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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의 이방인

by 인상파

묘지의 이방인


태풍 무이파 때문에 세상이 뒤숭숭하다. 남쪽 지방의 폭우와 초강풍이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 놓았다. 천지개벽. 한 번쯤 세상이 뒤집힌다면, 차라리 자연의 힘에 의해 뒤집혔으면 좋겠다. 올해 날씨는 참으로 유별났다. 당신이 병상에 누워 있을 때에도 자연은 자주 수상한 낌새를 내비쳤는데, 당신이 가고 난 후에도 그 기운은 계속되고 있다.


오랜만에 당신을 뵈러 갔다. 전과는 달리 조금 늦게 도착했다. 오전 열한 시쯤 그곳에서 화장터를 떠나온 유골함 하나를 만났다. 당신이 계신 3방 납골함이 다 차서, 다음 라인의 납골함에 모셔야 했다. 세상을 떠난 이가 한 줌 재로 변해 이곳에 몸을 뉘러 찾아든 것이겠지.


그런데 유골함을 죽음의 집에 들이지도 못한 듯, 검은 상복의 젊은 여자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토했다. “못 보낸다, 못 보낸다.” 끊어질 듯 애처로운 통곡이 사방에 퍼졌다. 사별은 누구에게나 억장이 무너지는 경험일 것이다. 그 소리를 듣자니 제 창자까지 다 끊어지려는 듯했다. 그 울음소리에 기대어 저 역시 당신 앞에서 한동안 흐느끼다 돌아섰다.


일요일이라 공동묘지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 초록으로 뒤덮인 무덤과 납골당이 내뿜는 기이한 열기에 압도되어, 사람과 자동차가 다 이물스러워 보였다. 살아 있는 저 역시 이곳의 이물감에서 언제 벗어날지는 모르지만, 언젠가는 비세속적인 흐름을 타야 할 때가 오겠지. 공원묘지는 망자에게 속한 공간이라, 죽지 못한 자들이 더 이방인 같았다.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도 무기력한 시간이 이어진다. 이렇게 늘어진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데, 당신이 이런 내 모습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 힘을 내야지 힘을 내야지 다짐하면서도 갈수록 미궁 속을 헤매는 듯하다. 당신의 뜻을 잘 알면서도 왜 이리 울적한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건지. 날씨 탓만은 아니겠지만, 날씨가 쾌청하다면 제 우울한 기분도 조금은 가시리라 믿고 싶다.


집착인지 병적인지, 종일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한 채 같은 페이지를 몇 번이고 읽고 또 읽다 병든 닭처럼 시들시들 졸았다. 그러다 졸음이 가시면 멍하니 당신이 꽂아놓은 책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를 지켜보던 아들 녀석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엄마, 뭐해?”


“엄마, 무슨 생각해?”


“엄마, 어디 아파?”


“응, 엄마 그냥 앉아서 쉬고 있어.”


그래요, 저는 지금 쉬고 있는 중입니다. 당신을 떠나보낸 일이 너무 힘들어서, 조금 쉬었다가 힘을 내 보려고요. 그러는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요?(당신이 떠나고 30일 며칠 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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