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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Aug 08. 2024

다시 시작 - 배움에 호주를 담다

지난 글에서 나는 "나는 배움의 시작부터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라고 강조의 글을 적었다. 오늘 그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첫날 우리를 이끌어주셨던 조셉은 조교 선생님이었고, 이 수업의 메인 선생님은 크리스타였다. 그녀가 이번 학기 수업의 둘째 날부터 수업을 진행했지만, 수업의 내용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첫날 조셉이 설명했던 부분부터 다시 설명을 시작했는데, 아... 그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미술을 왜 그리는지 알아야 해요." 


미술을 초등 4학년에 시작하고 평생 아트에 관련된 일을 해왔지만, 크리스타의 수업을 들으며 처음으로 "왜?"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내 얼굴은 달아오르고, 스스로에게 창피함이 밀려왔다. 나는 도대체 36년 동안 무슨 생각을 하며 그림을 그리고, 패션디자인을 공부하고, 디자인을 배웠던 걸까?


이 "왜?"라는 질문은 단순히 미술을 시작한 이유나 미술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물론 그러한 이유들도 포함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질문은 미술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왜 그런 미술을 시작하려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취미활동으로 그림을 배우러 운 우리들에게 던져진 질문은, 내가 평생 받아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녀의 설명은 단순한 기술적 지식 전달을 넘어, 예술의 본질과 창작의 과정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반영하고 있었다. 지난 시간 조셉이 소개했던 기본 원칙들이 크리스타의 해석을 통해 더욱 생동감 있게 더 깊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은 "왜 연필을 사용할까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미술학원에 갔을 때 내가 했던 일은 선 연습이었다. 4절 도화지를 선으로 가득 채우며 다양한 질감의 선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배우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며 4B 연필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호주에서의 미술 수업 첫날, 나는 왜 우리가 연필을 이용해 그림을 시작하는지에 대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꼭 4B 연필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를 쉽게 설명하자면, 초등학교에서 처음 수학을 시작하면서 왜 우리가 수학이라는 과목을 배워야 하는지, 왜 그것이 필요한지를 배우는 것과 같았다. 수학 과목에서 숫자 1, 2, 3, 4 등을 제대로 배워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과정과도 비슷했다. 지금 나에게 떠오르는 기억은, 딸이 울면서 나에게 말하고 (소리지르고) 있는 장면이다.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어. 왜 영어학원에 가야 하냐고!!" 초등 1학년때 딸이 한 말이었다. 그날로 영어 학원은 (그녀가 필요하다고 할때까지) 다니지 않았다. 


호주의 미술 수업에서는 이러한 기본적인 도구들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그 도구들이 앞으로 우리가 해나갈 예술적 표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했다. 단순히 연필을 사용하는 기술이 아니라, 왜 그 도구가 예술적 과정에서 중요한지에 대한 철학적 접근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연필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게 되면서, 내가 이제 연필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저절로 생겨났다. 그리고 내가 그리고 있던 그림이 전혀 달리 느껴졌고, 그 후 나는 좀 더 세심한 표현을 할 수 있었다. 연필이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을 이용한 것이었다.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것을 넘어, 그 기술의 본질과 의미를 이해하고,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잘 그려진 그림이 아닌, 나를 표현하는 선으로 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초등학교때 수백번, 수만번을 그렸던 의미없는 정육면체와 다른 그림이었다. 딱 1시간으로 충분히 이해가 완료된 수업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고, 예술에 대한 나의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하니, 나는 "배움의 시작부터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나에게 소크라테스의 말, "I know that I know nothing"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안다")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예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 적이 없었다. 이러한 인식은 나에게 새로운 배움의 시작을 알렸고, 예술에 대한 나의 접근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WHY


드로잉 수업 2시간, 페인팅 수업 2시간 동안 크리스타는 계속해서 모든 과정에서 "왜"라는 질문으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는 마치 숫자 1에 대해 1년 동안 '왜'라는 질문만으로 설명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꽤 깊은 이야기였고, 꽤 폭넓은 이해였다. "왜"라는 질문으로 이어진 배움은 내가 수업에 임하는 자세부터 바꾸게 만들었다.


우리의 그림에 대한 피드백을 주면서도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우리를 근본적인 사고로 이끌어주었다. 마치 인생을 배우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제야 미술과 예술이 나와 나의 삶과 하나가 되는 느낌을 진정으로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내가 감정 코칭을 받으면서 수업에서 받았던 수백번의 "WHY"라는 질문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동안의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그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또한, 그동안의 성장 과정이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도 명확히 알게 되었다.


배움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고, 

미술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고, 

나의 삶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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