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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할아버지 04

코끼리 할아버지

by 인상파

코끼리 할아버지, 로랑스 부르기뇽, 길벗어린이


코끼리 할아버지


코: 코 고는 소리도 잠잠

끼: 끼니때 식음 전폐

리: 리본 같은 안경 코에 걸고

할: 할 수 있는 건 묵상

아: 아버지도 어머니도 간 길

버: 버얼써 친구들도 떠난 길

지: 지는 해 조용히 눈을 감아요


코끼리 할아버지와의 이별, 그 담담하고 따뜻한 배웅

저는 이 그림책을 처음엔 <잘가요, 코끼리 할아버지>라는 제목으로 만났고, 뒤이어 출판사를 달리한 <코끼리 할아버지>로 다시 읽었습니다. 두 책은 내용상 전혀 차이가 없었지만, 같은 이야기를 다른 이름으로 접하면서 ‘잘 가요’라는 인사 한마디에 담긴 이별의 온기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그림책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죽음이란 무엇인지, 늙음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그리고 저쪽 세상으로 건너가기 좋은 때는 언제인지를.


안경을 걸친 코끼리 할아버지의 모습에는 늙음의 기운이 묻어납니다. 언젠가 맞게 될 이별이 조용히 예고된 듯한 인상이지요. 어린 생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코끼리 할아버지의 모습을 담담히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슬픔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과 마음결 안에 ‘감사’라는 정서가 깊이 스며 있습니다. 함께한 시간이 서로를 키웠고, 그 시간이 있었기에 이별조차도 고맙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림책은 죽음을 ‘끝’이 아닌 ‘전환’으로, 슬픔만이 아닌 ‘잉태의 시간’으로 바라보게 합니다. 죽어야 새로운 생명이 호명되는 것이고, 죽어야 다른 존재가 살아갈 자리가 생기는 것이지요. 죽음은 남겨진 자의 삶에서 무언가를 앗아가는 동시에 그 잃은 자리에 새살을 틔우는 힘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코끼리 할아버지는 늙음과 죽음을 비극적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연스러운 삶의 순환 속에서 그 의미를 되묻습니다. 이별은 고통스럽지만, 그 이별조차도 살아 있음의 징표이며, 또 다른 삶을 부르는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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