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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밤 Jun 08. 2024

혹시 너 순돌이니?

태극, 아름, 나나, 순돌이

교통사고로 병가를 내고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와중에 우리반을 맡아주시는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나비 네 마리가 우화했어요.’

지지난주까지 나비 세 마리를 보내준 후 아이들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화분에 번데기가 네 개 있었다고 했는데 금요일까지 깜깜 무소식이었다.

한 아이는 말했다.

“선생님 저거 번데기가 아니라 나비들이 남겨 놓은 번데기 허물인 것 같아요.”

나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월요일에 아이들에게

“저건 나름이, 팔팔이, 주비의 허물이 아닐까?” 라며 나름 인지적 오류의 상황을 제시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교통사고가 나버렸고... 그것이 번데기들일지, 번데기허물들일지 이들이 잘 있는지는 나의 사정권 밖이었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소식이! 그건 번데기 허물이 아니었다. 정말 나비가 되기를 준비하는 번데기였다. 문득 나는 번데기 허물과 실제 나비가 들어있는 번데기의 차이가 궁금해졌다.


자그마치 네 마리의 나비라니. 하얀 방충망에서 네 마리가 날아다닌다니! 한 마리가 폴랑폴랑 날아다니는 것도 너무 예뻤는데 네 마리라니. 사뭇 그 장면을 못 보는게 나는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휴일이 4일이나 되어서 나비가 나비의 생을 살 수 있도록 나비를 풀어주십사 부탁드렸다. 선생님은 배테랑이시기에 아이들과 나비 이름을 짓고 관찰일기까지 쓰신다고 해주셨다. 참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내가 안심하고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다음날 나비를 날려주었고, 아이들이 사진을 찍었다고 연락이 왔다. 뭐라고 이름을 지었을지, 네 마리는 잘 날아갔는지 월요일에 꼭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한 아이의 카톡이 왔다. 네 마리 나비 사진을 찍어서 이름을 붙이고 날려보내주는 광경을 동영상으로 엮어 보내주었다. 네 마리 나비의 이름은 태극, 아름, 순돌, 나나다. 왜 이렇게 이름을 붙였을까? 나는 이름을 붙일 때 왜 그렇게 이름을 붙였는지 그 이유를 말해보라고 한다. 아무리 예쁜 이름이어도 그 안에 의미를 담기를 바래서다.  

첫 번째 나비는 우화될 때 날개가 접혀서 높게 날지를 못해 훨훨 날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름이’

두 번째 나비는 나름이에 비해 에너지가 많고 엄청 팔팔하게 날아다녀서 ‘팔팔이’

세 번째 나비는 주말동안 비밀스럽게 우화한 나비라서 ‘주비’ 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태극이, 아름이, 나나, 순돌이는 어떤 연유로 붙여진 걸까? 궁금했다. 특히 저 귀여운 이름의 순돌이는 누가 추천한 것일까?

네 마리를 날려주면서 아이들은 한 마리씩 방충망을 나갈 때마다 “와~!!” 하며 환호했다. 못 나온 하나의 나비가 나오자 “안녕~~~!!”이라며 나비가 날아간 쪽을 향해 손을 흔들며 벅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때가 있다면 바로 이때다. 길을 걷다보면 자주보이는 나비지만,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가 케일을 뼈만 남겨두게 갉아먹으며 엄청난 양의 똥을 싸고, 번데기가 리듬을 느끼듯 꿈틀거리는 광경에 놀라며(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 점심을 먹고 온 사이 엄청 큰 날개를 뽐내며 케일 줄기에 앉아있는 나비의 자태를 바라보는 순간은 신기하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그 나비가 답답한 방충망을 떠나 하늘 높이 비상할 때 우리반 친구들 모두가 그 광경을 쳐다보는 순간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기도 하다.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오늘 병원에 가는데 하얀색, 노란색 나비가 개망초 군락 속에서 팔랑거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너 순돌이니?”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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