌓아온 고목(古木)이 자아내는 숨결이 느리고 편안한 것처럼, 건물에도 마치 나이테가 있는 것 같이 오랜 시간을 품은 은근한 빛바램이 참 좋다. 게다가 근 100년의 역사를 품은 채 카페로, 은행으로, 박물관으로, 미술관으로 재탄생한 건축물 속을 나의 두 발로 탐방할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아마도 나는 서울의 근대건축물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이러한 신비로움을 감싸고 있는 얇은 장막 하나를 걷어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존 매거진으로 발행했던 소수의 글들을 브런치 연재로 다시 시작합니다!)
사하 @saha.ffff
아날로그 로맨스, 디지털 드로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