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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Jan 20. 2024

행복을 그려요

두더지와의 만남


저는 어제 아이의 스티커를 사러 들어간 동네 문구점에서 검정 볼펜을 샀습니다. 점포정리 중인 곳이라 볼펜을 써볼 수 없어서 느낌적인 느낌으로 골랐죠. 요즘 들어 힘 들이지 않아도 잘 써지는 펜을 찾고 싶었던 터라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평소라면 잘 써지는 볼펜을 검색한 뒤 꼭 사용해 본 후 골랐을 테니까요. 문구점에서 집까지 가는 10분 동안 제 머릿속에는 걱정과 기대가 슬라임처럼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잘 써질까? 어떤 느낌일까? 얼마였지? 처음 보는 브랜드네 하는 생각의 꼬리를 달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식탁 위에 올려둔 볼펜은 아이의 손에 먼저 잡혔고 처음 쓰였습니다. 왜 식탁 위에 올려두었냐고 묻는다면 그곳이 제 책상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얼른 펜을 잡고 냉장고에 붙어 있는 종이에 이름을 썼습니다. 오? 오! 생각했던 것 이상의 만족은 행복을 달고 오네요.


예상하지 못한 만족감에 웃음이 나오면서 그날의 행복 조건이 달성되었어요. 당장 그 문구점에 가서 똑같은 펜을 더 살까? 했다가 아차 싶었습니다. 왜 내가 내 행복을 뺏어가려고 하지? 우연한 만족에 우연한 행복을 느끼는 일을 빼앗아 나중 행복을 당장 가지려는 것이었어요. 지금 펜을 사두면 다음에는 행복을 발견할 기회가 줄어들 테니까요. 하루에도 몇 번씩 어떤 마음을 갖게 될지 모른 채 경험하는 일이 많이 있죠. 아침에 선택한 노래가 나의 하루를 결정하기도 하고, 식당에서 처음 도전한 메뉴가 인생음식이 될 수도 있으니까. 소설책을 읽으며 예술을 느끼기도 하고 그림책을 읽으며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 것처럼. 내가 해야지만 알 수 있는 것들은 내가 했기에 느낄 수 있는 것이었어요. 내가 걸어봐야 보이는 것은 앉아있을 땐 보이지 않으니까요.


행복의 아이템 있으신가요? 무언가를 선택했을 때 백 퍼센트의 확률로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 무엇인가요? 이걸 선택하면 내 기분은 무조건 좋아진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있나요?


복불복의 결과가 아닌 무조건적으로 이기는 전설의 카드 같은 거요. 저의 주머니에는 꺼내 쓰면 성공하는 행복의 카드가 있어요. 계속 모으고 있는 중이죠. 그중에서 오늘은 ‘두더지’ 카드를 꺼내보려고 합니다. 두더지와의 만남은 제가 펜을 찾게 된 사건을 열개쯤 묶은 행복이에요. 우연한 행복에서 무조건적인 행복이 된 이야기죠.


제가 만난 두더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고민이 있는 두더지는 소원을 갖게 되고 여름을 보냅니다. 김상근 작가님의 두더지 그림책 속에서요. <두더지의 고민>, <두더지의 소원>, <두더지의 여름>. 딸과 함께 간 도서관에서 만난 두더지는 제가 발견한 우연한 행복이었어요. 책 등 글자에 이끌려 꺼내보았고 책 표지에서 두더지를 만났답니다. 두더지 그림책에는 행복이 그려져 있었어요. 제가 행복을 읽었기 때문이죠. 두더지를 만난 이후 제 마음이 힘들 때면 두더지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두더지 그림책을 읽습니다. 책을 뽑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어요. 책을 읽어봐야 그려진 행복도 읽을 수 있어요. 행동할 때 우연한 행복을 찾게 되고 무조건적인 행복을 만들 수 있어요. 한 번 뽑아보세요. 그림책에 그려진 행복을 같이 만나면 좋겠습니다.


‘두더지’ 단어를 읽으며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신가요? 저에게 두더지는 동물 이름 말할 때 떠오르지 않는 정도였어요. 두더지 게임 정도 생각하려나요?! 그런 저의 마음을 도서관에서 만난 두더지가 뺏어갔어요. 두더지를 계속 계속 만나고 싶어 졌어요. 그림책에 그려져 있던 행복을 찾은 거예요. 글자만 보고 선택한 책에서 행복을 느끼다니! 내가 이런 그림을 좋아하는구나, 이걸 보니까 마음이 편해져,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생각을 안 했네, 이 책을 꺼내보길 잘했어! 행복을 발견하고 싶은 분께 행복이 그려진 그림책을 선물하고 싶네요. 먼저 그림책을 펼쳐보세요. 행복을 만들어보세요. 그림책에서 만나는 ‘나’는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모습을 하고 있답니다.


두더지의 O O : 빈칸을 채워보세요


그림책을 덮은 저는 작가를 검색하기 시작합니다. 작가님이 두더지가 아닌데 저는 무얼 찾고 싶었던 걸까요. 저는 평소 책을 읽은 뒤 작가에 대해 찾아보곤 합니다. 글을 읽고 글을 쓴 사람도 만나고 싶어서요. 작가님의 인터뷰를 읽으며 다시 두더지 세상으로 들어갔습니다. 친구가 없어 고민인 두더지는 눈덩이를 굴려요. 그렇게 친구를 만나요. 친구가 생긴 두더지에게는 소원이 있어요. 그리고 서로를 지켜주는 친구가 옆에 있죠. 친구를 위해 길을 떠나기도 해요. 두더지 시리즈를 읽고 작가 인터뷰를 보고 두더지를 만나고 ‘나’를 만났어요. 두더지에게 친구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고 나와 함께 하고 싶은 존재였어요. ‘나’는 지금 누구와 함께 있고 싶은 걸까, 무엇에 의해 걸어가고 있는 걸까, 생각만으로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 있는가. ‘나’의 그림책에 그려질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동시에 우리 딸이 두더지를 만나면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졌죠.  


바다 장면을 그려야 하는 작가님께 아내가 당장 비행기를 타고 제주 바다를 보러 가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과연 저는 남편을 위해 제주행 비행기표를 끊어줄 수 있을까요?


작가님 인터뷰와 작가와의 만남을 찾아보며 그림책의 또 다른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숨겨진 디테일이 많았고 장면마다 이유가 있는 그림이었어요. 주인공 두더지와 함께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났습니다. 두더지의 할머니이자 작가님의 할머님이죠. 땅파기 연습을 쉬겠다는 두더지를 기다려주는 할머니, 친구와 헤어지고 돌아온 추운 두더지를 안아주는 할머니, 고민이 사라지는 방법을 알려주는 할머니가 두더지 옆 같은 자리에서 늘 함께 해요.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기에 두더지는 연습을 하고 성장을 하게 된답니다. 누구에게나 때가 있는데 그때까지 가는 게 미션이니까요. 그림책 속에서 저의 미션을 도와줄 친구도 만났답니다. 연습하기 싫은 날 두더지와 함께 고민을 하고, 미션 성공의 길이 외로울 때 두더지 친구와 같이 바다를 보는 생각만으로도 미션 성공에 가까워진 기분이네요.


두더지야 안녕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두더지가 필요한지도 몰라요. 그리고 이미 두더지 친구가 곁에 있는 분들도 있을 테고 옆에 있지만 모르고 있는 분도 있겠죠. 행동했기에 만날 수 있던 우연한 행복이 나를 무조건적인 행복으로 데려간다고 생각해요. 하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가지만 움직이면 뭔지는 알고 지나가죠. 행복이 그려진 그림책에서 제가 만난 두더지를 여러분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두더지는 어디에 있을까요? 지금 보이는 그 책부터 일단 펼쳐보기로 해요.


시간이 지난 뒤 그 어느 날, 저는 다시 두더지 책을 펼치게 될 거예요. 그리고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는 두더지와 할머니를 만나겠죠. 또, 다른 곳에서 두더지를 만나고 또 다른 곳에서 할머니를 만나다 보면, 저도 누군가의 두더지가 될 수 있을까요? "그건 나의 행복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그렇게 저는 ‘두더지 부적’을 갖게 되었답니다.



"고민이 있을 때는 말이지,

고민을 말하면서 눈덩이를 굴려 보렴.

그러면 고민이 다 사라질 거야."

<두더지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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