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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글 Sep 27. 2024

내 ID는 연대공대맘

 아직도 꿈만 같다. 

 내 인생 19년 숙원사업을, 드디어 그 대학을, 파란빛 찬란하고 낭창한 그 학교에, 드디어 합격한 것이다.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내 사랑, 나의 아들이. 



 오늘 아침, 핸드폰을 들고서 방문 밖으로 뛰쳐 나오던 아들은 내 코앞에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노안이 온지는 이미 한참인지라 코앞의 글자는 뿌옇게만 보여 당최 얘가 왜 이러나 싶던 중, 파란색 로고가 어렴풋 눈에 들어오자 가슴이 급격히 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설마 싶어 아들을 쳐다보니 이미 그 아이의 가슴은 방망이질이 쳐지다 못해 후두려 맞은 듯 했다. 그러다 아들은 코평수를 넓히며 기대에 찬 눈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나 합격했어!"

 


 작년, 고3이었던 내 사랑스런 아들은 수시지원 3개의 학교에서 예상치 못하게 광속탈락하고, 정시지원으로 뒤늦게 눈을 돌리며 힘겹게 수능을 치뤘었다. 이 모든건 내가 입시전략을 잘못 짠 탓이란 죄책감에 하루이틀 밤잠을 설치던 중. 희망을 걸었던 정시지원마저 모두 미끄러지고 '대기번호'를 받아둔 상태였다. 

 제발 앞선 자리에 있는 똘똘한 애들이 후루룩 빠져주길 얼마나 기도했던가. 너희는 서울대 가고, 의대 가고, 더 좋은데 가렴. 새벽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주말예배 할 것없이 자애로우신 하느님 아버지 앞으로 가 두 손 지문 닳도록 싹싹 빌었던 어제들. 1년 재수 하면 그 돈이 얼마지, 계산기를 수십번 두드리던 시간들. 

 그런데 합격이라고? 드디어? 내 기도가 먹힌건가? 재수학원에 돈 안 갖다바쳐도 되는거야?


 내 사랑하는 아들은 평소 장착 중이던 동태눈에서 벗어나 초롱초롱 빛나는 눈으로 고개 끄덕이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어떤 일을 하든 꼼꼼하게 진행하는 스타일이기에, 아드님 늦은 아침상 준비하느라 티셔츠 넥라인에 살포시 걸쳐놓은 돋보기를 꺼내쓰고 다시 핸드폰 작은 화면을 쳐다보았다. 평소 사용하는 내 핸드폰의 글씨보다 촘촘하게 쓰여져있는 글씨에 눈이 시려왔지만, 이내 초점이 맞춰지고 그 작은 화면을 눈에 무사히 담을 수 있었다.

합격확인서

성명 : 김하준
생년월일 : 2005.03.15
전형 : 일반전형(일반계열)
모집단위 : 컴퓨터과학과

위 학생이 연세대학교 2024년학년도 정시모집 컴퓨터과학과에 지원하여 합격하였음을 확인합니다.


진짜다, 진짜 합격이다. 

그간 내가 아들 하준의 학원을 밤낮없이 라이딩했던 시간들, 매 끼니 건강식으로 챙겨주던 식사들, 잠결에도 외다시피 했던 주요대학 입시 요강들까지. 주마등처럼 나의 애잔한 과거들이 스쳐 지나갔다. 

 "거 봐, 내가 너 된다고 했지. 너 정시는 무조건 된다니까. 애초에 수시에 발을 담갔던 것도 문제였어. 그것만 아니었으면 애초에 정시로 서울대도 노렸을법한데. 아냐, 그래도 뭐. 마지막에 엄마가 소개해 준 수학과외가 진짜 한 수였긴 해, 그치? 그때 수학 등급 못 올렸으면 합격 못 했을 거 아냐. 과외샘한테 전화드려야겠다. 아이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기도가 이렇게 먹히네." 

 반짝반짝 빛나던 하준의 눈이 왜인지 다시 동태눈이 되는 듯 했지만, 그냥 동태가 아닌 연대 동태니 잔소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참으로 행복한 하루다. 

 합격확인서 캡쳐본을 메신저 채팅방 여기저기 흩뿌리며 축하를 받았다. 언니 대단해요, 자식농사 성공했네, 너무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라는 말은 나를 하늘로 붕붕 띄워주었다. '부럽다'라는 말은 누가 만든걸까.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단어다. 

 동태눈 아들 역시 합격에 신이 났는지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다며 아침도 먹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수능을 치른 후 오늘의 합격발표까지가 있기 전, 히키코모리처럼 집에 쩍 들러붙어있던 아들이 왠일로 바깥으로 나간다고 하니 내심 그리 반가울 수 없었다. 실로 오랜만에 자유의 시간을 되찾은 듯 했다.

 대충 집을 치운 뒤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한가로운 오전시간, 거실 테이블에 앉아 아들의 대입 고배의 충격으로 한동안 잠재워두었던 노트북을 켜고 참새 방앗간 드나들듯 했던 동네 맘카페에 접속했다.

 "서울대24학번맘"

 역시 서울대를 못 간건 아쉽긴 하지만, 수험생활 막판에 그 고생을 한 걸 떠올리면 이 마저도 감지덕지 아닌가 싶다. 어쨋든 SKY지 않나. SKY이니까 뭐 S랑 K랑 Y는 거의 동급이란 뜻이겠지. 물론 K보단 Y가 더 낫긴 하겠지만.

 내 프로필을 클릭하고 별명란을 채우고 있던 "서울대24학번맘"을 지워 공란으로 만들었다. 괜시리 한 자 한 자 천천히, 신중히, 음미하며 새 별명을 타이핑하며 집어넣었다. 

 "연대공대맘"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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