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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아 Oct 17. 2024

Art, Arts, Art's & Art Class

아트 클래스의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었다. 호주에서의 아트스쿨 수업이다. 나는 지난 3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4학기의 수업신청을 완료했었다. 그만큼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컸고, 두 번째 학기의 수업은 더욱 기대되었기에 수업을 이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역시나 새로운 학기의 첫날 수업은 나의 기대를 훨씬 넘어섰다. 이번 학기에는 어떤 새로운 배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설렘이, 실망으로 변할 여지가 전혀 없는 그런 순간이었다.


최근에 내가 새롭게 시작한 동화의 일러스트 작업은 내가 그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전체적인 컨셉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상상으로 그려 놓은 장면들이 종이 위에서 내 뜻대로 표현되지 않아 며칠째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간극은 언제나 아티스트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이기에, 그 답답함은 익숙하면서도 여전히 극복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수업 첫날, 교수가 우리에게 보여준 여러가지 그림 예시들은 마치 내가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그려오던 장면들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나만을 위해 완성해 놓은 컬렉션같았다. 또한 교수의 시범을 보고 있자니, 내가 상상 속에서 그리던 것들이 정확히 그 그림들 안에 담겨 있었다. 어쩌면 내가 계속해서 고민했던 표현법들을 나를 위해 교수가 재현해주는 듯 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나도 모르게 'wow'라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마치 교수님이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가 시범을 보이며 설명해준 여러 테크닉들 속에서, 그녀가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들 속에서 나는 점점 그녀만의 철학적 기반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학기 동안 그녀는 극사실적인 그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확한 묘사, 디테일의 집합, 세밀한 관찰. 하지만 이번 학기에는 흐릿하게 초점을 잃은, 마치 꿈결처럼 블러 처리된 추상적인 그림들을 보여주며 전혀 다른 관점에서 그림을 설명하고 있었다. 지난 학기와 정반대되는 접근법이었다. 그녀는 극단적으로 다른 두 세계를 보여주며, 그 사이의 균형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듯이, 그림이라는 것이 그 경계에 서 있는 미묘한 예술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그러니까 그녀의 교육 철학은 단순히 기법을 전달하는 것이 아닌, 그림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더 깊은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에게 세 번째 코치가 찾아왔다는 것을. 앞서 두 분의 코치와의 인연도 우연처럼 시작되었고, 그들은 이제 동반자가 되어 나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매일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의 예술적 여정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고, 이제 예술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갈증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었다. 단순히 '어떻게' 그리는가에서 벗어나 '왜' 그리는가로, 그 근본적인 물음들이 내 안에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한 기술적 성취 이상의 것임을 나는 이제 안다. 예술은 그 자체로 삶을 반영하고, 때로는 삶을 초월하여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기도 한다. 그 세계는 나의 개인적인 감정, 사고, 상상력을 담아내는 무한의 우주 같다. 동시에 나의 존재를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외부로 표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조던 피터슨(주)은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탐험이다. 예술가는 사람들에게 보는 법을 가르친다. 세계를 인지하는 일은 매우 어려운데, 예술가들이 있어서 그들에게 세계를 인지하는 법을 배우고, 잃어버린 세계와 다시 연결되고, 세계가 어떤 곳인지를 깨닫게 된다." 나 역시 예술을 통해 세상을 탐험 중이며, 그 이전에 예술 자체를 탐험하고자 한다. 예술은 나를 세상과 이어주며, 동시에 잃어버린 나의 내면과도 다시금 연결시킨다  


이러한 새로운 질문들과 마주한 나는, 이제 또 다른 단계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 학기의 교수는 내가 갈증을 느끼던 예술에 대한 철학적 물음들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갈 동반자가 될 것 같았다. 과연 그림이란 무엇이며, 나의 작품을 통해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어쩌면 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 자체를 던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주) 조던 피터슨, 질서너머, 웅진지식하우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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