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면평가 그 공평성의 실체적 진실
조선왕조에만 오면 다 개수작이 된다!
”고과가 공정하지 못해요!“
”윗사람은 평가 안 받나요?“
”일방적 하향식 평가는 너무 올드한 거 아닌가요?“
”다면평가 왜 안 하죠? 공평하게 합시다!“
고과는 늘 공정하지 않다. 위에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하향식 평가는 늘 불평불만 투성이였다. 다면평가라는 게 있다. 360도 평가로도 불린다. 사실 다면평가의 이론적 배경은 매우 오래되었다. 유독 우리나라에 다면평가 도입은 늦은 감이 있다. 현재도 다면평가를 안 하는 곳이 더 많다.
하향식 평가는 상사가 알아서 A, B, C를 때려버린다. 보통 팀장 최측근이 A를 독식한다. 성과와는 상관없다. 팀장의 힘이 강해진다. 다들 눈치만 본다. 결과는 당연히 공정하지 못하다. 그래서 불만이 생긴다.
다면평가에 대한 목소리는 노비들 사이에서 이미 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 공정과 기준, 눈높이를 모두 맞추기란 쉽지 않다. 다만 오차를 최대한 낮춰줄 수는 있다. 한 명의 상사에게서 오는 오류와 편견을 불식시킨다. 부하도 상사를 평가한다. 동료도 동료를 평가한다. 이로서 오차가 조정되는 원리다.
상사에게 찍혀 C를 받아도, 동료가 A를 준다. 그럼 B가 된다. HR은 그 연결고리를 들여다 보고 부서 내 문제를 간파한다. 업무를 조정하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게 다면평가의 본 취지다. 어때 좋지?
우리나라에 다면평가의 도입이 늦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회사가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해서다. 하향식으로 빵빵 딜을 꽂아대도 찍소리 못한다. 노비들 인권이 워낙 후진 노동 강국이니까.
또 한 가지 이유는 돈과 시간이다. 하향식 평가 한번 진행해도 2개월은 후딱 지나간다. 여기에 돈과 시간을 더 들여 다면평가를 한다? 와.. 이거 한 6개월 걸리겠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돼? 이거 해서 뭐가 그렇게 달라지지? HR 일만 많아지는데. 이런 사고가 팽배했다. 기득권을 쥐고 있는 HR은 자신들이 더 피곤하고 불리할 법한 다면평가를 하지 않았다. 회사는 그렇게 최소 10~20년을 외면해 왔던 것이다.
IT 붐을 타고 외형상 어메리칸 제국을 따라하는 회사들이 늘어났다. 다면평가 제도는 그 훈풍을 타고 여러 회사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도입했다.
그래서 좋아졌을까? 공정해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오피서들이 체감할 만한 고과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날 수가 없다.
이론대로면 평가자 오차가 보정되어야 하는데 왜 그대로일까? 현존하는 다면평가의 지분 때문이다. 1/n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분이 공정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지분이 공평하게 할당되면 팀장의 입지가 급격히 떨어진다. 팀장의 장악력이 떨어지면 회사는 노비 지배에 애를 먹게 된다.
그래서 상사 평가 이외는 지분을 현격하게 낮추거나 참고용일 뿐이다. 그럼 다면평가는 어떤 의미일까? 말 그대로 1년 인기투표다. 누가 우리 부서 아이돌인지 판가름하는 척도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평가 시즌이 도래하면 갑자기 사람들이 착해진다. 인사가 밝아진다. 웃고 다닌다. 업무협조도 제법 잘해준다. 이 기간 팀장은 화를 내지 않는다. 아 몰라 니가 알아서 해 이런 것도 없다. 회식 때면 자처해서 고기를 굽는다. 대체 이것들 다 왜 이러는 거지?
처음 다면평가를 하면 동료 평가를 의식해서 오피서들은 나름의 전략을 세운다. 서로 품앗이 좀 해 보려고 내게 배정되는 동료의 평을 잘 써 준다. 그리고 결과가 뜨면 그것이 실수였음을 깨닫는다. 내 평가에 똥 묻은 댓글을 보게 된다. 그렇다. 이 배신자들!!
서로 평가를 잘 줄 거라는 기대를 하면 안 된다. 맞다. 한 명이라도 까내려야 내가 올라가는 것이다. 상사의 평가가 대충 예상된다면 뒤집기 찬스는 동료평가다. 그래서 앞에서는 서로 웃으며 다 같이 누가 걸리든 잘 주자! 이래놓고 뒤에서는 악플을 달아재끼는 것이다. 누가 평가를 했는지는 공개되지 않는다.
사람은 익명성에 기댈 때 본심이 나오는 법이다. 평가결과가 뜨고 나면 분위기가 싸해진다. 뒤로는 누가 악플 달았는지 열심히 추리해보고 있다. 그래서 다면평가를 2~3년 해보면 동료평가의 디폴트는 바뀐다. ‘일단 까내리고 보자!‘가 기본 전략이 된다.
그럼 팀장은 어떨까? 조선 다이너스티의 다면평가는 어차피 팀장 평가 지분이 제일 크다. 이들은 괜찮을까? 아니다. 일단 팀장은 아래로 다 적이다. 무조건 눈치를 보게 되어 있다.
앞에서는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소신껏 하는 거지 뭐!“ 이렇게 말한다. 근데 거짓말이다. 다면평가로 제일 떠는 사람은 팀장이다. 기본적으로 다면평가 시즌에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착해진다. 그중 누가 제일 착해지는지 유심히 보라.
그럼 팀원들이 팀장을 나쁘게 평가하면 팀장 연봉이 떨어지나? 아니다. 팀장부터는 평가보다는 평판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아닌 척하면서도 가장 많은 눈치를 보는 것이다.
당초 우려처럼 다면평가하는데 비용과 시간이 그만큼 많이 들었나? 아니다. 얼마 차이 안 난다. 약간의 절차와 시간 보정만이 필요할 뿐이다. 시험 문제를 푸는 데 있어, 아는 문제가 나오면 1분 컷이다. 애매한 문제가 나와도 5분 컷이다. 모르는 문제는 1분이든 1시간이든 찍게 되어 있다. 평가란 그런 것이다. 1주일 주고 평가하나, 1개월 주고 평가하나 최소한의 물리적 시간만 보장되면 답안지는 똑같다.
그럼 다면평가를 하며 결국 달라진 게 없는데, 왜 해 본 회사들은 계속 고수하는 것일까? 그 비밀이 바로 여기 있다.
조선왕조의 다면평가는 당초 우려와는 달랐다. 해 보니 회사에 개꿀이었던 것이다. 그걸 하면서 배운 거다. 일반적으로 팀장들은 만만한 캐릭터가 아무도 없다. HR에서 약점을 찾으려 해도 쉽지 않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다면평가 한큐로 노비들이 팀장들의 약점을 알아서 일러바친다. 덕분에 필요할 때 관리자의 리더십을 문제 삼아 관리자 물갈이가 쉬워졌다. 매번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수집하며 한계를 겪어왔다. 다면평가를 해 보니 모든 캐릭터의 정보가 손쉽게 들어온다.
심지어 평가 내용을 보며 누가 누구와 친한지, 팀장 오른팔 왼팔은 누구인지까지도 짐작이 가능해졌다. 동료평가를 해보니 이제는 자기들끼리 서로 경계하고 못 믿는 분위기가 된다. 그래. 이로서 저들은 뭉치지 못한다. 한편 노비들은 이걸 모른 채 바뀌는 게 없네 그냥 인기투표네 하고 만다.
그러나 회사에게 다면평가는 이렇게나 유용한 것이다. 바뀌는 게 없어도 노비들에게 공정한 평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체제 선전에도 탁월하다.
이 만한 게 어디 있는가? MZ들은 공평한 제도를 원한다며? 트렌드에도 딱이다. 안 할 이유가 없다.
느꼈는가? 다면평가는 노비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별로 없다. 맞다. 그냥 연간 인기투표다. 그러나 회사는 인기투표나 하려고 제도를 유지하지 않는다. 다 이유가 있다. 그 이유는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정보수집 수단. 그게 바로 다면평가다.
누가 뭘 썼는지 어떻게 아냐구? 그건 노비들한테만 공개 안 하는 거다. HR은 다 안다. 누가 누구에게 어떤 말 썼는지. 그리고 담당 임원도 안다. 팀장 이하만 모르게 하는 거다.
즉 반대로 그게 무슨 의미일까? 피지배계층은 서로 블라인드 시켜 의심하고 물어뜯게 만드는 것이다. 지배계층은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피지배계층의 관계와 그들의 행동을 보고 즐기는 것이다. 임원은 왜 다면평가 안 하냐구? 지배계층이잖아! 만약 임원 다면평가 하면 다 짐 싸야 될 거다. 그래서 애초에 대상자가 아니다. 불리한 건 원래 지배계층은 제외다.
그럼 동료평가를 참고해서 업무나 팀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어떻게 되는 거지? 그건 이론일 뿐, 실전에는 그런 거 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HR이 일이 많아지니까. 조선의 다면평가가 날림으로 진행되는 이유는 본 취지를 건너뛰기 때문이다. 굳이 회사에 필요하지도 않다. 말했지 않은가? 목적은 정보수집이라고. 목적만 달성되면 되는 거다.
다면평가 전략이랍시고 동료평가에서 남 까내려야 뒤집기가 가능하다는 전략을 설파하는 이들이 있다. 정답을 말해 주겠다. 얕은 생각이다. 데이터가 쌓이면 그들의 정보도 쌓인다. ‘아 얘는 남 디스만 하는구나.’, ‘다 까내리는 거 보니 동료관계가 별로구나.’
그 사람을 좋게 볼리 만무하다. 오히려 인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료평가는 손해 본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적당히 잘 써주던가 아님 그냥 소신껏 쓰는 게 더 유리하다. 얄팍하게 혼자 살려고 하다 먼저 죽는다. 그런 꾸러기 짓은 초짜나 하는 거다.
다면평가는 아직 하지 않는 곳이 더 많다. 공정한 고과를 못 받아 상처받은 수많은 오피서들이 오늘도 다면평가 하자고 부르짖는다.
하나만 알려주마. 아직 다면평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회사가 각성하지 못해서다. 아직 안심하고 다닐만하다는 의미다. 감사하고 다녀라! 자꾸 자극해서 회사를 각성시키지 말자. 다면평가 역시도 전혀 공정하지 않다. 오피서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묘한 내적 갈등을 부추키는 도구일 뿐이다.
가만있어도 어차피 추세는 다면평가 확대로 가고 있다. 다만 어떤 좋은 제도라도 조선왕조에만 들어오면 기득권에게 유리하게 변질되는 법이다. 다면평가는 회사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그러니! 큰 의미 부여하지 말고 대충 잘 써주며 같이 잘 살자!!
P.S. 뭐? 협동심 결여? 나 맥인 애 누구냐? 다 안다. 손 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