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을 타고 작은 봉우리들을 지나는 종주코스를 선택했을 때이다.
하나의 봉우리를 목표로 하고 올라갈 때는 계속해서 오르기만 하면 정상을 만났고, 하산할 때는 쭉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됐었다. ‘도대체 정상은 언제 나오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힘이 들어도 정상으로 가까워지고 있긴 하다는 확신은 있다.
그런데 능선을 타고 여러 개의 봉우리를 지나는 산행은 심리적으로 더 어려웠다. 분명히 아직 봉우리에 오르지 않았는데 어느새 내리막을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내리막 앞에 또 오르막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산행을 해보기 전에는 내리막이 더 편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돌과 흙으로 울퉁불퉁하게 경사가 있는 내리막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내려오는 내내 무릎과 허벅지에 힘을 잔뜩 준 긴장상태가 계속되기 때문에, 내리막이 훨씬 힘들다. 큰 돌이나 높은 계단에서는 몸을 틀어 무릎에 충격이 덜하도록 옆으로 내려와도 ‘억!’ ‘헉!’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그렇다면 오르막이 더 편한가? 하지만 또 그건 절대 아니다. 오르막은 오르막이다. 당연하게도, 우리가 예상하는 만큼 힘들다. 그러니 내리막과 오르막이 계속되어 구불구불한 산 위 능선을 타는 산행은 체력 소모가 엄청났다. 거기에 갑자기 내리막을 만나면 혹시 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함이 더해져 더 오래 걸리는 느낌이었다.
남편과 칠갑산 산행을 위해 떠났던 날이었다. 오전 일찍 출발했으나 비가 떨어져서 등산을 취소하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며 방향을 틀었었다. 그런데 바로 날씨가 개어 구름 사이로 해가 나오고, 불을 켠 듯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다시 돌아와 등산로에 올랐다. 보통 8시-9시 전후로 등산을 시작했었는데 날씨의 변덕을 따라왔다 갔다 한 탓에 그날은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등산을 시작했다. 시작을 거의 오후에 했으니 '해가 지기 전에 내려가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해졌다.
산행을 마친 후 돌이켜보니 우리가 늦은 시각에 산행을 시작했음에도 일몰 전에 하산했으니 총 소요 시간은 평소와 비슷했었다. 그런데 총 소요시간을 계산하지 않고 느낌만 떠올려보면 체감 상 6시간 이상은 걸렸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되어서 체력 소모가 컸던 탓도 있겠지만 ‘이게 맞나?’라는 불확실함이 한 걸음 한 걸음, 1분 1초를 더 길게 만든 것 같다.
확신과 믿음, 자신감 같은 것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실감했다.
초행길을 갈 때, 등산을 할 때는 실제로 길을 잘못 들 위험도 있으니 계속해서 경로를 확인하는 것은 필요하다.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거나 내리막만을 걷는 것 같을 때, ‘내가 맞게 가고 있나?’
라는 의심이 든다. 그럴 때면 수시로 경로를 확인하며 방향성을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맞게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자신을 믿고 성큼성큼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는 법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