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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융글 Oct 04. 2024

질투는 나의 힘

“세 잔 하셔서 총 22,500원입니다.”

식사값인지 커피값인지 모를 꽤 값나가는 금액을 지불하면서도 내 입가에 떠있는 미소는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오늘 같은 날을 위해 비상금을 아껴둔 양 호쾌하게 카페 종업원에게 개인카드를 건넸다.

나는 달랑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시킨 것치고는 꽤나 큰 지불이었지만, 놀라플랫이니 지브랄타니 지들도 처음 먹어보는 듯한 음료를 시킨 일행의 주문이 조금 거슬렸지만, 오늘은 하준이 대학에 합격한 날이니까. 파란색 커피병 모양 카페의 로고가 마치 우리 아들 대학교 로고처럼 푸르르게 빛나보여 기분 좋으니까. 커피값 2만 원쯤이야.


 아들 하준의 합격소식을 메신저방 여기저기 알리며 가장 들떴던 방은 단연 하준의 친구 엄마들이 모인 단체방이었다. 하준이 초등학교 1학년 시절 같은 반 친구들 중 마음 맞는 엄마들과 시작한 모임이었는데, 중간중간 자녀교육에 실패한 엄마들이 단톡방을 하나둘 떠나고 지금은 나를 포함 단 다섯만이 남았다.



 “하준이는 잘 될 줄 알았어. 축하해 하준엄마. 너무 부럽다.“

 내 메시지에 제일 먼저 회신한건 우리 중 유일한 딸아이의 엄마, 다희엄마였다. 다희는 어릴 때부터 우리 모임의 아들들보다 항상 무언가가 빨랐다. 공부도, 운동도, 뭘 했다 하면 항상 앞서나갔던 다희. 난 다희 엄마가 부러 자기만 딸아이 엄마라는 위치를 즐기고자 굳이 우리 모임에서 안 나가고 버텼던 걸 안다. 다들 “다희 엄마는 좋겠다, 다희는 알아서 다 잘하잖아.”라고 말하면 짐짓 “아유 아니야, 여자애니까 그냥 좀 빠른 거지.”라면서 겸손을 떨곤 했는데, 그 속내가 훤히 보여 가끔, 아니 자주 꼴같잖아 보일 때가 있었다.

 뭐든 빨랐던 다희는 결국 대입도 제일 먼저 성공했다. 우리나라 제일로 친다는 여자대학교의 공대에 진작에 수시합격했던 것이다.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어머 축하해 다희엄마” 문자 보내면서도 배알이 꼴리는 걸 꾹 참느라 힘들었다.

 그런 다희엄마가 내 아들 하준의 합격소식 메시지에 칼같이 답변한 건 역시 가진 자의 여유인가 싶기도 했다. 근데 어쩌나, 같은 공대라도 우리 하준이 학교가 더 좋은 것 같은데. 그리고 여자애가 공대 나오는 거랑 남자애가 공대 나오는 건 다르지 않나. 그러게 내가 그냥 교대 넣으라고 할 때 교대 넣는 게 나중을 위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여자라면 결혼하고 애 낳고 나서도 계속 일하기 편한 교대나 간호대가 최고라니까.


“어머, 정말? 하준엄마 그렇게 속이 말이 아니더니 너무 잘됐다! 우리 현우랑 고연전에서 만나겠네 ㅋㅋㅋㅋ 벌써 재밌겠다, 그렇지? “

 두 번째로 반응한 건 현우엄마. 속내를 철저히 숨기며 사회생활하는 다희엄마랑은 다르게 현우엄마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아니 숨길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굳이 내 속이 말이 아니었다는 과거를 지금 왜 언급하는 건가. 위하는 척하면서 놀리는 듯한 말투가 딱 현우엄마답다 싶다. 고작 고대에 합격해 놓고 자랑질은 또 얼마나 했던가. 심지어 문과였던 현우가 합격한 과는 사회학과였다지. 거기 졸업해서 어딜 취업하려나 싶다. 전형적인 대학 간판만 따라간, 답 없는 케이스랄까. 그래놓고 고연전 어쩌고 하는 꼴이 어찌나 우스운지 코웃음이 났다. 하지만 현우엄마의 배배 꼬인 그 답변 문자에서 느껴지는 극심한 질투에 나는 약간의 희열마저 느꼈다.


“어머 하준이 너무 고생했다! 하준이는 대학 가서도 공부 잘하고 멋진 대학생이 될 것 같아! 부러워 하준엄마!“

 자기 아들 걱정할 시간에 남의 아들 기특해하는 속없는 이 여자는 동호엄마다. 고등학교 1학년때 갑자기 잘하던 공부를 그만두고 요리를 배워보고 싶다는 동호의 정신 나간 계획을 그래 니 인생 네 거니까,라는 세상 무책임한 대응으로 아들의 인생을 망치고 있는 답 없는 동호엄마다. 지방 2년제 대학에 아들을 보낼 예정인 엄마치고 세상 해맑은 여자. 그런 동호 엄마에게는 일말의 시샘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애잔하기만 하다. 아니, 너무 애 교육에 방관하는 건 아닌지 약간 화가 나기도 한다.

 애들 어릴 적부터 유독 동호는 자유로운 영혼처럼 굴었기에 눈엣 가시이기도했다. 괜히 하준이 물들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영혼이 자유로운 것치곤 애가 나쁜 구석은 없었기에 굳이 교우관계를 간섭하진 않았고 동호엄마 역시 속은 없었지만 둥글둥글 우리 사이에서도 윤활유 역을 해줬기에 10년 넘는 시간 동안 적당히 가까운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아고, 이 험한 세상 어찌 살아가려나 불쌍하고 속없는 동호엄마.


 단톡방 멤버는 다섯인데, 내 합격소식 메시지 옆에 붙어있던 숫자 “4”는 3,2,1 점점 줄어들어 다 사라졌는데, 답신은 3명에게만 와 있다..

 답이 없는 건, 영현이 엄마일 테다.


 아이들 중에 가장 공부를 잘했던 영현이. 우리 아이들 중 유일하게 자사고를 갔던 영현이. 어릴 때부터 영재학교를 다녔던 영현이. 내 아들 하준이를 한없이 작아 보이게 했던 영현이.

 당연히 서울대를 갈 줄 알았던 영현이는 3학년 2학기 시작을 앞두고 돌연 자퇴를 선언했다. 그 좋은 학교를, 하준이는 원서 넣을 엄두도 못 냈던 학교를, 전국의 똑똑이들만 모인다는 그 학교를, 제 발로 나간다니 어찌나 놀랐는지 모른다.

 영현이 엄마의 속이 얼마나 말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내 일이라고 생각해 보면 악몽도 그런 악몽이 없다. 영현의 자퇴사실을 조심히 알리던 영현이의 엄마는 그 후에 단톡방에서 조금씩 말을 잃더니 이젠 거의 메시지는 보내지 않고 유령처럼 단톡방에 남아있다.

 그래도 합격 축하메시지 하나 정도는 보내줄 수 있지 않나 싶어 조금은 괘씸하다. 여태 잘난 영현이 덕에 축하는 쭉 자기만 받아놓고서 돌려주지 않는 심보가 고약하다.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내가 제일 성공하지 않았나 싶다. 요리하는 불쌍한 동호 엄마는 말할 것도 없고, 공대 간 여자애 다희엄마보다, 인문대 간 현우엄마보다, 역시 연대공대가 최고다. 자퇴한 영현이 엄마는 말해 무엇하리.


 괴상한 이름의 커피들을 홀짝거리며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여자 둘은 다희엄마랑 현우엄마.

 “하준이 연대 문 닫고 들어갔네. 원래 문 닫고 들어가는 게 제일로 똑똑한 거라잖아~호호호.”

 속이 아주 꽈배기보다 더 꼬인 듯 말하는 현우 엄마의 말에 내 입꼬리는 한없이 올라간다.

 그래, 맘껏 질투해라. 더, 더. 그게 날 살리니까. 그게 내가 사는 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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