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매매 성사가 오후쯤 이뤄진다
아들이 한밤중에 카톡을 보냈는데 정오쯤 깨워달라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12시 넘을 때까지 늘어지게 자느라 녀석을 깨우지 못했다. 오히려 녀석이 시간 맞춰 잘 일어났는지 침대에서 뜸을 들이다가 나를 깨우러 왔다. 녀석은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고 집을 나갔다. 좋을 때다. 크리스마스라고 전체적으로 들떠 있는 분위기에서 갈 데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다면 얼마나 울적한 일인가.
1910년대 작가 양건식의 <슬픈 모순>은 생활을 갖지 못한 젊은이의 무기력함을 다룬 작품이다. 젊은이는 생활의 압박과 이상 사이에서 오는 갈등으로 거리를 배회한다. 꿈자리가 사나웠던 주인공은 그 불길함을 몰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식전 댓바람부터 담배 연기를 날리며 아침 점심을 굶다시피 하고 집을 나선다. 식구 중에 마음을 나눌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 사회 비판이 약한 스스로가 불만인 것, 생활의 무의미함 등으로 갑갑증 느끼던 청춘은 집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한다. 하지만 목적지 없는 외출이었으니 딱히 갈 데가 없다. 거리에서 배회하다가 겨우 만날 만한 친구를 찾아서지만 친구 또한 바쁜 경황이라 길 위에서 얼굴만 보고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답답하여 밖을 나섰는데 그 답답함을 풀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정말 슬픈 일이다. 목적지 없이 배회하다가 가는 데마다 목격하게 되는 게 자신을 향한 조소라면 울분으로 가득하리라. 자존감은 한없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모두 바삐 제 갈 길을 가는데 자신만이 갈 데가 없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고독할 것인가. 그러니 더욱 타인의 시선에 갇혀 스스로를 낙오자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다. 100년 전의 청춘이 지금의 청춘들과 별로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들 녀석이 엄마 혼자 두고 놀러 나가는 것이 섭섭했다가도 들뜬 기분으로 현관문을 나서는 걸 즐겁게 받아들인다. 갈 데가 있는 청춘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며칠 전 집에 왔던 딸아이는 크리스마스카드를 주고 갔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열어보라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오후에 딸이 주고 간 카드를 읽었다. 딸은 잔정이 많아서 이런 기념일을 잘 챙긴다. 그 점은 꼭 제 아빠를 닮았다. 남편은 때가 되면 손 글씨로 편지를 쓰거나 카드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런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꼭 케이크를 사 왔다.가족들과 식탁에 앉아 케이크를 먹으며 담소를 즐기는 것을 좋아했다. 크리스마스에 집에 오지 못한다고 미리 케이크를 사 왔던 딸은 이렇게 카드까지 준비한 것이다.
엄마! 메리크리스마스에요. 2024년에는 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보여드릴게요!! 항상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래 딸아! 메리크리스마스하렴! 엄마도 새해에는 더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보이며 착한 엄마가 되도록 노력할게!!
나는 딸에게 5만원을 송금했다. 따뜻한 크리스마스가 되도록 마음써 준 것이 고마워서. 제 남편이랑 저녁으로 치킨이라도 시켜 먹으며 오붓한 시간을 가지라고. 아픔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조금은 편안해지기를 기원해본다. 신의 축복이 깃들기를.(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