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보다 신경 쓴 옷매무새에 어딘가 달뜬 듯한 표정,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움직임에 어떻게든 어색함을 없애고자 핸드폰만 고개 숙이고 만지작대는 사람들이 있다. 아는 사람이라도 눈에 띄면 당장에 달려가 몇십 년 지기 친구인 양 목소리 높여 떠들어 대는 이곳은 새 학기가 시작된지 얼마 안 되어 열리는 학교의 학부모총회. 학부모총회라지만 실상은 학모총회라고 해야 될 만큼 수컷의 냄새는 조금도 풍기지 않는 이 곳은 5년째 매년 찾아도 처음과 같이 어색하기만 했다. 하준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기에 별로 특별할 것 없는 학부모총회를 올해는 빼먹을까 싶다가 그래도 담임선생님한테 얼굴도장이라도 찍고는 와야지 싶어 오후 늦은 시간 학교를 방문한 것이었다.
드라이가 잘 안 먹힌 머리가 영 늙어 보여 다시 머리를 감고 말리는 바람에 총회의 시작 시간보다 30분 늦게 도착했다. 어차피 강당에서 열리는 전체총회는 관심 없고, 이후 각 반으로 흩어져 담임선생님과 간단히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만 참석하려 했던 차였기에 꽉 닫힌 강당문을 열고 낯선 시선 받으며 비집고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마침 나와 같은 생각인 엄마들이 강당 문 밖에 여럿이 서 있기에 아는 얼굴이라도 없나 훑는데 비싼 가방들을 브랜드별로 들고 있는 엄마들 사이에서 내가 아는 얼굴은 없었다. 어색한 건 질색인데 싶던 중 누군가 내 어깨를 쳤다.
"하준엄마! 지금 온 거야?"
현우엄마였다. 평소 같았으면 그다지 반갑지는 않을 그 얼굴이 은인처럼 느껴졌다.
"어머 현우엄마! 언제 왔어?"
현우엄마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데, 현우 엄마 옆에 세상 잘못된 공간에 와 있다는 얼굴의 한 여자가 울고 있는 건지 웃고 있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서 있었다. 현우엄마 옆에 딱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녀의 일행인 듯했다. 눈짓 두어 번으로 옆의 여자가 누구인지 현우엄마에게 물었고, 현우엄마 역시 단박에 내 눈빛을 알아챈 뒤 대답했다.
"어, 인사해. 여기는 성재엄마. 왜 내가 말했잖아. 우리 현우가 3학년때까지 단짝 같은 걸 만든 적이 없는데, 4학년 때 드디어 영혼의 단짝을 만들었다고. 걔가 성재."
성재라는 이름이 왜인지 익숙했지만, 이 여자는 처음 보는 것 같아 그를 쳐다보며 인사했다.
"아, 그렇구나. 안녕하세요, 저는 하준이 엄마예요. 성재랑 같은 반이었던 적은 없나 봐요. 제가 처음 뵙는 것 같아서..."
나의 친절한 인사에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왼쪽 손목 위를 덮은 긴 소매를 올려 연신 스포츠시계를 체크하던 그 여자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답했다.
"아, 같은 반이었던 적이 있을 수도 있어요. 제가 이런 학부모 모임은 처음 와서요."
자식에 대한 무관심을 자랑스럽게도 내뱉는 그녀를 두고 현우엄마에게 슬쩍 눈짓했더니 현우엄마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이 그 무심한 여자는 나직이 내뱉었다.
"제가 일을 해서요."
일 하는 엄마들을 무조건 싫어한 건 아니었다. 단지 그 말투와 행동거지가 미세하게 내 신경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었다. 말이 그렇지 않은가. 제가 일을 해서요라니. 어디 일 안 하는 사람이 있나? 집안일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본인이 일을 한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일을 하지 않는 나와 선을 긋는 것 같은 그 태도도 가히 감정이 상했다. 누구는 시간이 남아돌아서 학교를 방문하듯이 말하는 그 태도와 본인은 바쁘다는 생색, 학교를 찾는 엄마들은 조금 극성맞은 것 같다는 숨은 뜻까지. 뭐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런 것들이 아주 미묘하게 느껴지는 발언이었다.
전체 총회가 끝나고 하준의 5학년 교실인 4반을 찾아갔다. 인상 좋은 중년의 여자 선생님이 웃으며 반겨준 교실에 입장하며 나 역시 세상 사람 좋은 미소로 선생님에게 화답했다. 내가 잘 보여야 우리 하준이도 잘 봐주시겠지.
하준의 엄마임을 알리는 나에게 선생님은 먼젓번보다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준이 어머님이시구나. 하준이 학교생활 너무 잘하고 있어요. 지난번 학급회장 선거에도 씩씩하게 나와서 친구들 재밌게 해 주고."
그 당시만도 나의 자랑거리였던 내 아들 하준은 우리 때로 치면 소위 반장선거인 학급회장 선거가 이루어지는 3학년 때부터 빼먹지 않고 출마하곤 했다. 3학년 때는 당당히 학급회장을 맡아와서 내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했다가, 4학년 때는 어쩐지 회장은 되지 못하고 부회장이 되었는데, 며칠 전 열린 5학년 학급회장 선거에서는 부회장조차 되지 못했다.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다.
학급회장 선거에 나가 감투 하나 얻지 못하고 그저 친구들을 재밌게 해 주었다는 하준이 그날만큼은 나의 자랑거리가 아니었다. 선생님의 인사도 왠지 비꼬는 투로 느껴졌는데, 마치 나에겐 '능력도 안되는데 선거에 나와서 웃음거리만 됐다'라고 들렸다. 젠장.
5학년 학부모총회라 그런지 교실에 모인 엄마는 열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어떤 엄마들이 왔나 인상이라도 볼까 교실을 두리번거리는데, 그 여자가 들어왔다. 스포츠시계의 그 여자. 하필 하준이랑 같은 반이었다니. 기분이 좋지는 않은 상태에서 시선 거두고 마침 선생님의 발표 시작선언에 맞춰 교실 앞 화면에 띄워진 PPT자료로 눈을 돌린 뒤 경청하는 척 고개 끄덕끄덕하며 최대한 선생님을 향해 호응했다. 선생님에게 보내는 나의 집중이 하준에 대한 애정으로 가닿길 바라며.
발표를 끝낸 선생님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저희 반... 학부모 대표를 뽑아야 되는데, 혹시 자원하실 분 계실까요? 보통 학급 회장 어머님이 반대표를 맡아주시긴 하는데, 저희 학급회장인 성재 어머님께서는 일정 소화가 조금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 주셔서... 다른 맡으실 분이 없다면 맡아주신다고는 하셨는데, 혹시나 해서... 자원하실 분이 계실까요?"
학급회장? 성재? 깜짝 놀라 오른쪽 뒤 대각선에 자리해 앉은 그 여자를 다시 쳐다보니 앉은자리에서 의자를 뒤로 빼며 일어나 말했다.
"안녕하세요, 성재엄마입니다. 제가 일 때문에 일정이 조금 바빠서 반대표를 맡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혹시 맡아주실 분 계시면 감사한 마음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은 열심히 지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연신 고개 숙이며 인사하는 그 여자에게 선생님은 손사래 치며 말했다.
"아니에요, 성재어머님. 죄송하실 필요까지는 없으세요."
내 잘난 아들의 반장 자리를 뺏은 애가 저 스포츠시계 여자의 아들이었다니. 게다가 뭐가 그리 바쁘다고 자랑스레 마지않는 제 아들이 가져온 대표 자리를 다른 엄마에게 맡기려 드는지, 기분 나빴던 첫인상만큼 불쾌한 감정이 일었다. 난처한 선생님과 선뜻 나서지 못하는 다른 엄마들 사이의 숨 막히는 기류에 손을 들고 보란 듯이 말했다.
"선생님, 제가 반대표 할게요.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뭐."
"뭔 대단한 일을 하길래?"
홀로 집을 향해 가는 현우엄마를 발견하고는 옳다구나 싶어 붙잡아 말 걸었다. 대화의 주제는 당연히 그 여자였다.
"별로 대단하지도 않아. 그냥 어디 카페 같은 데서 아르바이트하는 거 같던데?"
현우엄마의 대답에서 그 역시 호감의 감정을 느끼고 있지는 않음을 감지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대꾸했다.
"알바? 참 나, 난 또 뭐 어디 대단한 데라도 다니는 줄 알았네. 카페 사장도 아니고 알바? 어쩌다 그런 여자랑 친해져서 같이 학교까지 왔대 현우엄마는?"
"아니, 나도 별로 친하지도 않아. 애들끼리 워낙 친하게 지내다 보니까 연락할 일이 생기고 해서 그렇게 된 거지. 현우랑 성재가 학원을 같이 다니는데, 학원 끝나고 집에 가면 성재는 엄마 아빠가 아직 퇴근 전이니까 고 넉살 좋은 게 우리 집에 와서 저녁 몇 번 얻어먹고 그랬거든. 뭐 그러다가 연락도 하고 고맙다고 인사도 오고 그랬지 뭐. 근데 약간 그런 구석이 있어, 성재 엄마는 애보다는 자기 일을 더 중요시하는 거 같더라고. 어제도 성재 때문에 연락했다가 총회 가실 거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대. 근데 애가 학급회장도 됐다고 하길래 졸업 전에 한 번이라도 가보자 해서 같이 갔지. 바로 옆동에 살거든. 근데 그게 자기네 하준이랑 같은 반인 줄은 또 몰랐네."
"아니, 애 저녁도 안 챙겨주고 남의 집에서 밥 먹이면서 총회 한 번 안 가본 건 또 뭐가 그렇게 당당한 일이라고 말을 한대. 해봤자 겨우 최저시급 받으면서 알바나 하는 것 같은데. 자기는 기분 안 나빴어? 나만 기분 나쁜 거야?"
내 기세에 현우엄마는 아까보다는 조금 주저하듯이 말했다.
"아니 뭐... 그래도 성재가 애는 착해. 알잖아, 우리 현우는 내가 식탁 위에 반찬 열 개 차려놓으면 한 두 개만 겨우 손대는 거. 근데 성재 걔는 '어우 너무 맛있어요, 아줌마 손맛이 정말 좋으시네요.' 이러면서 없는 찬에도 밥을 두 공기는 뚝딱 한다니까. 입 짧은 현우 먹이다 이것저것 안 가리고 김치 하나도 야무지게 잘 먹는 애가 식탁에 있으니까 나도 나름대로 괜찮더라고. 그리고 말 몇 번 나눠봤는데 애가 진짜 괜찮아. 그래서 올해 학급회장 됐다길래 그럴만하다 싶기도 했거든. 아마 성재 엄마도 오늘 학부모총회 자리가 처음이니까 어색해서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해."
발을 슬쩍 빼며 학급 회장선거에서 떨어진 하준의 엄마인 내 심경은 무시한 채 성재를 추켜 올리는 현우엄마가 못마땅해 좀 더 과장해 소리높여 말했다.
"아니 현우엄마는 성격도 좋다. 우리 집 밥 축내는 남의 집 아들 이뻐 보이게. 애가 넉살이 좋은 것도 어른들 눈에야 그렇지, 속으로 얼마나 자기도 엄마 밥 먹고 싶을 거야. 아휴, 그런 애들이 속에서 아주 병이 들어서 나중에 사춘기라도 오면 마냥 엇나간다고. 아님 운 좋게 사춘기 지나간다고 해도 나중에 어른되면 다 돌아온다? 다 커가지고 오는 그 후폭풍들을 어떡할 거야. 뭐 대단한 일 하는 거면 말도 안 해. 무슨 어디 아르바이트나 하면서 애는 나 몰라라 하고, 학급 대표도 맡기 싫다고 하고. 애는 그럼 누가 키울 거야? 낳기만 하면 부모고, 엄마야? 키워야지. 학교에서 문제 있다고 하는 애들 보면 죄 그런 애들이더라."
목소리 높이던 그때, 그 여자가 우리 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겨울이 채 가시지 않은 조금은 차가운 바람에 햇빛만은 쨍하게도 내리쬐던 봄날의 학교 풍경 속에서 목소리 높이는 내 옆을 스쳐 지나가던 그 여자의 옆 얼굴이 지금 설거지대에서 외로움과 사투 중인 내 눈앞에 달걀 오믈렛을 집중해 만들고 있는 차가운 여자의 얼굴과 데칼코마니 작품이 반으로 접히듯 아주 정확히 겹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