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에 흥미로운 일러스트작업이 있는 책 두 권을 발견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책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와 관련된 나의 생각들이다.
대화에 대하여 <시어도어 젤딘> (주)
먼저 시어도어 젤딘 교수에 대하여 소개를 하자면,
영국 옥스퍼드 출신의 학자이며 사상가이다. 그는 인생의 다양한 문제들을 제시하고, 그것에 대하여 해답을 얻으려고 하며,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고 수렴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상가이다. 영국의는 그를 ‘다음 세기에도 지속될 사상을 가진 4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했으며 프랑스의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 100인’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대화와 소통, 호기심을 장려하는 옥스퍼드 뮤즈의 프로그램은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인생학교’의 모델이 되기도 했다.
그의 책의 첫 챕터가 시작되기 전,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대화란 무엇보다도 마음을 읽는 놀이이자 수수께끼입니다. 남들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늘 그 이유를 짐작해야 합니다. 또 언제 단어들이 함께 춤을 추고 의견들이 어우러질지, 언제 상상력이 나래를 펴고 새로운 주제가 열릴지 미리 알 방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한다면, 좀 더 기민하게 그 시작을 알아챌 수는 있겠지요.
대화도 사랑처럼 흥미로운 겉모습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 그림이라는, 일종의 묘약을 뿌려놓았습니다. 이 책의 그림이 각자에게 다른 생각을 자극하여, 저마다의 상상력이 펼쳐짐에 따라 다채로운 대화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혹시 모르지요. 묘약 역할까지는 못 하더라도 각자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기상천외한 현상을 언뜻 드러낼 수는 있을지도요.
책의 마지막에는 각 그림에서 출발한 서른여섯 가지 대화 주제를 실었습니다. 모두 대화에 관한 질문입니다. "
내가 이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다니엘과의 영어수업을 통해, 대화와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깊이 나누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였다. 나는 어릴 적 매우 내성적인 성격에 목소리도 작았던 아이였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기에,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림 그리는 시간을 나 스스로 나의 안전지대로 여겼던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대화와 소통을 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는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을 돌이켜보면, 나는 그것이 싫어서 회피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화와 소통을 하고 싶었지만 잘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많은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어도어 젤딘 교수의 대화에 대한 책은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주는 주제였고, 며칠 동안 매우 흥미롭게 읽고 있다.
그중에서도 그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에 더 오랜 시간을 머물며 감상하게 된다. 추상적인 그림이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글과 함께 소개되는 그림들은 어렴풋이 이해가 더 잘 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그림들은 단순한 시각적 표현을 넘어서, 그의 철학과 사상, 그리고 감정을 담고 있는 듯하여, 이는 나로 하여금 다시 나의 글과 일러스트를 생각하게 만든다.
나도 매주 토요일 발행하는 [바라보는 theME]에서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더해지는 추가적인 일러스트를 함께 발행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한 그림도 있고, 단 1분 만에 그린 그림도 있다. 이는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시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이다.
그림과 글은 나의 내면을 표현하는 또 다른 언어라 생각한다. 이를 통해 나는 나 자신과, 나아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을 추구하고 있다. 이 두 매체는 내가 말로는 전하지 못하는 감정과 생각들을 보다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는 도구이다. 그림은 색과 형태를 통해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글은 언어를 통해 생각과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전달한다. 이러한 예술적 표현들은 나의 존재를 더 깊이 이해하고, 타인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하다 보니, 예술은 나에게 인간 경험의 복잡성과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과정이며, 나의 내면세계를 외부와 연결시키는 창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며 나는 나의 감정과 생각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글을 쓰며 그 내면의 이야기를 구체화시키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나 자신의 모습을 더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중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실제 다른 이들과의 대화에서도 나의 이러한 모든 생각들과 감정들을 마음껏 자유롭게 펼칠 수 있기를 바라는 중이다. 일상에서 하게 되는 스몰토크식의 대화보다 좀 더 깊이 있는, 그리고 나의 색이 담겨있는 나의 말을 전달하고 싶다. 그렇게 나를 표현하다 보면, 대화를 회피하기보다는 즐겁게 대화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렸을 적 배우지 못했던, 아니 나 스스로 배우지 않았던 대화와 소통의 의미를 이제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화를 통해 나의 세계를 넓히고, 다른 사람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 이러한 소통은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들 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나누는 대화는 서로에게 배움과 성장을 가져다줄 것이다.
사적인 대화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관계가 화학적으로나 낭만적으로 시작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관계에 무한히 소중한 무언가를 더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대화입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생각에 자극을 받고 변화하면 우리가 남들에게 얼마나 큰 빚을 지고 있는지, 상대가 고유한 존재로 남아 있으면서도 우리의 지적, 도덕적, 정서적 발달에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사적인 관계에서 비판을 수용하는 법도 익힐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터놓고 대화를 나누면서 그전까지는 없었던 방식으로 함께 사는 법을 찾아가고, 함께 일을 해나갈 수 있다는 느낌과 함께 영감을 얻을 수도 있겠지요. 가령 함께 벽지를 바르는 일도, 특히 각자가 자기만의 벽지를 선택할 수 있다면 둘이 함께 일하거나 즐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유연해지고, 생각이 달라지면 우리 자신도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시어도어 젤딘
(주)대화에 대하여, 시어도어 젤딘, 어크로스, 2019