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8.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by 인상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울프 닐손 글, 에바 에릭손 그림, 임정희 번역, 시공주니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


세: 세상과 작별을 고한다는 건

상: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지만

에: 에곤 쉴레의 그림처럼

서: 서럽도록 슬픔과 고통이 밀려오고

가: 가문 대지를 적시는 눈물자국

장: 장송곡의 선율은 저승의 문을 열 것이니

멋: 멋모르고 좇아오는 그대를 돌아보며

진: 진달래 같은 마음을 부여잡았는데

장: 장미 가시의 아린 바람으로 콕콕

례: 예쁜 세상 마저 누리고 오라고

식: 식은 눈물 말리며 총총히 보냈네


죽음은 수천 년 동안 계속된다네


아주 애정하는 그림책 중 하나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은 상장(喪章)을 닮은 검은 책등과 ‘멋진’이라는 수식어가 만나 죽음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밝고 경쾌하게 그려냅니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죽음이라니! 하며 놀랄 필요는 없겠습니다. 무료한 아이들은 죽은 벌 한 마리를 발견하고 눈이 번쩍 뜨였지요. 무덤을 만들며 놀면 재미있었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시작된 작은 의식은 점차 확장되어 들판을 누비며 죽은 동물을 찾아 무덤을 만들고 삽과 나무 상자, 이름표까지 갖춘 장례 놀이로 발전하게 됩니다. 죽음이 무섭고 사체를 만지지 못하는 주인공 아이는 대신 추모시를 짓습니다. “죽음은 수천 년 동안 계속된다네. / 죽으면 아플까? / 외로울까? 무서울까?” 시는 죽음을 향한 아이의 두려움과 상상, 그리고 애틋함이 절절히 배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장례 놀이는 점점 정교해지고, 아이들은 장례 회사를 차려 돈을 받고 동물들의 죽음을 관리하기도 합니다. 묻고 울고 추모시를 낭독하는 역할까지 분담하면서요. 그러나 생기가 넘치던 한 마리 새가 눈앞에서 죽는 장면은 놀이와 죽음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순간이 됩니다. 아이들은 죽음이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이며 슬픔이 따라오는 실존의 경험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감각하게 되지요. 진짜 ‘죽음’을 체험한 그들은 마침내 장례 놀이를 멈추며 그 경쾌했던 리듬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그림책의 아이들을 보고 이상(李箱)의 수필 <권태>의 시골 아이들이 벌이는 오줌 멀리 싸기 시합을 떠올렸습니다. 어른에게는 권태로 보이는 장면도 아이들에겐 무료함을 이겨내는 창의적 놀이이지요. 그림책 아이들 또한 죽음을 통해 놀고, 놀이를 통해 죽음을 배웁니다. 죽은 동물을 나르는 세 아이의 얼굴에 깃든 장난기와 진지함, 그리고 착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이 어떤 심정일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어릴 적 죽은 개구리를 묻으며 장례를 흉내 내던 제 기억과도 겹칩니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장례식>은 그처럼 유년의 쓸쓸하고도 해맑았던 감정들을 환기시키며 죽음을 처음 마주하는 아이들의 맑고 복잡한 마음을 따뜻하게 포착해냅니다.

keyword
이전 27화57. 프레드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